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계 선도(先導) 여성CEO

 

농사는 살아있는 작품이고, 밥상은 약상이다

단풍이 고운 빛깔을 잃어가는 11월, 굽이굽이 섬진강변 언덕위에 위치한 매실명가, 광양시 다압면 청매실농원을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계절은 늦가을임에도 봄날, 그 찬란했을 매화의 향연이 그대로 전해온다. 그뿐이랴 흩뿌리던 매화 꽃비에 취한 객들의 드높은 감탄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아마 들어서자마자 반갑게 인사하며 반겨주는 2천개가 넘는 장독대에서 뿜어나오는 숨결, 한평생을 매화와 함께 한 주인장 홍쌍리 여사의 손길이 이곳에 고스란히 함께하기 때문이리라.

 

배용준도 반한 매실 밥상
홍쌍리 여사는 햇빛 좋은 곳에 자리하고 앉아  찬거리를 다듬고 있었다. 이미 왼손 검지에는 칼에 베인 듯 반창고가 칭칭 동여매져 있다. 쪽파 손질하다 베였다고 했다. 그 많은 쪽파로 무얼 하시려나?
“우리 직원들이 30명이니 한 끼 밥상을 차리는데도 수고가  꽤 많이 들지요.”
직원들 밥상을 이렇게 일일이 챙긴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직원들 굶기지 않고 먹고 사는 일도 소중한 일이라고 했다. 46년 동안 매화의 어머니로 매화자식들 챙긴 것 못지않게 직원들에게 쓰는 맘도 별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큰 농사꾼, 아름다운 농사꾼으로 불리나 보다.
“얼마 전에 배용준이 이 곳을 다녀갔는데 내가 ‘니는 생긴대로 논다’고 말해 옆에 있던 사람들이 많이 웃었지요. 사람들이 사인을 청하는데 밥해 준 어른들부터 해주고 나서 조금 뒤에 하겠다고 하니 정말 인물 생긴 그대로라니까요.”
한류 주역 배용준은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이란 여행에세이를 얼마 전 펴냈는데 그 여행지 중 한곳이 바로 청매실농원이었다. 
“새콤하고 싱그러운 매실장아찌와 매실을 넣은 매실전과 매실김밥을 싸그리 먹고는 매실아이스크림까지 두 개나 먹더군요. 바쁘다고 차대놓고 있는 매니저에게 기다리라고까지 하면서... ”
배용준뿐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까지 이곳을 찾았고 특히 김대중 대통령은 섬진강 물안개가 올라오는게 한 눈에 보이는 이곳을 참 좋아하셨다고 홍여사는 추억한다. 취화선, 천년학, 다모 등 12편의 영화와 드라마가 이 곳에서 촬영됐다.
“요즘 신종플루 때문에 걱정들이 많은데 매실이 참 좋지요.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역병을 매실로 다스리는 얘기가 나오잖아요.”

고향 떠난 그리움으로 매화에  정성들여
“46년 머슴살이 너무 서럽지요., 손이 호미되고, 갈쿠리 되어 눈비 맞아가며 일만 했지요...”
홍 여사는 자신을 큰머슴이라 칭한다. 비탈진 산 이곳저곳을 오르내리며 나무 돌보랴, 야생화 가꾸랴, 새참해 대랴, 잠시도 쉴 틈이 없이 일하다보니 67살의 큰 머슴은 어느덧 어깨가 구부러지고 힘도 빠져보였으나 자식인 매화에 대한 사랑은 여전해 매화와 매실 얘기엔 자식자랑에 여념 없는 팔불출 부모마냥 한없이 즐거워하고 자랑이 그칠 줄 모른다.
홍쌍리 여사와 매실에 얽힌 사연들은 꽤 알려져 있다. 23세에 경남에서 시아버지 김오천(1988년 작고) 씨를 따라 광양으로 시집 왔다. 홍 여사는 일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그 밤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산등성이마다 매화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왜 그리 매화나무를 심고 싶어했을까? 떠나온 고향에 가고 싶어 언덕에 올라 하염없이 눈물짓던 신부에게 매화는 큰 위로가 되었다.
“허리가 휘도록 고된 산골살림에 정신이 없는데 살포시 핀 매화꽃이 이래 말했지요. ‘엄마 엄마 니 고마 울고 여서 내캉 살자’꼬.” 지금도 매화꽃을 ‘내 딸’이라고 부르며 자식처럼 돌보는 홍여사와 매실나무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고 매실로 ‘건강밥상’을 차린 그는 ‘식품부문 국내 1호 명인’이 되었다.

