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계 옥
경남 고성 명예기자

 

예부터 공동체의 명절이라 일컬었던 정월 대보름이 지났다. 최근 경기위축에 따른 전반적인 소비 둔화와 함께 핵가족화로 정월대보름의 의미가 퇴색 되어가고 있어 예전처럼 넉넉함과 흥청거림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 때문에 성수품 수요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대보름을 며칠 앞두고 열린 장에서 만큼은 활기가 가득 찼고, 보름 장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온다.
설 대목 장 만큼 북새통은 아니어도 평소와는 달리 인파로 북적거렸고, 노점상도 많이 눈에 띄었다. 장바닥에 좌판이 쭉 펼쳐져 있는 이색적인 모습에서는 시골장의 넉넉함이 배어 있다. 시장 전체 경기는 좋지 않지만 어물전과 채소전이 그런대로 매기가 있다.
재래시장에는 볼거리와 살거리가 다양하다. 마트에 없는 것도 많고 값이 싸고 신기한 것도 많다 보니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익숙했던 아이들에게도 재래시장은 별천지일 수밖에 없다. 추위와 허기를 달래면서 먹는 풀빵도 5일장의 별미이다.
“마제 아지매 아직도 산꼭대기에 사요? 요새 통 안 보이더니만“ 하고는 습관처럼 콩나물을 거저 두 움큼 더 얹어준다. 계속된 한파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장날에 발걸음을 뚝 끊고 살았다. 집에서 손수 콩나물을 길러와 파는 K할머니는 10여 년 째 한자리를 고집스럽게 지키며 단골손님을 맞고 있다. 오늘 따라 할머니의 안부가 더 정겹게 들린다.
20여 년 전 700곳을 웃돌던 전국의 5일장은 이제 시장 현대화로 옛 모습은 사라져가고 있다. 하지만 훈훈하고 구수한 인정과 인심은 아직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대보름에는 나물명절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나물을 만들어 먹는다. 그 수가 무려 9가지나 되다보니 나물명절이란 말이 나올만하다. 이날 좌판에 내 놓고 파는 것 대부분도 나물거리였다. 보름에는 한 해를 건강하게 보내기 위한 소망이 담긴 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나물을 만들어 먹는데, 이날 상에 오르는 곰취, 시래기, 박나물 등의 여러 가지 나물은 가을 햇살에 말려 두었던 묶은 나물이다.
보름에는 오곡밥과 9가지나물, 부름 등을 먹으며 풍년과 건강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다. 땅콩, 호두, 잣 등 부름을 제 나이 숫자대로 깨물어 먹으면 한 해 동안 부스럼이 나지 않고 치아가 튼튼해진다고 한다. 1년 내내 좋은 소식들만 들으라며 마시는 ‘귀밝이술’은 맑은 청주였는데 부녀자들까지 마셨단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무나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 더위 사가라’ 혹은 짧게 ‘내 더위’라고 말하면 그 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믿었던 일종의 놀이로 ‘더위팔기’ 풍습도 있다. 이렇듯 내 복을 빌며 이웃 간의 나눔의 정까지 두텁게 했던 대 보름 음식들은 달처럼 풍성한 정겨움이 느껴진다. 또 잊혀져가는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대보름은 우리민족의 밝음 사상을 반영한 명절이다. 그래서 1년 중 첫 보름달이 뜨는 정월 대보름달을 조상들은 특히나 중요하게 생각했다.
지금도 달은 사람들 마음속에 꿈을 심어 준다. 먼저 달을 보는 사람이 재수가 좋다고 하니 높은 곳에 올라가 휘영청 떠오르는 달을 맞아 소원을 빌어야겠다. 한 해 좋은 일만 가득하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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