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계 선도 여성CEO …안성 서일농원 서분례 원장

 

전통 장류와 아름다운 농원으로 관광객 끌어
젊어서 계획한 양로원 설립 꿈 아직 진행형

초겨울 찬바람이 살며시 이는 오후, 마치 군(軍) 사열 장병처럼 즐비하게 늘어선 2천여 개의 옹기들이 따사한 햇볕을 받아 눈부시게 빛난다. 그 많은 옹기들은 햇볕을 흠뻑 머금어 맛있게 발효가 되는 듯 군침이 돈다.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화봉리에 소재한 서일농원(원장 서분례·60)은 26년 전인 1983년 이곳에 터를 잡았다.
중부고속도로 일죽IC를 나와 좌회전 후 일죽휴게소 맞은편 우측 음성행 318번 국도로 3㎞를 달리면 정겨운 돌담의 서일농원이 반긴다. 장승과 솟대와 함께 고상한 여인의 모습을 지닌 소나무가 흡사, 고궁의 정원을 연상케 하는 서일농원. 이곳에서 서분례 원장을 만났다.

자연농법 해야 건강식품 얻어
기다란 다상(茶床)에서 차를 끓이다 기자를 맞은 서분례 원장은 된장·김치·젓갈 등 우리의  발효식품에 대한 무한한 애착을 열변으로 표명했다.
“우리 민족은 축복받는 사람들입니다. 지구온난화와 환경파괴, 패스트푸드의 범람으로 많은 사람들이 몸을 망치고 있지만, 우리 민족은 김치·된장·젓갈·식초 등 발효식품을 먹다보니 지난번의 사스 파동도 무사히 피해갈 수 있었죠. 최근 유행하고 있는 신종인플루엔자도 외국에 비하면 경미한 상황입니다. 왜 그런지 아시죠? 발효·숙성된 김치에는 유산균이 요구르트보다 많아 병을 쉽게 물리친다고 봅니다.”
서 원장은 식품산업의 앞을 내다보기보다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발효식품의 원리를 잘 깨우치고 지켜나가는 것이 더욱 소중한 사명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전통 발효식품으로 밥상을 차려 국민건강을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땅·물·공기오염을 막는 자연농법으로 되돌아가야 건강한 식품을 얻을 수 있는 거죠.”

 

 

농원 조경 힘써 관광객 모아
서분례 원장은 20대부터 바느질 솜씨가 있어 양장점을 운영했다. 당시엔 기성복이 없을 때라 바느질만으로도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모은 돈은 남편 모르게 장판 밑에 고이 숨겨 보관했다.
남편은 당시 부실 여행사를 인수해 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서 원장은 장판 밑에 감춰 둔 돈을 친지에게 빌린 돈이라며 남편에게 건넸다. 하지만 ‘깨진 독에 물 붓기’였다. 결국 그녀는 남편의 여행사를 살리기 위해 직접 여행사업에 손을 대기로 했다. 28세 때였다.
그녀는 일본 관광객을 모집하기 위해 인삼과 송이버섯을 선물로 들고 도요타자동차 회장을 설득해 도요타자동차 직원의 한국유치를 뚫어내며 도요타와 7년간 일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서울 테헤란로에 120억 원을 호가하는 빌딩을 사들이며 관광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IMF사태가 터지면서 1983년 빌딩을 40억 원이란 헐값에 내놓고 빚을 정리했다. 수중에는 3천만 원 뿐이었다. 이때 평소 알고 지내던 스님의 권유로 땅 5,700평을 사게 됐다. 이 땅이 현재의 농원이 자리한 곳이다. “여행사를 할 때 매월 직원들과 양로원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했죠. 선행에 대한 묘한 쾌감에 직접 양로원을 지으려고 부지를 마련한 것이었죠.”
서분례 원장은 그 땅에 콩을 심어 첫해 다섯 가마를 수확했다. 힘들게 생산한 콩을 시장에 내놓았지만 헐값을 쳐준다는 상인의 말에 그냥 메주를 쑤어 된장을 담가 고객과 친지에게 선물로 나눠주었다. 그녀는 왕년의 바느질 솜씨를 발휘해 작고 예쁜 옹기에 레이스가 달린 무명천까지 덮어 정성을 더했다.
선물 받은 친지들은 된장 맛 좋다고 답례로 봉투에 10만원을 넣어 보내오기도 했다. 된장맛에 자신을 얻을 그녀는 본격적으로 된장 가공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된장맛이 입소문으로 주문이 늘자 이웃주민들이 땅을 사 달라고 졸라 주변의 땅 3만평을 추가로 사들였어요. 언덕바지 땅은 깎아 내고 논은 객토로 돋우는 등 땅을 화장(化粧)해 지금의 아름다운 농원을 일구었죠.”
된장만을 팔아선 사업성이 불투명했기에 관광객을 농원으로 끌어 모으기로 했다. 그녀는 전북 진안군 수몰지구에서 소나무를 사다 옮겨 심었고, 유채밭, 잔디밭, 매실농원, 배농원을 가꾸고 연못까지 조성해 연꽃을 가꿨다. 봄이면 피어나는 울긋불긋한 야생화와 매실과 배꽃의 아름다운 경관, 꽃내음으로 관광객을 유혹해 서일농원의 명망을 얻어냈다. 또한 도열된 된장 옹기 속의 장아찌 맛을 보여달라는 관광객들의 성화에 농원 안에 식당도 개장하게 됐다.
봄철 관광 성수기에는 식권을 받아 기다리는 고객이 400~500명이 넘는다. “고객들은 꽃길을 걷고 푸른 초원을 돌며 불평 없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죠. 이마에 살짝 땀이 맺힐 무렵  맛있는 밥상을 받는 고객들의 모습을 보면 고맙기 그지없죠. 그래서 고된 줄도 모르고 농원을 가꾸는 것 같아요.”

