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 프리미어리거 박지성

 

박지성의 하나, 둘, 셋
하나…한국인 최초의 프리미어리거
둘…두 가지 별명 ‘산소탱크와 수도승’
셋…오늘의 박지성을 있게 한 세 남자
    ‘아버지 박성종씨, 허정무 감독, 히딩크 감독’

 

한국축구의 꿈과 희망인 박지성 선수가 박지성 축구센터 건립 기공식장에 말쑥한 양복차림으로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지난 6일 수원 영통구 망포동의 박지성 거리 옆 옛 농업기술원 부지엔 왕년의 축구 스타들과 체육계 관계자 들이 모두 모여 박지성의 꿈이 펼쳐지는 순간을 함께 축하해 주었다. 이회택, 허정무 감독을 비롯 정몽준 FIFA부회장 조중연 축구협회장 얼굴도 보였다. 무엇보다  자랑스런 한국의 프리미어리거 중 설기현 선수를 제외한 박지성, 이청용, 조원희 선수의 모습이 가장 돋보이는 날이었다. 박지성 선수의 또 다른 꿈이 펼쳐지는 날이어서 그런지 유난히 박지성 선수는 시종일관 싱글벙글하며 기분 좋아 보였다.

“문화로서의 축구가 되었으면 해요”
“전문적인 선수를 양성하는 것보다 많은 어린이들이 축구를 통해 정신적, 육체적 부분도 성장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축구센터를 만드는 게 꿈입니다. 축구는 다양한 장점을 가진 스포츠인데 승패에만 집착하는 게 아쉬웠습니다. 축구에서 재미를 찾고, 여가를 즐기고, 교육의 장도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축구의 재미를 체험하는 공간으로 축구 꿈나무를 배출하는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날 기념사에서 박 선수는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축구가 염원이라며 자신의 축구 철학을 피력했다.

 

-수원에서 축구센터를 건립하게 된 배경은?
수원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청소년기를 수원에서 보냈습니다. 저 역시 축구센터를 건립하면서 최우선으로 선택할 장소가 수원이었습니다. 수원시가 많이 도와주었고 경기도에서도 큰 도움을 줘 저로서는 기쁘게 수원에서 축구센터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축구센터에서 바로 전문적인 엘리트 선수를 육성하지는 않을 것 같고 향후에 시간이 지나면 그런 부분을 생각하겠습니다. 그러나 처음 시작할 때는 많은 어린이들이 축구를 통해 정신적, 육체적부분이 성장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축구에 대한 즐거움을 안고 축구를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또 그것을 계기로 전문적 축구선수를 양성하는 센터로 커 나가길 바랍니다.

-결혼계획은 없는지?
아직 결혼할 상대를 못만났습니다. 아직까지 솔로로 지내고 있습니다.

-박선수 아버지께서 발달장애아 11명으로 팀 구성하는 게 먼 미래의 목표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우연하게도 축구를 통해 그런 부분을 치료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함께 일하고 있는 JS리미티드 대표님도 그런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가능성이 있으면 축구의 힘으로 그런 쪽을 보여 줄 수 있을것 같습니다. 너무나 좋은 취지고 기대를 갖고 있으며 치료까지 할 수있다면 너무나 크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축구센터 어린이들을 직접 지도할 계획은?
매년 여름휴가 때는 한국으로 돌아오기에 적어도 일년에 한번은 어린이들과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지성의 하나,둘,셋
하나…‘한국인 최초의 프리미어리거’
박지성의 축구 역정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작은 체구여서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으며, 명지대를 거쳐 일본의 교토퍼플 상가, 월드컵을 통해 네덜란드의 에인트호벤 진출, 챔피언스리그 AC밀란 전을 통해 프리미어리그 맨유 진출하여 오늘까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아시아 축구선수로는 너무도 착실히 한 계단 한 계단 계단을 밟아 올라 지금 이 자리 ‘축구의 전설’로 우뚝 선 것이다. 박지성 선수는 벌써 외국 생활이 10년째다. 2000년 일본 J리그 교토 퍼플상가에 입단한 그는 2003년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을 거쳐 2005년 7월부터 세계 최고 클럽인 맨유에서 5년째 활동 중이다. 그리고 얼마 전 맨유와 재계약에 합의했다. 연봉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지만 종전 280만파운드(57억원)보다 30% 정도 인상된 360만파운드(73억원)가량으로 알려졌다.

