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음식과 추억, 네 번째 이야기

김 은 미 생활지도관
농촌진흥청 발효이용과

 

우리 집엔 애물단지 딸이 하나 있다. 고집쟁이에 툭하면 화도 잘 내고 심지어는 머리 컸다고 대들기도 해서 가끔 내 속을 뒤집어놓는다.
딸아이가 중학생이었을 때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크고 작은 뒷바라지를 다 해주셨던 할머니의 갑작스런 부재는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의 감수성 예민한 딸아이에게 큰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밥보다 과자나 햄버거, 닭튀김 등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대신하기 시작하더니 빈도가 점점 늘었다. 채워지지 않는 불만을 쉽게 구하고 우선은 입에 단 패스트푸드로 해소하는 듯 하였다. 타이르기도 하고 잔소리도 해 보았지만 한번 길들여진 아이의 식습관과 입맛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그즈음 어느 세미나에서 일본인 대학교수가 식생활과 성격형성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발표를 했다.

 


‘어렸을 때의 식생활과 식습관은 그 사람의 평생의 성격까지를 결정한다. 칼슘이 부족한 아이, 식사준비를 돕는 습관이 없는 아이는 자기중심적이고 스스로를 외부와 단절하기 쉽다. 아침을 먹고 오지 않는 어린이들은 집중력이 나쁘고, 학교에 대한 태도도 나쁘게 평가되는 자료가 많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아침밥은 꼭 먹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세미나는 내게 가족의 식생활에 대해 반성의 기회가 되었고, 특히 딸아이의 아침은 꼭 챙겨 먹이려 노력했다. 분주하고 바쁜 아침에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게 전날 저녁 국이나 반찬을 미리 준비했다. 바쁘거나 피곤해서 미처 준비를 못하는 날은 퇴근길에 딸아이가 좋아하는 삼각 김밥이나 꼬마 주먹밥을 샀다. 삼각 김밥과 꼬마 주먹밥이 시판되기 시작할 무렵이었고 바쁜 내겐 정말로 요긴한 끼니거리였다.
지금 딸아이는 대학교 4학년인데 현재의 학교에 적을 두기까지 여러 번의 고비를 넘긴 뒤에야 정착할 수 있었다. 이런 사정으로 서너 살 아래 또래의 동급생들과의 학교생활이 잘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인지 집에 와서는 가끔 심통을 부린다. 공연히 부리는 짜증을 마냥 받아줄 수 없을 땐 부딪히기 마련이라 큰 소리가 오갈 때가 있는데 그 아이의 엉뚱한 논리와 궤변에 늘 당하는 내 자신의 무력에 결국은 후회로 마감할 때가 많다.
‘엄마가 내게 뭘 잘해 줬다고 큰 소리야’라며 큰 눈을 위로 한껏 치켜뜨고 대들면, ‘맞아, 허구한 날 삼각 김밥만 사 먹였지, 저게 그래서 저렇게 모가 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괜히 주눅이 드는 것이다. 
할 거 다 해 주고도 한 게 아무 것도 없는 직장 맘은 이래저래 몸도 마음도 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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