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생태학자, 한양대 교육공학과 유 영 만 교수

 

15년간 55권의 책 펴낸 전직 용접공 교수


앞만 보고 달린 인생 정리하며
유영만 교수(46세)의 연구실은 마치 식물원에 온 것 같은 싱그러움으로 넘쳐났다. 연구실 문을 열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빽빽한 책꽂이와 서적들은 여느 교수들 방과 차이가 없었지만 천장까지 닿을락말락한 행운목이며 아이비, 스파트필름, 파키라, 고무나무들로 가득한 연구실안에선 상쾌한 숲 속 내음이 났다. 지식 생태학자라서 그런지 책과 식물이 조화를 이룬 연구실 풍경이다.
12월 10일엔 유 교수의 55번째 저서 ‘청년경영’이란 책이 세상에 나온다. 유 교수의 꿈 중의 하나가 나이보다 많은 책을 쓰는 것이었고, 이미 그 꿈을 이룬지는 꽤 되었지만 유 교수의 글쓰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유영만 교수는 ‘용기’‘how?물고기 날다’‘내려가는 연습’ 등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유명하지만 특이한 그의 이력 때문에 더 세상의 관심을 끈다. 이번 유 교수의 책에는 이렇듯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그의 성장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유 교수의 얼굴엔 어둔 그늘이 없다. 교수라는 직함의 포장지를 벗기고 보아도 반듯하고 윤기나는 모습이라 겉모습만 보고는 좋은 가정환경에서 편하게 공부만 하면서 곱게 자란 귀공자로 아는 사람들도 있단다. 실상은 파란만장한 인생스토리의 주인공인데 말이다.

 


 
20살에는 꿈이 없는 청년이었지만...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 요즘에 드물다고  하지만 제가 바로 그 표본이지요. 한마디로 태어나서 농·공·상의 모든 일을 안해본 것이 없습니다.”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와 농사를 지으며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유 교수는 졸업 후 “공부는 뭐하러 하냐? 나랑 농사나 짓자”는 어머니 말씀에 중학교 진학마저 포기한 채 꼬박 1년 동안 농사일에만 매달릴만큼 어려운 가정형편이었다. 이듬해야 간신히 어머니를 설득해 진학했지만 배추농사에 지게질에 농사일을 할 때가 더 많았다. 고등학교는 전액장학금에 기숙사까지 제공되는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로 진학해 전기용접기능사 자격증을 땄지만 뭔지 마음속의 응어리는 쌓여만 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했던 평택화력발전소에선 술로 지새우는 날이 많았단다. 인생목표가 정해지지 않아 방황하던 어느날, 우연히 서점에서 고시합격생수기집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이란 책을 보게 되었고 그날 눈이 번쩍 뜨였다. 공고졸업생의 사법고시 합격수기가 바로 유 교수의 인생전환점이 된 것이다.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며 법대에 들어가서 고시패스를 하겠단 목표가 생겼지요. 오직 방송통신고등학교 라디오 강의만으로 독학했고, 너무 늦게 시작한 공부 실력이라 법대는 힘들었고 교육행정고시목표로 방향을 틀어서 교육공학과에 들어갔습니다. 그후 대학입학 후에도 방황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결국 군대 제대 후 고시책들을 모두 태어버린 후에야 비로소 제 꿈이 고시가 목표가 아니었음을 알게 됐죠.”
사실 유 교수는 대학 때까지 그 흔한 위인전 한권 읽은 적이 없었는데 고시공부를 포기한 후 그때부터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히려 고시를 포기하고 나니 공부에 재미를 느끼게 됐고 당시 형편으론 가당치도 않았던 대학원의 꿈도, 박사의 꿈도 갖게되었다. 1학년 1학기 등록금을 제외한 모든 등록금은 장학금을 받아 공부했고, 과외와 야간빌딩 경비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주변 교수님들의 추천과 도움으로 오른 미국유학길에서도 초스피드로 2년 4개월 만에 학위를 마쳤다.
“한 학기 줄이는 게 생활비를 줄이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죠. 석사 4학기에 빈손으로 결혼해 오직 나 하나만 믿고 고생길을 함께한 아내와 함께한 유학생활이었습니다. 고생은 말할수도 없었지만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기에 열심히 헤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접시 닦기 등 미국생활 내내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했으니까요.”
박사 학위 취득 후에는 ‘살아있는 지식은 현장에 있다’는 생각으로 삼성인력개발원에서 5년을 꼬박 근무하며 ‘엄청난 살아있는 지식’을 배우는 기회를 가졌다. 5년이 넘으면 매너리즘에 빠질 우려가 있기에 낮엔 워크홀릭으로, 밤엔 논문과 책 읽기와 쓰기로 5년을 채우고 안동대 교육공학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의 첫 저서는 삼성에 근무할 당시인 95년에 나온 ‘지식경제의 학습조직’이다.
안동대학에 근무하면서 유 교수는 엄청난 독서와 글쓰는 연습을 할 기회를 가졌다고 한다. 안동에서의 생활은 한적하고 조용해서 매일매일 한페이지씩 단어를 연결시키며 새벽 5시까지 글 쓰는 연습을 하곤 했는데 55권이라는 방대한 양의 책을 쓰게 된 배경엔 그 당시의 글 쓰기가 큰 밑바탕이 되었다고 유 교수는 들려준다. 이젠 생각하는대로 글이 나오고 제법 언어의 유희까지 즐기게 되었다고 유 교수는 흡족해 한다.

