전 세르비아 김영희 대사

<사진제공:동아일보 원대연 기자>

 

“어린 시절, 넓은 농촌 들판에서 뛰놀며 긍정의 힘 가져”


김영희 대사의 성공 철학
어떤 순간도 좌절은 없다...길이 막히면 주저앉지 말고 방법을 찾아라
도전을 두려워 마라...특별한 성공은 특별한 도전이 있어야 가능하다
다른 인생을 벤치마킹하라...인생에 정답 교과서는 없지만 다른 사람의 경험을 배워라
건강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일할 수 있는 원동력은 체력이다.

고졸 출신의 파독간호보조원으로 독일에 가서 어릴 때부터의 꿈이던 외교관의 꿈을 가슴에 안고 열심히 공부하고 삶을 개척해 결국 외교관의 꿈을 이룬 입지전적인 인물인 김영희 전 세르비아 대사. 김 대사는 특히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해줄 말이 무척 많단다. ‘험한 풍랑을 이겨낸 어부가 훌륭한 선장이 되듯 거친 파도와 바람을 무서워하지 말고 맞서서 많은 경험을 가질 것’을 젊은이들에게 주문한다. 바로 김영희 대사 자신이 그런 삶을 살았기에  더 설득력 있게 김 대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새겨진다.

우리의 소원은 ‘선진국’
“학교 강의와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 등으로 정말 바쁘게 지냅니다. 전국에서 특강 요청이 많은데 기업이나 단체들은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층에 희망을 줄 수 있는 메시지를 주고 싶어 대학에서의 특강은 그래도 짬을 내고 있고 또 외교통상부의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는 외교관을 그만두었는데도 그전만큼 바쁘다고 근황을 전했다.
요즘 김 대사는 “남편 따라서 미국에 가지 왜 한국에 떨어져 지내나요? ”란 질문도 더러 받고 있다. 미국에서 철학교수로 재직 중인 남편 따라서 살림살이를 옮기지 않은 것은 이렇게 자신이 태어난 우리나라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과 역할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김 대사는 얘기한다.
“제 소원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것입니다. 선진국 독일에서 30여년 이상 살아온 저로서는 선진국의 삶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꼈고 우리나라 국민들도 이런 선진국의 경험과 지식과 노하우를 배우고 축적해 선진국 대열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 제가 활동할 수 있는 한 우리나라에 작은 무엇이든 기여하고 싶기 때문에 이곳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김영희 대사가 말하는‘선진국 시민의 삶’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예측 가능한 삶이죠. 또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입니다. 휴식을 낭비가 아니라 충전으로 여기는 사회기도 합니다. 여기에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는 사회가 선진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에게 있는 것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확실히 공통점이 있다. 김영희 대사도 마찬가지다. 김 대사는 남들이 모두 옳다고 믿는 상식에 과감하게 맞서 도전했고, 좌절과 실패를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련이 닥칠 때마다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가’ 하는 탄식 대신 ‘이 일은 내게 무엇을 가르쳐주려고 찾아온 것일까’ 생각하며 배우려고 애썼다고 그녀의 인생항로의 핵심을 들려주었다.
김영희 대사는 외교관으로 재직하면서 그동안 많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독일축구협회 관계자들을 설득해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 지지를 얻어낸 것이나 세르비아 대사 재직 시절, 한국이 코소보 독립을 승인한 것과 관련해 양국 관계가 악화될 뻔한 위기를 잘 극복해낸 것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역경을 이겨낸 힘은 농촌의 넓은 들판
“저 역시 부모님이 농사짓는 집에서 태어났기에 농사가 얼마나 고되고 시도 때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김 대사는 우리나라 농촌생활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했다. 독일처럼 선진국에서도 농촌의 일은 힘이 많이 든다는 게 김 대사의 말이다. 반면에 그만큼 농사가 얼마나 보람된 일인지도 잘 알고 있단다.
“FTA를 맺을 때 농촌에서 반대가 있었지만 세계가 하나인 지구촌이 된 이 마당에 농산물 시장도 전 세계가 우리의 시장이 될 수 있고, 우리 농촌이 전 세계를 상대로 뻗어나가면 좋겠다”는 게 김 대사의 의견이다.
김영희 대사는 외교관 시절에 다른 나라 고위 인사들에게 선물할 일이 있으면 우리나라의 사과, 배, 인삼 등의 농산물을 선택했는데 그때 선물 받은 사람들이 계속 구입할 방도가 없냐며 대사관으로 문의가 올만큼 우리나라 농산물에 대한 반응도 뜨거웠다고 한다.
“이미 우리나라 전자제품은 세계시장에 우뚝 서있습니다. 우리나라 농산물의 수출 전망도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
또한 김영희 대사는 농촌생활이 주는 기쁨과 보람을 듬뿍 느끼며 살라고 농촌에 격려의 말을 남겼다.
“저도 농민의 딸로 태어나 어릴 때 넓은 들판을 뛰어다니며 꿈을 키웠기에 긍정적 마인드를가질 수 있었습니다. 농촌여성 여러분들도 더욱 힘내시고 세계를 무대로 전 세계에 우리 농업과 농산물을 알리고 뻗어나갈 수 있게 힘내십시오.”



김영희 전 세르비아 대사는
1949년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여고 졸업후 9급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1972년 파독 간호보조원으로 일하며 공부에 매진해 쾰른대학에서 교육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쾰른대학에서 강의 했고 1991년 특별채용으로 외교통상부에 채용돼 2005년 세르비아대사로 임명됐다. 논문으로 ‘독일의 상징 베를린’ ‘독일통일의 사회적 성과’ ‘독일 통일이 한국에 주는 교훈’등이 있다. 현재 전주 우석대 초빙교수다.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우수한 자질, 풍요로운 경제적 배경을 갖추고도 안정적인 직업 하나에 골몰하는 젊은이들을 향해 그가 따뜻한 충고를 담아 책으로 펴냈다. ‘20대, 세계무대에 너를 세워라’(동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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