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요칼럼

최 정 태
부산대학교 명예교수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 저자
본지 칼럼니스트

 

선진국엔  곳곳마다 도서관이 있고 시민들은 늘 책을 가까이 한다.
선진국치고 시원찮은 도서관을 가진 나라는 없다.

우리에게 도서관은 무엇인가? 보통 우리가 알기로는 책을 모아두고 학생들이 공부하는 방이거나, 아니면 심심한 주부들이 어쩌다 찾아가서 소일하는 곳인 줄 아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때문에 도서관은 우리의 실생활과는 거리가 멀고,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만다.

세상을 바꾼 도서관
100여년 전, 미국의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는 자선사업으로 미국과 영국에 2,500개의 도서관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헌정하면서, 도서관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나는 대중을 향상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기관으로 도서관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도서관은 이유 없이 아무것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오직 스스로 돕는 자만을 도우며 사람을 결코 빈곤하게 만들지 않는다.”
19세기 초, 영국 또한 가난의 수렁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먹고 살기에 급급한 서민들에게 지식의 공급과 문화적 혜택은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경제 불황기속에 런던의 급진주의자들은 노동자의 권익과 개인의 직업을 의회가 책임을 지도록 하는 이른바 ‘인민헌장’이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 운동은 결과적으로 권력과 부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는 데는 정부의 소극적 지원보다 스스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자각하게 되는 동기를 부여했다. 운동의 여파로 ‘차티스트 독서실’이 생겨 조직원들에게 무료로 책을 빌려 주는 제도가 전국적으로 일어나, 독서실은 가난한 사람뿐만 아니라 중산층에 이르기 까지 지식을 공유할 수 있고, 정보의 굶주림에 해갈을 주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 독서운동은 오늘날 영국 도서관의 근간이 되어 전국의 공공도서관 수가 지금 우리나라 공공도서관 수 644개보다 7배가 넘는 4,567개나 된다.
이렇게 공공도서관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기까지에는 사회의 일부지식층과 부유층을 중심으로 하는 이익집단에서는 도서관을 만들고 확장하는 것이 기존질서에 대한 위협이라며 저항도 많았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하층민이 얄팍한 지식으로 무장하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된다.” 라고 공격의 포문을 열자, 책을 택한 교양인은 이렇게 응수했다. “독서는 가난한 급진주의자들이 폭도로 돌변하는 것을 문화와 예절의 품으로 끌어들인다. 그 결과 행동은 점잖아지고 말은 고상하며 신중해진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쉽게 타락의 길로 들어서지만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은 그 반대이다.”

책에는 보물이 담겨있다
지금 사회 일각에서는 우리가 선진국에 진입한 것처럼 떠들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멀었다. 교양인으로서 문화와 예의가 미흡할 뿐 더러 대부분 서민층은 삶의 질이 열악하며 새로운 지식과 정보에 뒤처져 있다. 이것을 타파하는 길은 오직 책을 읽는데 있다. 책을 읽으면 큰 뜻을 품은 자에게 그 안에 담겨 있는 귀중한 보물을 안겨주고, 책 읽는 취미는 이보다 한 단계 더 낮은 수준의 취미를 멀리할 수 있게 하며, 사람을 결코 빈곤하게 만들지 않는다.
세계의 문화 선진국들은 곳곳마다 도서관이 있고, 시민들은 늘 책을 가까이 한다. 선진국치고 시원찮은 도서관을 가진 나라가 없고, 후진나라치고 반반한 도서관이 없다는 사실은 만고의 진리이기도 하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고, 정신적 빈곤을 해결하는 길은 명확하게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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