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요칼럼

나 승 렬
농촌진흥청 기술협력국장
본지 칼럼니스트

 

때로는 작은 것이 아름답고 더 경쟁력이 있다. 저탄소 녹색성장시대에는 식물의 왜성(작은 속성)을 활용한 품종 개량이나 생산비 절감 방안이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예컨대 2m 정도의 키작은 사과나무와 밀, 1m 정도의 아주까리의 국제적 보급 사례를 재조명해 보면 알 수 있다.
유럽에서는 파라다이스 애플이라고 불리는 변종이 사과나무의 키를 낮추는 특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1913~1919년경 영국의 한 시험장에서 이러한 계통 중에 M계 대목(밑나무)을 선발한 이후 수많은 왜성대목이 개발돼 보급되고 있다.

우리사과의 70%가 왜성대목
우리나라도 20여 년 전부터 왜성대목이 도입돼 현재 전체 사과 재배면적의 70% 이상이 왜성대목을 사용해 재배하고 있다. 왜성대목을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반 대목을 활용할 경우 키가 4m가 넘어 관리 및 수확 작업이 용이하지 않아 노동력 확보가 큰 부담이 되고, 2~2.5m 정도로 낮추면 밀식재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멕시코에 있는 국제맥류옥수수연구소(CIMMYT) 노먼 볼로그 박사는, 1970년 농학자로서는 세계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1960년대 말 인도나 파키스탄을 기아에서 구출한 녹색혁명을 불러왔다는 공로 때문이다.
볼로그 박사에 의해 반왜성 소맥인 80㎝ 내외의 ‘소노라’라는 밀 품종이 보급되면서 만성적인 밀수입국이었던 인도, 파키스탄, 멕시코는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수출까지 하게 됐다. 볼로그 박사가 주도한 녹색혁명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일본의 ‘농림 10호’의 가장 중요한 특성인 키 작은 유전자인데, 그 유전자가 한국에서 기원돼 일본으로 갔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림 10호’는 1945년 미국인 생물학자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진주군 농업고문이었던 사몬 박사에 의해 미국에 도입됐으며, 미국품종 브레보와 교잡돼 뉴게인스라는 품종을 육성하는 기본이 됐다. 게인스는 ‘앉은뱅이밀’을 닮은 키 작은 밀로서, 한 시험포장에서 10㏊당 1,409kg이라는 경이적인 수확량을 기록했는데, 당시 보통밀의 수확량은 300kg 수준이었다. 현재 미국밀의 90% 이상이 ‘농림 10호’ 즉, ‘앉은뱅이밀’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사실을 전문가들도 인정하고 있다.

아주까리·동양난의 경우
아주까리(피마자)는 종자에 34∼58%의 기름이 들어있다. 이 종자에서 짜낸 피마자유는 설사약, 도장밥, 공업용 윤활유, 페인트, 니스를 만드는데 쓰이며 인조가죽과 프린터 잉크 제조나 약용으로도 사용된다.
특히 최근에는 합성 윤활유가 개발돼 사용되기도 하지만 전통적으로 아주까리기름은 모든 정밀기기 및 군사장비에 핵심적으로 사용되는 초고성능 고급윤활유로 널리 활용돼 왔다.
그러나 이런 산업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아주까리는 키가 보통 2~4m 정도로 상업적으로 대규모 재배가 어려운 단점이 있었다. 또한 산업적 이용을 위해서는 대량생산의 가장 핵심적인 기계화가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키가 큰 식물의 특성상 기계화가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자 미국의 연구진들이 1970년대 왜성 유전자를 활용해 아주까리의 키를 1m 내외로 줄여 기계작업이 가능한 새로운 품종을 육성,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됐고, 다양한 고부가가치 산업의 성장에도 기여하게 됐다.
동양난의 경우 대체로 작은 것이 아름답고 가격도 비싸다. 이는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중국·대만도 같은 추세다. 키가 큰 난초보다 작은 난초가 취미용은 물론 선물용으로도 더 인기가 있다. 이런 데 착안해 미적 감상가치가 높은 키작은 동양난의 육종을 통해 수입 대체는 물론 대량 보급, 나아가 수출을 꿈꾸는 민간 육종가와 선도 농민도 있다.
이처럼 식물의 왜성을 활용하면 생산비 절감, 생산성 향상 또는 틈새시장 확보의 새로운 기원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녹색성장시대에는 농업과학기술역량에 따라 작은 것이 더욱 경쟁력있는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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