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파브르 김진일 교수

 

파브르곤충기 10권 완역한 파브르 닮은 풍뎅이 박사

“파브르곤충기는 과학이며 문학,
원작의 가치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

파브르에 대한 재해석
창 앞으로 북악의 수려한 전망이 펼쳐지는 사직동의 연구실에서 만난 김진일 교수(68)는 10권의 파브르곤충기 완역을 막 끝낸 피곤함이란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고요함이 표정에 깃들어 있었다.
“책 번역을 마친 것은 좀 오래 되었고, 수정 작업과 편집 작업에 시간이 좀 걸렸죠. 모두 합쳐 1권 출간부터 10권이 나오기까지 7년쯤 걸렸습니다.”
이미 3년 전 쯤, 번역을 다 마친 상태여서 여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김진일 교수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가  잘 모르는 파브르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곤충학자로만 파브르가 알려져 있지만 프랑스 현지에서의 파브르는 철학자이자 시인으로 더 유명합니다. 사실 그의 곤충기도 시적, 철학적 요소들이 꽤 내포돼 있지요.”
다행히 파브르곤충기는 문체가 간결하고 문학적 요소보다는 곤충에 대한 사실이 주요 내용이라 프랑스에서 유학한 곤충학자인 김진일 교수가 번역하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김 교수는 파브르곤충기야 말로 동물행동학이 정식 학문으로 탄생하기 100년도 훨씬 전에 곤충들의 생태와 습성을 관찰해 기록한 위대한 저서라며 파브르의 역작을 원전에 충실하게 번역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말했다.

파브르곤충기 번역은 ‘내 사명’
김 교수가 파브르와 ‘파브르 곤충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유학 중이던 1970년대 후반. 파브르가 관찰하고 연구한 곳을 자주 돌아다녔고, 언젠가는 ‘파브르 곤충기’를 완역해 한국에 소개하겠다는 생각을 품은 것도 그 즈음이었다. 그 다짐을 30년 만에 이룬 셈이다.
“프랑스어에 익숙하고, 국내에 곤충학이 도입된 초기에 공부하다보니 다양한 곤충을 다루었기에 이 책을 번역할 수 있었지요. 이런 조건을 갖췄고, 한 평생 곤충 연구를 해 온 나 같은 사람이 아니면 누가 시도라도 해 볼 생각을 하겠어요? 내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교수는 요즘 곤충학자들은 자기 전문 분야의 곤충만을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경향이 세계적 추세여서 다양성에 있어서는 원로 곤충학자들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말한다.
“앞으로 저 원전을 번역할 사람이 나오기 힘들 겁니다. 저만 해도 초창기 사람이니 넓게 공부했거든요. 풍뎅이도, 나비도. 그런데 요즘은 풍뎅이라도 모래풍뎅이 하나만 파요. 다른 풍뎅이는 몰라요. 결국 ‘내가 죽으면 이걸 할 사람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김 교수는 “파브르가 곤충의 학명을 잘못 표기했거나, 나중에 학명이 바뀐 것들이 많아 현재 통용되는 학명으로 일일이 바로잡는 일이 가장 힘들었던 점”이라고 털어놓았다. 우리나라에 없는 종은 우리말 이름을 지어 붙였고, 파브르가 오판했던 생물학적 사실이나 과학적 정보들은 주석을 통해 바로 잡기까지 했다고.

