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파워인터뷰
[서수남]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파워블로거...키다리 가수 서수남
이명애 기자  |  love8798a@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09.09.28  00:00:00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60세 넘어 새로 시작하는 삶 “브라보 마이 라이프”

"소유의 미덕이 결코 행복이 아니란 걸 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깨닫게 되더라구요.”


시련의 무게만큼 찾아온 행복
성큼 가을 한복판인가 했더니 낮엔 더위가 조금 남아있어 빠른 걸음은 아직 땀을 부르는 날씨다. 강남의 한적한 커피숍에서 만난 서수남씨는 큰 키로 성큼 다가서는데 겉모습만으론 나이를 가늠할 수 없게 씩씩하고 건장하다.
“아~ 키요 187센티미터예요. 예전엔 큰 키 였는데...”
요즘 모든 엄마들이 바라는 아들의 이상적인 키라는 187센티미터. 그러나 그가 활동했던 당시엔 삐쭉 솟아나오는 기럭지여서 초창기 데뷔 때는 큰 키 때문에 그룹에서 제외 될 뻔한 경우도 있었단다.
1943년생이니까 올해로 만 66세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차림새와 스타일이다. 젊게 사는 비결을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생각을 바꾸는 거겠죠. 40대 50대 때는 돈 좀 더 벌어보려고 부단히 애썼는데..... 돈도 참 많이 벌었었죠....세상은 공평한 것 같아요. 뭔가 잃은 것이 있으면 그 만큼 얻는 것도 있습니다.”
어쩐지 그에게선 일반인의 소소한 행복을 벗어난 품새가 느껴지는데 그 역시 비슷한 말을 한다.
“예전에 넓은 아파트, 비싼차, 좋은 옷 등에 연연하던 때가 있었죠. 그런데 시련을 겪고 나니 이런 것들에 대한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소유의 미덕이 결코 행복이 아니란 걸 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깨닫게 되더라구요.”

아내의 잘못된 재테크로 전 재산 날려
어렵게 묻지 않아도 그는 선뜻 10년 전, 고통스러웠던 시절 얘기를 들려준다. 이젠 아픔의 상처에 굳어있던 딱지마저 잘 떼어낸 모양이다.
딸 셋을 낳아 키우며 29년을 함께 산 아내가 하루 아침에 행방을 감춰버린 그 사건이다. 아내를 굳게 믿었기에 통장 도장 다 맡기고, 주부역할에 충실하길 바랬는데 아내가 감당못할 큰 빚만 남긴 채 없어져 버린 것이다.
“아마 재테크 좀 해보려다 손해가 나고, 또 그것을 만회하려 욕심을 부리다 보니 일이 크게 벌어졌던 거 같아요.”
지금은 이렇게 얘기하지만 그 당시로는 눈앞이 캄캄했단다. 이대로 목숨을 끊을까 하는 생각도 목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그의 옆에는 26살에 홀로 되어 오로지 아들만을 바라보며 살아오신 어머니가 있었다. 그런 어머니를 생각하며 약해지려던 마음을 붙잡았다. 마음을 추스르고 더욱 열심히 살면서 빚을 갚아나가기 시작했다. 이젠 그에게 빚은 남아있지 않다고 했다.

하청일씨는 뭐하세요?
“서수남 하청일 듀엣으로 20년 활동하면서 아파트 27평 하나 장만 했었지요. 듀엣은 수입도 둘로 쪼개니까 별 소득이 많지는 않았어요”
‘닭장속에는 암탉이~’로 시작되는 동물농장을 비롯, ‘한번만나줘요~울랄라라’ 등 서수남 작사작곡의 노래들은 지금 들어도 익살스럽고 재미있다.
하지만 가수 생활 20년이 지난 어느 날 뒤돌아보니 남는 것이라고는 작은 아파트 한 채. 하청일 씨는 이전부터 해오던 사업이 크게 잘 되어 이미 가수생활이 부업처럼 된 상황이었고 부러운 마음도 들었단다. 발표하는 노래도 이 노래가 저 노래 같고 실력이 바닥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 문을 연 노래교실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고.
“당시 노래방 문화와 노래교실이 시기적절하게 맞아 떨어졌지요. 백화점 문화센터마다 요청이 들어오고 그렇게 10년간 번 돈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린 거지요. 잘나가던 노래교실도 주부들 보기가 부끄러워 그만두었습니다. 하청일씨는 잘 운영되던 스포츠용품점이 IMF때 타격이 좀 있었지요. 그래서 사업을 접고 미국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워낙 재주가 많은 친구라 미국에서도 잘살고 있을 겁니다.”

