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덕혜옹주’ 권비영 작가

 

경술국치 100년 만에 되살아난 조선 마지막 황녀,
그녀의 기구했던 삶이 우리의 가슴을 두드리고 있다

덕혜옹주....고종황제의 막내딸, 조선 최후의 황족, 덕수궁의 꽃이라 불렸던 그녀는 태어난 순간부터 철저히 정치적 희생자로 살아가게 된다. 가장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가장 외롭게 생을 마감했다. 어린 나이에 고종황제의 죽음을 목격한 후, 일본으로 끌려가 냉대와 감시로 점철된 십대 시절을 보낸 그녀는 일본 남자와의 정략결혼, 10년 이상의 정신병원 감금생활, 딸의 자살 등을 겪으면서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쇠약해진다. 그 치욕스러운 시간 속에서 그녀를 붙들었던 건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삶의 터전을 되찾겠다는 결연한 의지’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1962년 우리나라로 돌아와 1989년에 숨을 거둘 때까지 창덕궁에 있는  낙선재 바로 옆 수강재에서 말을 잃고 지냈다.

 

소설 ‘덕혜옹주’, 이미 33만부 판매를 돌파하며 베스트셀러 대열에 이름을 올린 소설이다. 내로라 하는 유명작가의 작품도 만 부를 넘기 힘들다는 척박한 출판문화 현실에서 울산의 무명작가였던 권비영 작가의 소설 ‘덕혜옹주’의 반응은 예외적인 일로 꼽힌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꽃샘 바람이 만만치 않게 불던 4월의 어느날,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소설 덕혜옹주를 쓴 권비영 작가를 만났다. 조선시대의 고운 여인네 느낌이었다. 권 작가의 맑은 피부와 고운 목소리에 ‘그 옛날 궁에서 살았을지도 모를 사람’이란 생각이 잠시 스쳤다. 작가는 요즘 서울에서 인터뷰니 독후감 심사 등의 스케줄로 서울 나들이가 부쩍 잦아졌다고 한다.
“지방의 무명작가가 서울출판사에서 책을 내게 된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이렇게 폭발적 반응을 얻을 지 전혀 몰랐죠. 기분도 좋고 어리둥절합니다.”
소설의 인기 덕분에 주말마다 가방 싸는 여자가 되었다며 행복하게 웃어 보인다.

소설 덕혜옹주의 인기 요인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요?
올해 경술국치 100년과 시기적으로 맞아 떨어진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을 고려하고 소설을 쓴 것은 아니지만 비운의 삶을 살다간 덕혜옹주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 대한제국에 대해 무지 했던 점들이 독자들의 가슴에 부끄러움과 미안함으로 다가오며 반향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

소설 덕혜옹주를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우연히 신문에서 대한제국을 재조명하는 기사를 읽었고 그 속에서 덕혜옹주의 어린시절 사진에 어떤 이끌림이 있었지요. 다섯 살 무렵의 당의를 입은 모습이었고, 그 사진 속 우리나라 마지막 공주에 대해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3년 전 쯤의 일입니다. 그러나 덕혜옹주의 한 많은 삶을 소설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우연히 대마도 여행을 다녀온 직후였지요. 덕혜옹주와 남편이던 다케유키의 결혼봉축기념비. 만송원 등으로 다니며 덕혜옹주의 삶에 관심을 가졌고, 미친듯이 자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덕혜옹주에 대한 온전한 자료는 찾을 수 없었고 파편처럼 돌아다니는 사진과 소문처럼 떠도는 단편적인 이야기들만 있을 뿐이어서 덕혜옹주를 오롯이 살려내자 마음먹게 된 것이죠.

덕혜옹주를 쓰면서 어려웠던 점으로는?
내가 쓰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사명감으로 시작했죠. 1년의 자료 수집과 1년의 집필을 끝낼 즈음에 일본인 ‘혼마야스코’가 쓴 ‘덕혜희’가 번역본으로 나왔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요. 유일하게 덕혜옹주를 다룬 책이라 제가 참고로 한 부분이 많았기에 중복된 부분이 있어서 10개월에 걸쳐 개작을 해서 등장인물과 사건을 가감하며 세상에 내놓게 되었습니다.

소설 덕혜옹주의 사실과 허구를 어떻게 구분 지어 읽어야 하나요?
시간적 사건들은 역사적 사실들입니다. 등장인물에 있어서는 실제 존재했던 인물들도 있고 가공의 인물들을 집어넣어 재미를 더했습니다. 물론  김장한 이란 인물처럼 역사 속에서 이름 외엔 어떤 자료도 없는 인물에 대한 성격묘사나 사건의 전개 과정은 픽션인 부분입니다. 많은 독자들이 그 부분을 궁금해 하십니다.
정식 데뷔가 늦은 편입니다. 그 동안의 글쓰기 위한 노력들이 궁금합니다.
오랜만의 장편소설입니다. 95년 신라문학상을 수상으로 등단한 후 소설 21세기 동인으로 10여년간 작품발표를 하며 창작집을 내기도 했지만 작가의 길은 고단했습니다. 이상보다 가까운 것은 현실이었지요.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끊임없는 질문들을 던지며 살았습니다. 창작집을 세상에 내놓아도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고 허탈감에 이제 쓰지말까를 고민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무엇을 할 것인가? 다른 것을 한들 무슨 재미를 느끼겠나’를 생각했을 때 글쓰기는 멈출 수 없었지요.

글쓰기를 즐기는 주부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해주신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끈을 놓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물론 제 경험이기도 하지만 앞에 보이는 것이 없어서 그만두고 싶었을 때 내 자존감과 살아있다는 증거가 바로 작품이기에 아무리 힘든 시기에도 글 쓰는 것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그리고 쓰지 않으면 문장을 다듬을 수 없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네요.
또 누구나 자신의 살아온 생을 이야기 하고 싶은 욕구가 마음속에 있으면 모두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물론 표현력은 좀 길러야 하겠지요. 먼저 꾸준히 일기를 써보면 좋겠습니다. 책도 틈나는 대로 읽고요. 그냥 자기 마음가는대로 아무 책이나 읽다보면 스스로 선별력이 생기겠죠?
이런 것들이 글쓰기의 밑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내면의 욕구가 길어지고, 또 그것을 다듬으면 수필이 되는 것이지요. 만약 일기 쓰는 것도 버겁다면 자신의 감정들을 메모하는 것도 바탕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이 들어 꿈을 갖는 것은 힘들지만 그럼에도 그 꿈을 놓지 않고 정진하며 살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권비영 작가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작은 떨림이 묻어나온다. “어쩌다 이렇게 뜨게 돼서 행복한 시간을 갖고 있다”는 그녀다. 다음 작품으로 일본의 가라쓰나 아리타로 끌려간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조선의 도공들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단다. 이번에도 자료수집차 여행 다닐 때 남편이 많이 도와줄 것 같다며 슬쩍 남편에 대한 감사를 내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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