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음식과 추억, 세 번째 이야기

김 은 미 생활지도관
농촌진흥청 발효이용과

하늘이 만일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주성(酒星)이 하늘에 없었을 것이고
땅이 만일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땅에는 주천(酒泉)이 없었을 것이다.

하늘과 땅이 이렇듯 술을 좋아하니
우리도 술을 좋아함에 하늘에 부끄러울 게 없다.
청주(淸酒)는 성인이요, 탁주는 현인이라는 말대로 현인, 성인을 이미 다 마셨으니 하필 신선이 되길 바라겠느냐. (중략)

중국 당시대 시선(詩仙)이라 불린 이태백(李太白)의 작품이다. 제목은 ‘월하독작(月下獨酌)’이라고 하니 해석하면 “달빛 아래 홀로 술을 마시다” 정도이겠다. 술을 너무 좋아해 배 위에서 술을 마시며 놀다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어, 일생동안 술을 즐기며 술 한 동이에 시 백편을 지었다니 분명 시선(詩仙)과 주신(酒神)을 합쳐놓은 인물일 것이다.
당나라 이태백이만 술을 즐겼겠는가. 삼한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 술 문화는 조선시대 절정에 달해 문헌에 기록된 술 종류만도 360여종이라 한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집집마다 제삿술을 받드는 것이 일반화되어 가양주문화가 활짝 꽃을 피웠다. 시어머니의 손에서 며느리의 손으로 집집마다 비법이 전해지면서 갖가지 술이 빚어졌고, 명문 집안과 종갓집에는 독특한 명주가 대물림되어 ‘명가명주(名家銘酒)’라는 말도 생겨났다.
명문 집안에 명가명주가 있었다면 농사꾼에겐 농주(農酒)가 있었다. 충남 당진의 드넓은 들판 한가운데 자리 잡은 농가에서 ‘짚가리 술’이라는 이름의 농주를 만났다.
충청도 사투리가 구수한 아주머니의 설명에 의하면, 예전에 집에서 술 빚는 것을 단속했던 시절 술을 감춰놓는 방법으로 짚가리로 덮어 위장한데서 ‘짚가리 술’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밀주 단속반원이 와서 쇠꼬챙이로 짚단 속을 아무리 쑤셔도 찾을 수 없도록 꼭꼭 숨겨놓다 보니 어떤 술독은 주인조차도 찾지 못할 때가 있어 해를 넘길 때가 있었고, 이렇게 잃어버렸다 찾은 술독의 술은 기가 막히게 맛이 좋았다고 한다.
위스키도 높은 세금을 피해 산으로 은닉해 있다가 오크 통을 우연히 만나 명성을 얻게 된 술이니, ‘짚가리 술’이나 ‘갯둑 술’이나 우습게 볼 일이 아닌 것 같다. 고유의 내력과 함께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어 술 맛을 더해주는 내포평야 의 농주인 ‘짚가리 술’, ‘갯둑 술’이 모처럼 불기 시작한 우리 술 붐을 타고 만인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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