언제까지 내다 팔게 아니라 오게 만들자
청매실농원에는 매화나무만 있는 게 아니다. 이름모를 꽃들이 군락을 이뤄 사계절 꿈의 동산을 이룬다. 홍여사는 26년 전부터 야생화를 심어 무려 3만평의 야생화 천국을 조성해 놓았다. 처음 750만원어치 야생화를 사서 직원들과 이틀에 걸쳐 심었으나 홍 여사의 성에 차지 않았다. 그후로도 계속 해마다 야생화를 심고 가꾸어 와 지금은 경사심한 언덕 구석구석까지 빼곡하게 향유, 상사화, 구절초, 자운영, 맥문동 등을 심어 계절에 따라 꽃이 피고지는 장관을 연출시켰다.
“미국의 타사튜터는 행복의 정원을 천 평 남짓 가꿔서 유명해졌지만 난 3만평에 정성을 들여 야생화 천국을 만들었어요. 동네 사람들은 돈벌어 땅에 다 바른다고 수군거리지만 농사는 돈이 아니고 작품이고 돈은 그 다음에 따라 오는 거지요.”
낮에 농사 짓고 밤에 글쓰는 홍 여사의 취향은 농원을 문학동산으로도 가꾸어 놓았다. 커다란 돌에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비 33개를 6만평 동산 곳곳에 자리 잡게 해 절로 문학에 취하게 했다.
“농사가 돈이라 생각하면 자꾸 욕심이 생길게 뻔해서...지금도  생산되는 제품 가격을 다 못외워요.”

 

지역경제에 효자노릇
볼거리, 먹을거리, 게다가 우리네 감성까지 붙잡게 만든 이곳은 연인원 120만명에서 150만 명이 찾아 지역경제에 효자노릇도 톡톡히 하고 있다. 2월 말이면 시작되는 매화축제 때는 팔을 휘젓고 다닐 수 없을 정도의 인파가 몰린다. 광양은 물론 하동 구례의 숙박업소와 음식점들은 대박이 난단다. “광양 다압에서 돈 자랑 하지 마라”, “밥 먹기 전 청매실농원을 향해 감사기도 올린다”는 말도 떠도는 정도다.
“800평 농사 짓는 것보다 매화축제 한 달간 잡곡, 푸성귀, 매화 분재 등 지역특산물을 팔아 얻는 소득이 더 많다고 하네요. 다압에 있는 집들을 보면 지붕이 모두 새집이지요?”
관광객을 위해 길도 넓히고 다리도 튼튼하게 놓고, 주차장도 널찍하게 하고 아무튼 다압 일대는 매실로 인해 영 다른 세상이 돼버렸다. 요즘은 외국 관광객도 자주 찾는다. 사실 외국관광객을 불러모으는 것 역시 홍 여사의 오랜 꿈 중의 하나다.
“몽마르뜨 언덕에 가보았는데 우리만 못했어요. 매화와 벚꽃 그리고 산수유의 꽃길로 이어지는  우리 고향은 세계인이 찾는 관광명소로도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 강변에 그림 같은 집 한 채씩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일 듯 말 듯 아름다워서 누구든 뛰어들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섬진강, 온갖 상처 입은 사람들을 다 품어 안을 수 있는 ‘살아 있는 섬진강변’을 만들고자 하는 바람입니다. 이곳 광양의 섬진강이 독일의 라인 강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몸이 안 좋은 사람, 마음이 안 좋은 사람이 찾아왔다가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도시민의 어둡고 괴로운 마음을 전부 버리고 돌아갈 수 있다면 더 없는 낙원이 될 것입니다.”
 꽃은 피고지고 인간은 태어났다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항상 누구의 마음에 그리움으로 남는 꽃같은 그런 인생을 꿈꾸어왔다는 홍 여사의 맘은 지금도 매화 자식 사랑에 아리어온다.


오 흙이시여

흙의 진미를 먹고 살다 보이꺼네
매화꽃은 내 딸이데여
매실은 내 아들이데예
아침이슬은 내 보석이데예
이 여인이 부러우면 흙의 주인이 되어보이소

오~흙이시여! 이 여인손을 꼭잡고 호미든 농민으로
살게 해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홍쌍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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