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성 준
제주특별자치도농업기술원장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고향에 대해 애착을 갖는다. 필자는 58여년을 고향 제주에서만 살아왔다. 이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애향의 정감 더욱 짙어가는 것을 느낀다.
내 고향 제주에는 전래의 신화(神話)와 무속 신이 너무 많다. 고향사람들 얘기로는 1,800여개의 신이 있다고 한다. 이는 사나운 태풍이 많이 불어 파도와 바람피해가 심해 신에 의지해 그 재해를 피하려는 심리에서 이 같은 무속과 신이 많게 된 게 아닌 가 본다.
제주사람들은 작은 땅에서 지역마다 각기 다른 다양한 제주어를 사용한다. 58년간 제주땅에 살면서도 알아듣지 못하는 전혀 생소한 제주어가 아주 많다. 제주어는 억양이 세고 투박해 거칠게 들린다. 그러나 제주사람들은 억양은 소리의 크기일 뿐 반감을 지닌 게 아닌 정감이 서린 말임을 느끼며 산다. 제대로 된 제주어는 정말로 부드럽고 정감이 간다.
제주어로 ‘작작하라’는 말이 있다. 그만하라는 뜻이다. 제주어의 뜻을 새기면 아주 재미있다. 이에 필자는 퇴직하면 제주어의 오묘한 내용을 정확히 알아보는 일을 하고 싶다.
필자는 농업생태원을 조성하면서 제주도 전통초가집을 지었던 경험이 있다. 제주 초가집은 나무를 구해 못을 전혀 쓰지 않고 나무사방을 파 맞추어 조립한다. 바람과 비가 많아 썩지 않고 허물어지지 않도록 단단한 나무를 짜 맞추어 지어서 예술적 건축기술을 자랑한다. 지금 사람들은 이 같은 전래 초가집을 좀체 짓지 못한다. 나무 구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목공기술이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밭은 화산으로 생긴 땅이기에 돌이 많다. 그 돌을 주워 밭의 경계를 돌담으로 쌓았다. 그런데 이 돌담 돌을 어긋나게 쌓아 바람이 세게 불면 담은 흔들리지만 웬만해서는 무너지지 않는다. 거친 바람이 피해나가도록 돌담을 쌓은 조상들의 지혜가 놀라울 뿐이다.
공중에서 햇볕이 깃든 제주들판을 보면 필시 신도 도저히 그리지 못할 것 같은 아름다운 그림이며 예술품이다. 특히 광활한 ‘촐왓’(자연초지)과 돌담이 어우러진 오묘한 아름다움은 제주자연의 극치이다. 유네스코는 이 같은 제주도의 아름다운 경관에 매혹돼 한라산, 성산일출봉, 용암동굴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한 것으로 본다.
제주에는 갯마을에 바다신을 모시는 당집이 많다. 각 마을마다 뱃사람들의 무사안녕을 빌기 위해 당제를 지낸다. 음력 2월1일부터 15일 사이에 영등굿을 지낸다. 이 역시 바다에서의 무사안녕을 비는 뜻으로 배를 띄우는 굿인데 스님과 무당이 주도한다.
제주의 혼례(婚禮)는 3일간 치르는 게 관례였다. 잔치 첫날은 결혼회식용 ‘도새기’(돼지)를 잡는 날이다. 돼지고기 삶은 국물에 무청을 썰어 넣고 모자반이라는 해조류를 넣어 끓이는데 이것이 돗국물이다. 여기에 쌀과 보리, 팥이 혼식된 ‘반지기’라는 밥과 같이 먹으면 음식궁합이 아주 잘 맞는 잔치음식이었다. 잔치 둘째 날은 가문(家門) 잔치. 하객(賀客)의 쟁반에 돼지고기 3점, 순대 1점, 술 석잔을 주는 게 관례였다. 집안 식구는 내장고기를 개인별로 쟁반에 담아 먹는다. 이날 동네주민들은 품앗이로 혼가(婚家)일을 돕느라 동네잔치가 됐다. 셋째 날은 아주 가까운 가족만 모여 검소하게 혼례를 마친다.
이 모두가 어린 날에 듣거나 겪었던 추억들이고 아름다운 풍습이었다. 지금은 도시화되면서 잊혀져가는 농촌의 전통적인 삶의 문화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제주에는 많은 설화(說話)와 전통무속문화가 부지기수로 많다. 앞으로 이런 전통문화를 발굴하는 일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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