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진작가의 아이콘 김중만

 

좋은 사진은 ‘이야기’가 있는 사진
세상의 끝에서 삶을 진솔하게 찍고 싶어

 

50을 넘긴 중년의 나이에 레게머리를 하고 몸 한구석 흐릿한 흔적으로 그러나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문신들, 그리고 검은 안개를 헤치고 떠오르는 듯한 해맑은 소년의 미소를 가진 김중만(54)은 한국 사진작가의 아이콘이라 불릴 만큼 너무나 유명하다.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들을 사진으로 담아냈고, 세상의 오지인 아프리카에서 아름다운 자연과 순수한 이들의 해맑은 미소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냈다.
지난 30여년의 세월동안 사진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온 그에게 많은 이들이 물어본다. 사진에 대한 매력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그는 말한다. “사진은 소통의 색다른 가장 솔직한 삶의 이야기”라고.

지난 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09 미래직업박람회’ 현장에 사진작가 김중만씨가 모습을 나타냈다. 상업사진을 중단하고 순수예술사진을 표방한 이후 공식석상에서의 오랜만의 외출이다. 그런 그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사진작가의 꿈을 안고 이곳을 찾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기 위해서다. 사진작가의 길을 들어서게 된 계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들을 설명하며, 그는 “직업은 선택에 따라 결정되고 노력에 의해 변할 수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뚜렷한 직업관을 강연했다.

 

 

사진은 ‘컵라면 끓이기’와도 같아
프랑스 국립응용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재학 중이던 김중만은 어느 날 친구의 사진인화 작업을 돕게 된다. 오랜 시간 작업을 해야 작품이 완성되었던 미술학도 김씨에게 5분 안에 인화되는 사진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사진기를 처음 접했을 때 놀라움 반, 신기함 반 이었죠. 인화하는 과정을 살펴보니 5분이면 사진이 나오더군요. 또한 인화지에 상이 드러나는 모습이 마치 그림처럼 느껴졌습니다. 빠른 속도와 회화성에 매료되어 암실에서 나오는 순간 사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전공과목을 그림에서 사진으로 바꿨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사진이 하나 완성되기까지의 시간이 서양화나 판화와 같은 프로세스보다 더 빠르기 때문에 하게 되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짧은 시간에 작품하나를 완성할 수 있는 매력이 사진작가로의 길로 빠져들게 만든 것. 더불어 자신의 급한 성격 역시 한몫했던 것 같다고 한다.
김씨는 흔히 사진을 ‘라면 끓이기’로 비유한다. “필름 카메라(이후 필카)와 디지털 카메라(이후 디카)는 ‘컵라면과 그냥라면(?)’으로 구분될 수 있어요. 컵라면은 디지털 카메라, 라면은 필름 카메라죠. 컵라면은 바로 먹을 수 있기에 찍는 즉시 확인할 수 있는 디카와 같고, 라면은 5분 정도 시간이 필요하기에 1시간 정도의 인화 과정을 거쳐 사랑스런 결과물이 나오는 필카와 같은 것이죠.” 개인적으로 디카보다 필카를 더 좋아한다는 김씨는 사진을 즉석에서 바로 얻기 보다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결과물에 더 강한 애착을 보인다. 성격이 급하다고 말한 그는 생각보다 ‘초고속’(?) 성질은 아닌 듯싶다.

사진의 본질은 ‘소통의 힘’
김중만, 그가 사진의 매력에 빠져 더 흥미를 가지고 깊이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사진이 지닌 본질의 힘 때문.
“제가 사진에 심취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사진이 지닌 본질, 즉 소통의 힘을 느꼈기 때문이에요. 주변의 풍경과 인물을 찍다 어느 날 여자친구에게 배경이 좋은 곳에 서게 한 후 ‘벗어’라고 말한 뒤 사직을 찍었죠. 처음에는 ‘변태 아냐’했던 여자친구가 사진을 보고 난 뒤 반응이 달라지더군요. 그때 ‘아, 백 마디 말보다 사진 한 장으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음을 느끼게 된 것이죠.”
그래서 김중만 그의 풍경은 언제나 몸으로 표현된 기록과도 같다. 셔터소리와 함께 그가 포획한 하늘과 땅과 바다 속에는 인간의 욕망과 처절한 슬픔과 배신과 눈물이 뒤엉켜있다. 그것은 때로 짙은 먹구름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어두운 그림자로 표현되기도 한다.
“우리는 늘 가장 낮은 곳과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에서 빛나는 선물을, 희망적인 소식을 발견하게 마련입니다. 먹장구름 속에서 작은 탄성처럼 터지는 밝은 달빛과 거센 바람 속에서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죠.”
즉, 이야기를 담아 인생 자체로 사진을 찍는다면 그 어떤 글과 그림보다 아름다운 삶의 풍경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성장의 오르막길에서 겸손의 내리막길 찾아
김씨는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프랑스 사진계의 주목을 받았고, 1976년 프랑스 오늘의 사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79년 ‘금의환향’하는 기분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사회는 김중만의 자유분방한 사고와 행동을 받아들일 준비가 채 되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김중만은 두 차례나 강제 추방자 신세로 전락한다. “2번의 추방 경험으로 밝고 즐거운 사진이 아닌 우울한 사진을 찍게 됐고, 무심히 스쳐지나갔던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는 생애 가장 큰 시련을 맞이하기도 했지만 고통과 절망의 나날들 속에서 그를 살게 했던 것은 사진이었다.
“제게 사진이란 진실추구죠. 아픔과 절망, 기쁨과 희망, 내안의 모든 것이에요. 끝일 수도 있고 시작일 수도 있죠. 정말 좋을 때가 있고 너무 괴로울 때도 있지만 사진이라는 것 자체가 소중하기에 그것이면 모든 것이 해결됐죠.”
시련의 아픔 후 그는 영화 포스터와 숱한 스타들의 사진을 촬영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사진작가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2006년 돌연 상업 활동 중단을 선언한 뒤 세계 오지와 극지를 오가며 예술 사진에만 전념하기 시작한다.
“2000년 아버지를 통해 다시 만난 아프리카 대륙은 제게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게 했죠.”

