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세상만사’

전남 장흥 출신의 작고문인 이청준의 단편소설 가운데 <눈길>이란 게 있다. 작가 자신의 자전적 스토리이기도 한 이 작품의 이야기는 이렇다.
오랫동안 객지를 떠돌던 청년이 너느 날 고향집을 찾아간다. 자신이 찾아가는 고향 옛집이 이미 빚으로 남의 손에 넘어가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는 채. 아들이 오랜만에 고향집엘 온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늙은 홀어머니는 자신의 옛집에 살고 있는 집주인을 찾아가 사정얘기를 하고는 단 하룻밤만 집을 빌려줄 것을 부탁한다.
어둑어둑해 진 저녁, 이윽고 아들이 고향 옛집 앞에 이른다. 굴뚝에선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늙은 어머니가 살갑게 아들을 맞아들여 손수 차린 밥상을 아들 앞에 들인다. 그렇게 어머니와 아들의 고향 옛집에서의 하룻밤은 가고 이튿날 이른 아침 아들은 집을 나선다. 밖엔 함박눈이 쏟아져 내리고 늙은 어머니는 그 눈속에서 자신의 품을 떠나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눈물로 배웅한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도, 떠나가는 아들의 발자욱도 점점 눈속에 묻혀가고…
우리의 어머니는 그렇다. 이제는 남의 소유가 되어버린 자신의 옛 둥지에서 단 하룻밤 만이라도 새끼를 보듬고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이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의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아들에게만은 되물려주고 싶지 않은 절대의 모성이 잔잔하게 가슴을 때린다.
요즘 연극·영화가에서는 블록버스터를 제치고 ‘친정엄마’가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연극을 영화화 한 ‘친정엄마’, 연극 ‘친정엄마와 2박3일’, 뮤지컬 ‘친정엄마’ 등이 그렇다. 엄마는, 특히 딸에게 있어서 친정엄마는 어머니와는 다른 가슴 먹먹해 지는 애틋함과 따뜻한 안식의 이미지다.
이중 영화 ‘친정엄마’는 다소 평범한 것 같은 이야기이면서도 관객의 가슴을 짠하게 한다. 술에 절어 있던 남편이 병으로 죽고 홀로 시골에 남겨진 친정엄마를 보고 서울로 시집갔던 딸이 찾아와 “서울에 가서 함께 살자”고 하자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너랑 같이 살면 네가 힘들 때 갈 데가 없잖아. 엄마는 여기 있을 테니까 살다가 힘들면 언제든 찾아와.”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데다 평생 시골집을 떠나본 적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친정엄마지만 그 엄마는 딸에게 친정이란 안식처를 주고 싶어하고, 결국 딸은 그 친정과 친정엄마에게서 안식을 찾는다. 그렇듯 ‘엄마’는, 모정(母情)은 이땅의 모든 딸들에게 영원한 꿈이자 희망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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