알아주는 파워 블로거로 활동 중
그는 요즘 “큰 형님, 오라버니”로 불리운다. 그의 꾸밈없고 정겨운 일상들을 담은 블로그를 1년 8개월 전부터 직접 운영하며 그 속에서 형님과 오빠로 지낸다.  http://blog.naver.com/suhsoonam 그의 블로그다. 하루 평균 방문자만 3천~4천명이나 된다. 또 네이버 초기 화면도 몇 번씩 장식할 정도로 파워 블로그로 유명세를 탔다.
“방송에서 활동하면서 점점 제자리가 아닌 곳은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되는 자리는 나가기가 망설여 지더라구요. 하지만 대중과의 소통은 이어나가야겠고 해서 블로그를 직접 운영하게 되었는데 친숙함을 느껴서인지 많은 사람이 찾아주시네요.”
그의 블로그는 많은 재미가 있다. 그의 봉사와 나눔의 현장들을 비롯한 나날의 생할들이 소개되고, 그가 발로 뛰며 인터뷰를 해 올리는 기사도 있다. 특히 맛집 소개는 단연 인기가 많다. 어디서 뭘 먹을까 고민고민하다 뒤져뒤져 그의 블로그를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맛집은 제가 직접 찾아가서 맛보고 검증 된 곳만을 올립니다. 절대 소개료 같은 것은 받지 않습니다. 제 주관적인 맛과 분위기 등으로 평가한 곳만을 올리는데 가끔씩 맛집 기행 오프라인 모임도 열고 있습니다.”
그가 어디서 무얼 먹고 어떻게 사는지 다 드러나는 블러그 운영은 어찌 보면 남들에게 관찰 당하는 기분도 있을 텐데 그는 이런 면에서 주저함이 없다.

봉사와 나눔으로 느끼는 또 다른 기쁨
서수남씨는 예전에 키다리 아저씨로 불렸다면 요즘은  ‘희망전도사’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 사랑의 쌀나누기 운동본부, 은평천사원 등의 몇몇 봉사단체에서 어깨에 기타를 둘러메고 노래로 어려운 이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또 시련을 극복한 얘기를 들려주며 아픈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있다. 고용센터를 찾아 죽을 결심까지 했던 자신의 참담했던 기억을 실직자들에게 들려주며 그래도 이겨내야 한다고 용기를 나누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얼마전 새로 낸 “잘 될거야”라는 노래로 희망과 용기를 전하는 일이 그에겐 큰 보람이다.
“가장 큰 축복은 삶의 가치를 깨닫는 것이겠죠. 10년전 빚만 덩그라니 남았을 때 무너졌더라면 이렇게 기쁘게 베푸는 삶을 몰랐을 거예요. 불행하다 느끼는 것은 감사하는 마음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왕년 제일 잘나가던 노래교실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노래 잘하는 법”은 무엇일까?
“자신의 음악적 감성과 수준에 알맞은 노래를 선곡하는 것”


■가수 서수남씨는...
1943년생으로 한양대학교를 졸업했다. 호기심에 집 근처 기타학원에서 기타를 배우며 음악의 길로 들어섰고 엘비스 프레슬리, 폴 앵커 등 팝송에 빠져 편곡과 통기타에 몰두했다. 1969년 서수남 작사 작곡의 동물농장을 발표하며 “서수남 하청일” 듀엣으로 활동, 팔도유람, 과수원길 등 유쾌하고 정감 넘치며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들로 인기를 모았다. 부업에 성공한 하청일과 헤진 후  잘나가는 노래교실 선생으로 홀로서기에 성공해 명성을 얻었으며 요즘은 젊은이들 못지 않은 ‘파워블로거’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명애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수원시 권선구 수인로 43-23 길전빌딩4층(서둔동 9-36)  |  대표전화 : 031-294-6166~8  |  팩스 : 031-293-6166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유미
농촌여성신문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 보호를 받으며, 무단복제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2013 농촌여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rw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