인생의 가장 큰 유산, ‘희망’주신 아버지
그가 17살 때인 1972년, 아프리카의 한국인 ‘슈바이처’로 불리는 아버지 김정 박사를 따라 아프리카 소국 부르키나파소로 가게 된다. 김씨의 아버지는 아프리카에서 30여 년간 의술을 펼치다 세상을 떠났다. 김 박사의 시신은 화장돼 절반은 아프리카에, 절반은 한국에 안치돼 있다. 김중만에게 아프리카는 아버지의 땅이나 마찬가지다. 김중만은 아버지를 기억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버지는 정말 세상물정을 모르셨어요. 출세욕이나 물욕 없이 자연과 더불어 자유로운 삶을 사셨던 거죠. 제게 물려주신 유산도 절망이 아닌 희망의 아프리카와 200백만원이 전부였죠. 하지만 그런 아버지가 대단히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가 하셨던 것처럼 아프리카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고, 그런 생각에 세상의 끝에 담겨진 생명, 삶, 아름다움을 담은 순수예술작품을 준비하고 나선 것이다.

세상과 삶을 진솔하게 찍고 싶어
올해로 사진을 시작한 지 30년을 넘어선 사진작가 김중만. 처음 사진을 시작했던 그 해와 지금, 변한 것이 있다면 필름 값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에게는 그저 세상의 모든 것이 늘 새롭고 너무나 경이롭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리고 그에게 터닝 포인트는 아직 멀리 있다. 지금은 그냥 단지 삶에서 얻은 것과 삶에서 본 것을 작업에 반영시키는 과정일 뿐, 아직은 ‘이거다’라고 내놓을 만한 작업을 하지 못한 것 같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전 커다란 욕심이 없어요. 치열하게 완벽주의자도, 야망이나 커다란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 구요. 진솔하게 말씀드리자면 그런 생각을 갖고 살진 않습니다. 가끔은 넋 놓고 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니까요. 그저 작품만을 생각하며 삽니다.”
지금까지 50만장이 넘는 수많은 사진을 찍어왔지만 그는 아직도 자신의 프레임 안에 담지 못한 피사체에 대한 아쉬움이 많다.
“그냥 세상을 담고 싶습니다. 세상의 조그만, 또 큰 모습들…. 그렇게 삶의 한 부분들을요.”
앞으로 사진 50만장을 더 찍어 100만장을 체우고 싶다며, ‘사진가는 결코 화려하지 않다’는 말과 ‘절제(節制)’와 ‘고사(固辭)’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김중만 작가. 유난히 맑고 빛나는 그의 눈은 잘 닦인 카메라 렌즈와 닮았다. 그렇게 그의 눈을 통해 세상을 만나는 일은 참으로 아름답고 경이롭다. ‘아름다운 사람 김중만’이 그런 것처럼.

Tip. 사진 잘 찍기 위해서는…
김중만 작가는 길을 지나다가도 담고 싶은 프레임을 발견하면 호흡을 가다듬는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의 눈에 끊임없이 보이고 또 끊임없이 느껴진다. 그리고 끊임없이 연습을 하게 된다. 카메라가 없어도 카메라가 있는 것처럼 보고, 어떻게 담을 것인가 또한 담고자 하는 피사체가 어떤 빛을 띄고 있는가에 대해 한참을 생각한다. 자신의 인생의 반을 훌쩍 넘게 해 온 사진이지만 아직도 더 공부해야 할 것이 많다고 하니 그가 생각하는 사진의 깊이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짐작할 수 있다.

▶ 카메라를 든 순간부터 사진작가, 자신감을 갖고 찍을 것
▶ 선명하지 않고, 흔들린 사진도 작품, 사진에 의미를 부여할 것
▶ 일기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사진을 찍을 것
▶ ‘예술’은 나이와 무관하며,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기에 끊임없이 연습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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