요즘 곤충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얼마 전, ‘곤충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고 최근에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등의 곤충이 자연생태학습 및 애완용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 김 교수는 우려되는 부분을 조심스럽게 짚어주기도 했다.
“아이들이 대형 딱정벌레를 배터리 없는 장난감쯤으로 여기는 등 오히려 생명경시 풍조의 우려도 있고, 한때의 유행으로 인한 과당경쟁의 염려도 있지요.”
콘크리트 속에서만 자란 아이들에게 애완용 곤충 기르기가 정서안정이나 교육용으로 유용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역기능도 살펴야 한다고 충고한다. 애완용 곤충시장만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줄 알고 우르르 몰려드는 것보다 천적용, 수정용, 환경정화용 등 다양한 곤충시장에 대한 다각도의 연구와 홍보가 더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곤충이 사라지고 있다
김 교수는 연구실이 있는 사직동에서 청와대 방향의 청운동으로 올라가는 길로 자주 산책을 즐긴다. 40분 남짓의 그 산책길에서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곤충학자의 눈엔 100여 마리 정도의 곤충들이 눈에 띄었다는 것. 그러나 요즘은 일부러 눈 크게 뜨고 찾아봐도 곤충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곤충 숫자가 줄어들었다는 게 김 교수의 지적이다.
“참~ 간단치가 않아요.”
짧은 말 속에 걱정이 가득 배어있다.
이렇듯 곤충들이 사라진 이유로 김 교수는 환경오염을 먼저 지적했다. 그리고 요즘의 이상기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온난화로 인한 기후의 변덕스러움을 또 다른 원인으로 꼽았다.
“풀이 들쭉날쭉 나오면, 물론 그 풀을 먹이로 하는 곤충에도 영향이 있겠죠? 풀이 안나왔는데 곤충이 먼저 알을 까도 문제이고, 풀이 없어진 다음에 곤충이 나와도 생태계가 어수선해지는 거지. 그 종은 전멸할 수도 있고...”
40년간 곤충과 함께 살아온 김 교수의 우울한 경고다. 곤충이 사라지게 되면 자연생태계의 피라미드가 흔들리고 그 후의 과정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어서 환경과 기후온난화에 대한 각성과 환경을 지키려는 실천도 다시 한번 주문했다.

인류의 무게 1만 배의 곤충무게
“도무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곤충이 지구 생물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상상을 못하죠?”
우리나라 곤충학의 권위자인 김 교수는 곤충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이 인류에 대한 커다란 경고임을 곤충의 무게에 빗대어 알려준다. 지구상에 곤충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를...
“전 세계의 개미를 다 모아놓으면 무게가 얼마나 될까요? 어디까지나 추산이지만 개미 체중을 합치면 인간의 100배가 돼요. 개미는 전체 곤충의 100분의 1밖에 안되니까 곤충 무게가 사람 종족의 1만배라는 얘기예요.”
그런 의미에서 지구의 사이클을 돌려주는 게 사람보다는 곤충이라는 주장도 사뭇 재미있게 들린다.
이제, 젊은 날부터의 오랜 소망이었던 파브르곤충기 완역본을 세상에 선보이게 된 노 교수의 바람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파브르곤충기를 읽으면 발상의 전환이 돼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쉬운 길인 지름길을 제시해 줍니다. 그런 실험 사례들이 무궁무진하게 등장합니다. 그래서 특히 이번 책은 청소년들이 많이 읽고 통찰과 창의성을 키웠으면 합니다.”


■파브르곤충기...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시인이며 곤충학자였던 장 앙리 파브르(1823∼1915)의 저서로 ‘곤충학의 바이블’로 불리는 세계적인 고전이다. 파브르가 56세 때인 1879년 첫 권을 펴내 86세 때인 1909년 10권으로 완성한, 원문만 2200쪽이나 되는 대작이다. 곤충의 본능이나 습성, 생태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지만 작은 생명체를 통해 바라본 인간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시적인 문장으로 담아낸 문학 고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동안 국내에서 출간된 ‘파브르 곤충기’는 흥미 위주로 일부분만 발췌한 요약본들이 대부분이고, 그나마도 아동을 대상으로 한 책들이 많아 진면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현암사의 ‘파브르 곤충기’(전 10권)는 원전의 내용과 맛을 온전히 살려낸 곤충학자에 의해번역된 첫 완역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진일 교수...

1942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을 거쳐 파브르가 학위를 받은 프랑스 몽펠리에 2대학에서 곤충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우리나라 풍뎅이를 전문적으로 분류한 전문가이고 40여년 동안 곤충 연구에 매진해 온 국내 대표적인 곤충학자다.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주요저서로 ‘한국곤충명집’, ‘한국곤충생태도감-딱정벌레목’, ‘쉽게 찾는 우리 곤충’ 등 다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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