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이낙연

한강의 매서운 강바람이 남아있는 정월의 셋째주 목요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이낙연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장을 만났다. 그의 농업 농촌에 대한 계획과 농촌여성의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위원장의 의지, 그리고 농촌 발전에 대한 그의 구상들에 대해서 직접 들어 보았다. 굵은 억양과 유머로 질문에 차근차근 대답해 준 이낙연 위원장은 무엇보다 농촌을 이끌고 나갈 역량있는 지도자들의 배출을 기대하고 있었고, 특히 농촌여성들이 이 일을 맡아주길 부탁했다.

국회 본관 5층, 농림수산식품위원장실에 들어섰을 때 무엇보다 양쪽 벽에 걸린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전남 영광 포구의 대형 사진이 눈에 띄었다. “위원장의 고향인 영광 법성포 사진을 걸어두었나 보다”하고 생각했는데 웬 걸이다. 그  맞은 편에는 경남 하동의 풍광이 담긴 사진이 걸려있고, 또 안쪽의 위원장실에는 경북 울진의 후포항, 전남 장성의 축령산, 강원 횡성의 한우, 충남 서산의 간척지 사진이 사방 벽을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다.
“경상, 전라, 충청 등 각 지역 안배와 농림, 수산, 축산, 임업 등 각  분야를 고루 안배한 사진들입니다. 이 방은 저뿐 아니라 농림수산식품위원들이 사랑방이라서 일부러 신경 쓴 것인데 그래도 차별했다고 말하는 의원들이 있습니다. 허허”
위원장으로서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과 조화를 이루려 애쓰는 이 위원장의 마음 한쪽을 그 사진들이 증명해 주고 있었다.

 

 

어머니에게서 배운 삶의 지혜
이 위원장이 살면서 가장 의지하며 힘들 때 찾는 곳은 고향인 전라도 영광이다. 그곳에는 올해 85세 되신 노모가 고향마을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여늬 어머니라도 다 그러하겠지만 저희 어머니는 10남매를 낳아 셋을 잃고 그 중 7남매를 길러주신 헌신적인 어머니이십니다. 학교를 단 하루도 다니시지 못했지만 삶을 사는 굵은 지혜를 몸소 보여주고 일깨워주십니다. 평상시에는 말씀이 별로 없으신 분이지만 ‘이것이 아니다 싶으면 그것은 얘기를 해주십니다. 그래서 이럴까 저럴까 망설여지는 일이 있으면 어머니 생각을 하게 되고, 산만하거나 걱정꺼리가 있을 때면 어머니를 찾아 뵙지요. 아마도 전 마마보이인가 봅니다.”
마침 인터뷰가 있던 날의 나흘 후가 어머니의 생신이어서 형제자매가 모두 주말에 고향에 모여 조촐한 잔치를 열 계획이라고 했다. 이 위원장 남매들의 어머니에 대한 정은 각별해 보인다. 몇해 전 이 위원장을 포함한 7남매는 어머니 팔순 기념으로 형제자매들이 어머니에 대한 추억의 단편들 을 한권의 책으로 엮어 어머니에게 바쳤다. 성장과정 속에 어머니와의 추억들이 묻어나는 사연들은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신사’로 불리고 싶다
이 위원장은 자신을 소개하는 프로필에서 “신사로 불리고 싶은 정치인”이라고 희망사항을 얘기한 적이 있다. 그 신사라는 의미가 궁금해서 물어봤다.
“글쎄요...잘 안되니까 목표를 삼은 것이지요. 남에게 상처 주지 않고, 한마디의 말이나 손짓도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고 싶다는 뜻이지요. 다른 정치인은 대권을 잡고 싶다거나 당권을 잡겠다고 하는데 아직 목표가 뚜렷하지 못해 이런 소릴하니까 어찌보면 참 한심한 얘기지요.”
이 위원장은 참 소박하면서도 스스로의 삶을 바르게 다잡는 실천의지가 엿보이는 신사가 되기를 소망했다.
“정치인도 수천, 수만 명의 눈이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낙연이 매력있다는 말보다는 우리나라 지도자들에게 믿음이 간다라는 느낌을 국민들에게 주고 싶습니다. 전 25.7평의 아파트에 사는데 그 동네에서는 고령자에 듭니다. 평수가 그닥 크지 않아서 젊은층이 많이 사는 동네인데 혹시 술을 많이 먹고 들어가다 누가 보면 국회의원이 술만 먹는다는 그런 소리를 들을까봐 더 조심하지요.”
새삼 조심하고 겸손하게 몸을 낮춰서 국민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받고 싶은 이 위원장의 의지와 각오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콩밭매던 어린시절엔...
농림수산식품위원장인 이의원이 농사를 직접 지은 경험이 있는지, 농사와 농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가 궁금한 사람들도 있다.
“농사일을 잘 못해서 무서운 아버지한테서 야단을 많이 맞았던 기억이 있지요. 농사일 가운데서 콩밭 매는 일이 가장 힘들었고요. 경사지고 뜨거운 콩밭을 매다가 어머니께 ‘난 소 뜯길께’하며 꾀를 피워도 어머니는 아무 말씀 안하셨지요. 소 뜯기는 일이 제일 편하고 쉬웠어요. 풀밭에 풀어놓고 휘파람이나 불고 있으면 되니까요.”
농림수산위원장을 맡고 나서는 아무래도 농촌현장을 찾을 일이 더 많아졌고, 아련한 고향의 기억들도 더 새록새록 떠오른다고. 농촌을 이끌 사람과 농촌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요즘 이 위원장의 주요 관심사 중의 하나다.
“일본의 농촌을 다녀보니 활력을 되찾고 되살아난 일본 농촌의 공통점은 지도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중심인물이나 중심세력이 있다는 것, 한 사람일 수도 그룹일 수도 있지요. 훌륭한 지도자가 있는 농촌은 활기차고 되살아나며 그렇지 못한 농촌은 피폐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일본의 농촌에서 볼 수 있었죠. 일본 오가와촌의 고등학교 동창생 7명이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귀향해 의기투합해서 지역 활성화를 이룬 오가와촌의 사례는 농촌마을을 되살린 좋은 본보기입니다.”

여성이 앞장서는 농촌 기대돼
“농촌 경제도 여성이 주도하는 시대가 바로 우리 앞에 와 있고, 여성이 주도 하는 농촌은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 나가리라 믿습니다.”
이 위원장은  여성 주도의 시대를 준비를 가지고 맞을 수 있도록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농촌여성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지금처럼 농촌여성은 농사일에 가사일 까지 함께 떠 안는다고 생각할게 아니라 농촌의 경제 자체를 책임진다는 것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여성들을 독려 했다.
“여성이 혼자하기 어려우면 국회나 정부, 지자체와 함께 대비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아울러 농촌여성신문도 농촌의 여성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할 뿐아니라 그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농촌여성신문이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많은 노력을 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더 나이 들면 중앙아시아쯤에서 영어와 일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이 위원장의 요즘 꿈은 우리나라 농촌마을을 부자되게 만드는 것이란다.

이낙연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장은
1952년 전남 영광군 법성면에서 출생, 광주제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6,17,18대 국회의원, 한일의원연맹 부회장이다. 민주당대변인, 원내대표, 동아일보동경특파원, 논설위원, 국제부장을 지냈다.  국정감사 7년 연속 우수 국회의원, 2009년 최우수상임위원장으로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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