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자 칼럼

동 열 모
미국주재 대기자

 

이번에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자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반사적으로 나타난 호들갑은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했다. 이 사건이 터지자마자 국회에서는 그 원인도 미처 캐기 전에 관계 장관의 해임부터  촉구하는가 하면 사건당시의 교신내용을 공개하라고 호통 친 해프닝이 벌어졌다. 가장 민감한 군사비밀이라고 할 교신내용을 공개하라고 고함지른 이 국회의원은 김태영 국방장관으로부터 “의원님, 앞뒤를 챙기면서 질문하기 바란다”는 일침을 당하기도 했다.
정부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원인을 경솔하게 예단할 경우의 부작용을 고려해서 신중한 태도를 보이니 이에 대해 야당은 무언가 은폐한다며 “이 사건은 보수진영이 결속하기 위해 조작한 자작극일 가능성이 있어 북한의 개입설은 근거가 없다”고 지레 선수를 쳤다. 그래서 어느 신문에서 “야당은 북한의 대변자인가”라는 논설을 싣기도 했다.

여론몰이의 피해자들
일부 언론에서 흥미위주의 추측 보도를 난발하자 인터넷도 터무니 없는 댓글을 쏟아내 여론을 호도했다. 이들 언론은 천안함 생존자들을 증언대에 불러내게끔 분위기를 조성했다. 침몰하는 함정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하느라 부상 당하기도 하고 심리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 생존자를 끝내 환자복 차림으로 대중 앞에 세운 것이다. 이 자리에서 눈시울을 적시면서 “실종된 동료를 남겨두고 살아서 돌아와 미안하다”며 고개 숙인 이들은 죄인이 아니다. 이들 생존자는 나라를 지키다 적의 공격을 받은 대한의 당당한 해군이다.
일부 이념적 시민단체도 여론 몰이에 가세하자 실종자 가족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일부 가족은 <군인의 숙명적인 전투 리스크>라는 군대의 본질을 깜박했는지 군 당국을 가해자로, 자신들을 피해자로 여긴 듯, 어느 농성장을 방불케 하는 거친 언행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온 국민의 따뜻한 위로를 받으면서 소리 없이 흐느끼는 여타 유족에게 자칫 누를 끼칠까 염려되기도 했다.  이러한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우리는 2008년의 광우병 촛불시위를 연상케 하는 또 하나의 조작된 소요가 터질 듯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 아슬아슬한 때에 우리의 UDT 영웅 한준호 준위가 나타났다. 그가 바다 밑에 가라앉은 전우를 필사적으로 구하려다가 순직하자 험악한 분위기가 일시에 가라앉았다. 한준호 준위는 역사에 빛날 살신성인의 위대한 인물일 뿐만 아니라 사회혼란의 분위기를 일대 전환시키는 전기도 마련해 줬다.

자성의 계기 삼아야
우리 사회가 큰 사고를 당할 때마다 단결은 커녕 서로 헐뜯고 선동하는 치졸한 호들갑을 이 기회에 자성해야 하겠다. 미국은 9.11테러를 당하자 여야가 똘똘 뭉쳤다. 한국학생이 동료 학생 32명을 권총으로 사살한 2007년의 버지니아 공대 사건에서 미국의 언론은 보복을 겁내던 우리 교민에게 “개인이 저지른 사건을 확대 해석 말라”며 우리를 오히려 위로하는 동시 분노한 사민들을 진정시키느라 애썼다. 우리 언론은 2002년에 의정부에서 2명의 여학생이 훈련 중이던 미군 장갑차에 과실치사 당하자 촛불시위를 부추겼고 급기야 미군 탱크에 올라가 성조기를 불태우는 사태로 번지게 했다.
지난해 말에 부산에서 일어난 사격 연습장 화재사건에서 일본 관광객이 다수 사망했는데 그들의 유족은 사건 현장을 돌아보며 소리 없이 눈물을 닦다가 오히려 “뒷처리를 해줘 고맙다”는 인사말만 남기고 조용히 돌아갔다. 미국에서 단체 관광 길에 버스가 고장을 일으켜 운전사가 수리하는 동안 길가에서 1시간이나 허비한 관광객들이 운전사에게 정비 불량을 탓하기는 커녕 “수고했다”고 격려하는 것을 목격했다.
우리도 이제 좀더 너그럽고 성숙한 시민으로 탈바꿈 할 것을 다짐하며, 이번 사건이 지난 10년간 ‘우리끼리’라는 감상적 평화무드로 인해 허물어진 우리의 안보의식을 되찾는 계기가 될 것을 확신한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