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뽀빠이가 만난 최고의 농업연구인
    농촌진흥청 발효이용과장 김 태 영 박사

글 싣는 순서
①꿈의 광원 LED, 농업을 바꾼다
②곤충도 음식물쓰레기 처리에 동참
③이제 집에서 ‘전통주’ 간편하게 제조
④농업도 이젠 로봇시대
⑤한국, 세계5대 종자강국 꿈꾼다


<우리 쌀, 우리 농산물로 술을 만들어 팔면 그 부가가치는 그냥 팔 때보다 수 십 배 커진다. 농촌진흥청은 품질 좋은 전통주를 되살려 우리 술을 보전하고 농가소득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진은 뽀빠이 이상용씨(농촌진흥청 홍보대사)에게 전통주 제조기법을 설명하고 있는 김태영 박사.  >

 

근무 중 술에 취해도 되는 공무원이 있다. 애주가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이 사람은 농촌진흥청에서 전통주 복원에 노력하고 있는 김태영 발효이용과장. 
농촌여성신문과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의 공동기획 '뽀빠이가 만난 최고의 농업연구인' 시리즈. 이번 호에는 독특한 풍미와 양질의 전통주를 생산해 우리 술의 세계화에 초석을 다지고 있는 농촌진흥청 발효이용과장 김태영 박사를 만났다.
김 박사는 최근 가정에서도 손쉽게 약주, 탁주, 증류주 등을 만들 수 있도록 현대식 술항아리라고 할 수 있는 '다목적 발효기'를 개발함으로써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사라져가는 전통주를 살려 농가소득 증대와 전통주 세계화를 꿈꾸는 김태영 박사를 뽀빠이가 심층 취재했다.