방황을 해야 방향을 찾는다
“용접이란게 2가지의 이질적인 것을 녹여 붙이는 것인데 지식생태학도 지식경영학과 생태학을 접목시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공 간에 경계의 벽이 없어지고 넘나들기가 요즘의 추세인데 책 쓰기도 인문학적 배경으로 사람들에게 자신감과 에너지를 주고 동기부여를 하여 인생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으니 용접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2001년부터 모교인 한양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유 교수는 ‘가르친다는게 무엇인가’를 나름대로 질문하며 스스로 답을 구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들의 방황의 기간을 참고 견디지 못하고 없애려 하는 게 큰 문제입니다. 바닥을 기어봐야 걸을 수 있고, 걸어야 달릴 수도 있습니다. 대학 신입생 때부터 토플패인이 되는 학생들을 보면 여간 안타깝지 않습니다. 누구나 한 가지 재능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는 일, 바로 그것을 찾으면 그것에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길은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면 뒤에 생기는 것이 길이란 것을,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다보면 뒤로 길이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한다고 새삼 유 교수는 사상적 스승인 신영복 교수의 ‘길에 대한 철학’을 강조한다.
“요즘사람들이 철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철없이 아무 때나 나오는 과일들을 먹기 때문이라고 하죠? 모든 것은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것이 최선이고, 농사야말로 자연의 순리에 순응 하는 것이라 봅니다. 쌀 미(米 )자가 十자와 八자 두 개로 이루어져 농부의 88방울의 땀방울이 깃든 것이라는 말이 있죠. 기운(氣運)이 안나는 이유도 쌀을 너무 안먹어서 그렇다는 얘기가 있구요. 천천히 느리게 자연의 순리에 따른 삶이 행복하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농민들의 삶이 이 세상에서 가장 보람과 의미가 있는 행복한 삶이지요.”
유 교수는 농업이 희망이라는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진정 마음에서 우러난 얘기임을 강조한다. 또 유 교수는 농사를 지으며 얻는 다양한 체험들을 글로 써보기를 권했다.
“혼자서 힘들다면 여럿이서 공동 집필로라도 자연에서 얻는 귀한 삶의 체험과 교훈을 모아 책으로 엮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고 꿈을 키워주는 일, 바로 그것이 유영만 교수의 진정한 책쓰기의 목표이기에 55권째 책을 세상에 내놓는 유 교수의 마음은 흐린 초겨울 날씨와는 사뭇 다르게 쾌청하기만 하다.  


유영만 교수는
한양대학교 사범대 교육공학과에서 석사, 미국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교육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경제연구소와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인력개발과 학습조직에 관한 교육을 담당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즐거운 학습, 건강한 지식, 행복한 일터 조성을 위한 학문적 연구와 실천에 관심이 많다. 주요 저서로 ‘상상하여 창조하라’‘용기’‘지식생태학’‘how?물고기 날다’ 등과 역서로 ‘펄떡이는 물고기처럼’‘에너지버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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