 

 

 

“된장은 좋은 재료와 손맛이 좌우”
된장 얘기로 얘기를 돌리자 서 원장은 또다시 열변을 토했다.
“1년에 700가마의 콩을 이웃농가와 계약재배해 시세보다 높은 값으로 사들입니다. 주름살도 없고 제초제도 주지 않은 국산 햇콩만을 엄선합니다. 물은 150m 지하암반수를 씁니다. 필터로 이물질을 거른 살아있는 물을 쓰는 거죠. 그리고 된장은 살아있는 식품이라 숨 쉬는 옹기에 담아요.
옹기는 공기구멍이 큰 남원지방의 것을 골라 씁니다. 통기(通氣)가 잘 돼야 발효가 잘 되요. 소금은 전남 영광의 광백사 천일염을 850℃의 불에서 볶아 비소와 수은을 걸러낸 후 장의 간을 맞추죠.”
서 원장은 메주를 만드는 일에도 정성이 남다르다. “메주는 사람 손으로 모양을 내야 제대로 발효가 돼요. 힘들어서 기계로 했더니 기계압력이 너무 세 메주에 균이 제대로 침투해 살지 못하는 거예요. 잘 뜨지 않은 메주로 담근 된장은 맛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죠.”
그녀는 하는 수 없이 100가마분의 메주를 땅에 묻고 말았다. 그리고 그 후에는 메주 성형(成形)은 힘들어도 반드시 사람 손으로 하고 있다.
“서일농원은 어머니의 정성스런 마음으로 된장·고추장·간장 등 장류와 장아찌, 매실식초, 김치 등을 담가 어머니의 손맛을 찾는 이들에게 드리고 있습니다.” 그녀의 말에 장인의 신념이 배어있다.
된장맛 뿐만 아니라 농원 곳곳의 조경과 건물 내에 걸린 그림들을 보면 그녀의 예술적 감각이 남다름을 알 수 있다.

“소규모 가공사업 규제 완화해야”
남편과 아들은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에 지점을 내어 여행업을 계속하고 있다. 농원 운영은 미국유학을 포기한 딸과 함께 하고 있다. 떨어져 살다 보니 1년에 한번 가족들이 모이는 게 낙이라고.
그녀는 40여명의 농원 직원과 신종플루로 인해 해외여행사업이 침체되면서 200여 여행사 직원의 봉급 주는데 머리가 지끈지끈 하다고 한다. 그러나 농원 땅을 사면서 다짐했던 양로원 설립 꿈은 접지 않았다고 다짐한다. 그 꿈 이루기 위해 서분례 원장은 직원과 함께 매일 장독대 앞에 모여 직원조회를 하고 국민체조로 몸을 푼 뒤에야 하루 일을 시작한다고 한다.
“소규모 가공사업을 하는 농촌여성에게 대기업의 잣대로 규제를 하는 것은 지나쳐요. 콩 씻고 쌀 씻은 물을 폐수로 간주해 폐수처리시설을 하라고 하는 것은 무리죠.”
농촌지역 소규모 가공사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완화가 꼭 필요하다는 얘기도 잊지 않는 서 원장.
요즘 희망근로사업이 지역에서 많이 펼쳐지면서 농번기에 일손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서 원장은 가공사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따뜻하게 돌봐주길 바란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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