둘…두 가지 별명 ‘산소 탱크와 수도승’
박지성을 지칭하는 대표적 별명은 두 가지. 그 중 하나가 바로 산소탱크. 그의 엄청난 활동량에서 비롯된 것이다. ‘산소탱크’는 네덜란드 언론이 선물했다. 매 경기마다 10km 이상 뛰는 박지성의 엄청난 활동량에 주목한 것이다. 에인트호벤 시절 한 팀 동료가 박지성의 지칠 줄 모르는 체력에 감탄하며 “너는 산소탱크를 등에 지고 뛰느냐”고 한 말을 네덜란드 언론이 소개하면서 등장했다.
또 하나의 별명은 바로 ‘수도승’. 박지성은 영국 맨체스터 시내에서 차로 30~40분 떨어진 주택가에서 '수도자'처럼 지낸다. 일주일에 평균 4일은 팀에서 보내고 나머지 3일은 집에 틀어박힌다.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책을 읽고, 가끔 친한 친구들과 전화로 수다를 떠는 것, 게임기로 축구게임을 하는 것으로 여가를 즐긴다고 한다. 자기 목표를 위해 다른 욕망은 모두 희생하는 박지성 선수의 절제와 인내심을 상징하는 별명이 바로 수도승이다.

셋…박지성의 오늘을 만든 세남자 ‘박선수의 아버지, 허정무 감독, 히딩크감독’
박선수 아버지는 박성종씨가 박 선수가 중학교 1학년일 때 직장을 그만두고 정육점을 차렸다는 얘기는 맹부삼천지교에 속하는 얘기다. 운동을 하는 아들에게 좋은 고기를 먹일 수 있는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2월드컵 직전 가게를 그만둘 때까지 10년간 박지성은 정육점집 아들로 불렸다. 박 선수의 아버지는 요즘도 박 선수의 든든한 후원자로 아들의 건강과 생활을 직접 돌보고 있다.
허정무 감독은 무명이던 박 선수를 올림픽 대표팀 발탁한 장본인이다. 허 감독은 1999년 박지성 선수를 처음 만났다. 당시 올림픽 대표팀을 이끌던 허정무 감독은 울산에서 전지훈련을 실시했고 시간을 쪼개 울산 현대와 명지대의 연습 경기를 보러갔었는데 구석에서 공을 차던 박지성을 눈여겨 봤다. 그리고 허정무 감독은 과감히 박 선수를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했다. 그것도 기술위원회를 통과하지 않고 감독의 권한으로 뽑았다. 그만큼 박지성의 잠재력을 알아본 것이다. 허정무 감독 추천에 의한 박지성선수의 올림픽 대표팀 합류로 박 선수는 재능과 기량을 펼칠 기회를 얻은 것이다.
히딩크 감독과 박지성 선수는 사이좋은 부자지간 같은 이미지를 갖고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첫 골을 넣은 박지성 선수가 그라운드를 힘차게 달려가 히딩크 감독 품에 안기던 장면을 온 국민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은 박 선수에게 유럽진출의 장을 마련해준 장본인이다. 월드컵 4강 신화를 달성한 후 네덜란드 에인트호벤 감독을 맡은 히딩크 감독의 부름으로 박지성 선수는 해외진출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 맨체스트유나이티드 퍼거슨 감독이 스카웃을 위해 구경하던 경기,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골을 넣으며 퍼거슨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세계 최고 명문 클럽 맨유로 이적하며 꿈을 이루게 되었다.
수원에는 ‘박지성 도로’가 있다. 내년 5월이면 박지성 도로 옆에 박지성 축구센터가 들어서 많은 축구 유소년을 키우게 된다. 자신의 이름을 딴 축구센터를 고향에서 갖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된 박지성 선수, 이 가을 박지성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전설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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