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농촌여성신문은 이번 호부터 전국 방방곡곡의 특산물과 향토음식에 얽힌 이야기 등을 수필 형태로 소개하는 ‘팔도 味행’ 코너를 연재합니다. 농촌진흥청 전통한식과 진호준 씨의 도움을 받아 게재될 이 연재물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지역의 유명한 먹을거리에 대한 유래를 정확히 알아보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 첫 회로 ‘순두부’를 소개합니다.

 

<초당순두부>

 

내 고향은 전북 전주다. 아버지는 유별나게 식구들과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셨고, 특히나 맛있는 것이 있으면 기어코 식구들을 앞세워 꼭 같이 드셔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날도 아버지 손에 이끌려 차를 타고 시골길을 한참을 달려 도착한 그곳은 국도변에 나지막한 높이의 허름한 집이었고, 많은 손님들이 북적였던 기억이 난다. 안쪽 마당에서는 두부를 만드는 주인아주머니의 손길이 분주했고, 커다란 그릇에 막 간수를 넣어 두부 꽃이 피기 시작한 몽글몽글한 순두부들이 하얀 수증기를 모락모락 내고 있었다. 성격 급하신 아버지는 주인집 아주머니가 대접으로 크게 떠주는 순두부 두 대접을 가지고 와 양념간장 한 숟가락 푹푹 떠 담아 대충 간을 맞춰 함께 먹었다.
특히 이집에서 만든 모두부에 잘 삭힌 시원한 김치를 척척 올려 먹는 맛도 좋았으나 양념간장으로 간을 한 따끈한 순두부의 맛은 요즘 나오는 순두부의 맛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세월이 지나 이집 주변에 큰 두부공장이 생겨 대량으로 두부도 생산하고 다양한 두부전문 음식점이 생겼고, 이곳이 전북 인근에서 유명한 ‘화심두부’의 원조가 됐다.
최근 웰빙바람을 타고 다양한 두부전문점들이 생겨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 먹었던 따끈한 진짜배기 순두부를 찾기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흔히들 사람들이 즐기는 순두부는 고춧가루와 고추기름을 사용한 빨간 순두부찌개가 대부분이며, 순두부하면 떠올리는 이미지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두부와 고추의 역사적 유래를 살펴보면 과연 진짜배기 순두부에 대한 이야기는 달라진다.

 

<초당순두부 전경>

 

우리나라에 고추가 유래된 시기는 조선 중기 임란왜란 전후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민족이 두부를 만들어 먹었던 시기는 훨씬 전인 고려 말로 올라간다. 두부에 대한 언급이 있는 최초 문헌인 성리학자 이색(李嗇)의 <목은집>에 ‘대사구두부내향(大舍求豆腐來餉)’이라는 시에서 살펴볼 수 있다. ‘나물국 오래 먹어 맛을 못 느껴 두부가 새로운 맛을 돋우어 주네. 이 없는 사람 먹기 좋고 늙은 몸 양생에 더없이 알맞다.’라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듯 고추가 우리나라에 유입된 시기보다 훨씬 전부터 두부는 우리민족과 함께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유추해봐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추를 사용한 빨간색의 순두부찌개는 순두부를 이용한 요리의 원형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으며, 오히려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고 양념간장으로 간을 해 먹는 순백의 순두부가 우리민족이 즐겨먹던 음식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일례로, 양념간장으로만 간을 하여 먹는 순두부의 원형은 강원도 강릉 초당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곳은 조선중기 허균과 허난설헌의 아버지인 초당 허엽(1517~1580)이 만들었다는 초당두부의 전통을 이어 초당두부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선 아직까지도 순두부를 시키면 순백의 순두부와 양념장만을 내어준다. 초당두부처럼 순두부의 원형을 유지한 맛과 모양은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약간은 밋밋하고 생소하고 느껴질 수 있으나 두부자체의 깊은 풍미를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고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야 말로 우리 가슴속에서 지워졌던 맛이 아닐까 한다.

(농촌진흥청 전통한식과 진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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