뽀빠이 이상용= 농촌진흥청에서 술을 연구하는 이유가 뭔가? 술 회사에서 해도 충분히 발전시키고 있지 않은가?
김태영 박사= 80년대까지만 해도 농촌진흥청은 오로지 식량의 증산에만 온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농민의 소득을 더 높이기 위해선 쌀을 활용한 가공식품의 개발이 필요하다. 그러 면에서 술은 매우 좋은 소비방법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술 회사들은 그동안 국민의 요구에 잘 맞는 술을 개발해 왔지만, 우리 전통주를 복구할 여유는 없었다. 농촌진흥청은 사라지고 있는 우리 전통주를 복원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술을 연구하고 있다.
뽀빠이= 술을 권하는 나라는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음주가 좋은 것인가?
김 박사=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술은 백약의 장(長)’이라 했다. 밥상에서의 반주 한 잔은 모든 약보다도 건강에 좋다고 했다. 문제는 과음에 있는 것이지 술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장수하는 노인들을 보면 상당수가 반주를 즐긴다. 뿐만 아니라 술은 인간 사이를 소통시키고 낭만과 예술을 만들기도 한다.
뽀빠이= 김 박사는 술을 좋아하는가?
김 박사= 좋아한다. ‘근무 중에 취해도 되는 공무원’은 우리나라에서 나 한 사람 밖에 없다. 그러나 과음은 절대 삼간다. 주량은 소주 한 병이다. 과음하게 되면 개발하는 술에 대한 관능검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능검사를 위해서는 맛도 보지만 목에 넘길 때 오는 느낌도 알아야 하기 때문에 검사를 하다보면 취기를 느낄 때도 있다. 오후에 관능검사를 하다보면 운전대를 잡지 못하게 되어 몇 시간이고 퇴근을 늦출 때도 있다.
뽀빠이= 그동안 발효와 술 분야 연구성과는?
김 박사= 80년대 초만 해도 우리나라 공무원이 술을 연구할 만큼 환경이 여유롭지 않았다. 발효학을 전공했다는 점을 고려해서 개량 쌀된장을 만든다든지, 군납용 쌀 건빵 제조기술을 개발한다든지, 주로 쌀의 소비를 위한 연구를 했다. 1994년부터 국순당과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2년 노력 끝에 드디어 개량메주를 개발했다. 알약(펠릿) 모양의 이 개량메주는 누룩 만드는 기간을 한 달에서 1주일로 단축시켜주고, 같은 양의 누룩으로 종전의 10배나 효과가 높아졌다. 알코올 수율도 30%나 증가하는 획기적인 누룩이었다.
뽀빠이= 농진청에서는 술 전용 쌀도 만들었다던데 어떤 효과가 있나?
김 박사= 2001년 국립식량과학원에서는 ‘설갱’이라는 쌀을 개발해서 내놓았다. ‘설갱’은 쌀의 조직이 엉성해 고루 발효가 잘 된다. 그래서 술맛이 좋다. 전통주 제조업체 국순당은 ‘설갱’을 대단위로 계약재배해서 백세주를 만들고 있다.
또한 ‘고아미’라는 쌀도 있다. 이 쌀은 소화가 잘 안 되는 식이섬유가 높아 다이어트와 당뇨에 좋은 쌀이다. 이것으로 ‘다이어트 탁주’도 개발했다. 더욱 기발한 것은 검은쌀(흑미)로 술을 빚는 것인데, 흑미에 들어 있는 색소가 노화를 억제해 준다. 그런데 술에는 도대체 그 색소가 나타나지 않았다. 발상을 전환해서 생쌀로 술을 만들어 보았다. 색소는 쌀을 밥으로 찌는 과정에서 파괴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무증자공법’이라는 이 방법으로 적포도주 같이 빨간 약주를 만들었다. 이 기술을 한 양조회사에 이전을 해주었더니 주문생산을 받을 정도라 한다.
또 ‘라이스 와인’이라고 해서 젊은이들이 좋아할 수 있는 쌀 와인을 개발했다. 막걸리가 요즘 젊은이들한테 인기가 그렇게 높을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나? 쌀 와인의 기능성이 인정되면 우리 체질에 맞는 우리의 쌀 와인이 인기를 끌 것이다.
뽀빠이= 농촌진흥청이 전통주를 들고 나오는 이유는 뭔가?
김 박사= 일본이 강점하기 전, 우리나라에서는 무려 380종의 전통주가 있었다. 일제는 쌀 소비를 억제해서 제 나라로 가져가려고 통제하는 한편, 주세를 받아서 전쟁비용으로 쓰려고 엄격히 개인적인 양조를 금했다. 집집마다 색출해서 단 한 병의 밀주라도 발견되면 눈물 날 정도로 벌금을 물렸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주는 거의 명맥이 끊겼다. 어떤 나라든지 그 나라 음식에는 반드시 반주가 따르는 법이다. 이게 식문화이다. 가장 잘 알려진 프랑스의 포도주, 독일의 맥주, 일본의 사케가 그 예인데, 우리는 그 문화를 통째로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면서 엉뚱하게도 술을 마약시하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일제시대의 양조법은 양조회사만이 대량생산할 수 있도록 만든 법인데 아직도 그 법이 통용되고 있다. 농촌에는 술을 빚을 수 있는 모든 재료가 다 있다. 농민들은 이런 재료를 이용해서 전통주를 빚으면 쌀 소비도 늘리고 소득도 높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최근 주세법이 대폭 개정되고 있어 다행이다.
뽀빠이= 우리의 불고기에 사케나 포도주가 어우러진다고 보는가?
김 박사= 아니다. 그건 마치 양복입고 탕건을 쓰는 거나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메독처럼 무거운 레드와인에는 양고기가 제격이고, 만주의 붉은 옥수수 밭에서 만들어진 진한 향의 고량주에는 북경 오리고기가 제격이다. 갖은 양념으로 구어 낸 깊은 맛의 불고기에는 소주가 제격이다. 우리의 갖가지 전통음식과 잘 어울려 마시던 술에는 알코올 도수가 45%나 되는 안동소주가 있는가 하면, 그보다 약한 막걸리, 거의 알코올이 없는 모주도 있다. 색택도 다채로와 노란빛의 한산 소곡주, 붉은빛의 진도 홍주 등 우리 음식과 잘 어울리는 것이 전통주다.
뽀빠이= 김박사가 간편한 술 제조기를 개발했다는데 어떤 것인가?
김 박사= 술 빚는 것은 아낙의 일인데 여간 손이 많이 가지 않아서 기피한다. 술을 앉혀 놓고는 자주 살펴서 항아리를 옮기거나 온도를 맞혀주어야 한다. 또 익었나를 수시로 열어보아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술이 시거나 맛이 변한다. 그런 번거로움 때문에 주부들은 싫어한다. 언제나 일정한 맛을 지닌 술을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다목적 발효기’다. 술밥과 누룩, 그리고 원하는 재료, 말하자면 구기자나 당귀 등 어떤 것이든지 마시고 싶은 재료를 넣고 3배 정도의 물을 넣어주면 술이 자동으로 만들어진다. 소주로 즐기고 싶으면 달려 있는 증류기를 돌리면 소주가 만들어진다.
뽀빠이= 이 발효기를 농촌에 특별히 보급하려는 뜻은 무언가?
김 박사= 이제 농촌은 찾아오는 고객을 맞이하는 체험현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들을 위해 농가 제차적인 홈 메이드 전통주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마치 프랑스나 독일이 농가 자체적인 와인과 맥주를 빚어 홈스테이하는 고객들에게 서비스 하는 것과 같다. 또한 여가를 이용해 농가는 여러가지 전통주를 이 발효기로 만들어 놓고 오는 손님은 물론 택배를 통해서 판매도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발효기의 장점은 같은 원료를 넣으면 공장에서 나온 제품처럼 언제나 일정한 맛의 전통주가 나온다는 점이다.
뽀빠이= 실험실이 아닌 농촌현장에서 발효기로 술을 빚어 보았나? 가격도 비싼 게 아닌가?
김 박사= 물론이다. 전국을 대상으로 충남 태안의 볏가리마을 등 5개 마을에서 현장시연과 함께 사용해 본 결과 농민들의 호응이 매우 높았다. 전통주가 지금까지는 농민주 개념이었는데 지역 특산주로 탈피할 수 있는 계기를 다목적 발효기가 열어 줄 것이라고 현지에서는 기대하고 있다. 지금은 양산이 안 돼 비싸지만 앞으로 저렴해 질 것이다.
뽀빠이= 아까 발효기에서 바로 나온 소주를 마셔보니 느낌이 좋았다. 마을마다 전통주가 살아날 수 있도록 김 박사의 노력을 기대한다.
김 박사= 고맙다.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정리=이완주 본지 칼럼니스트/사진=송재선


TIP. 전통주 쉽게 만드는 다목적 발효기란?


가정용 대형 전기밥솥을 개조하여 만든 현대식 술항아리.
익힌 쌀과 누룩, 효모, 그리고 기타 첨가하고자 하는 각종 한약재나 기호재료, 솔잎, 인삼, 구기자 등을 함께 넣고 잘 섞어주고 가온을 해주면 자동으로 3~7일 후에는 술이 된다. 여기에 부착되어 있는 증류기를 돌리면 각종 소주가 만들어진다.
솔잎 소주, 인삼 소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와 함께 약주, 탁주, 증류주, 향기 나는 약주용 등 4가지의 양조재료세트를 만들어 기호에 따라 구입해서 발효기에 앉히면 술이 나오도록 했다. 술뿐만 아니라 식혜는 물론 각종 발효식품은 다 만들 수 있는 만능 쿠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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