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음식에 얽힌 추억 이야기 두 번째

 

김 은 미 생활지도관
농촌진흥청 발효이용과

가끔 쑥 향이 진하게 풍기는 쑥개떡을 만나면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생각난다.
결혼 후 내가 유난히 떡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시게 된 시어머니는 잔치 집에나 친척의 행사에 초청받아 다녀오실 때는 꼭 떡을 싸 가지고 오셨다. 빈대떡과 색색의 다식, 사탕, 설기 등이 한데 뒤섞인 봉송을 풀어 놓으시며 항상 이야기보따리도 같이 풀어 놓으셨는데 다녀오신 집의 잔치 분위기부터 시작해 그날 차린 음식에 그 집 가족의 안부, 농사일에 이르기까지 안 가본 사람도 머리 속에 그림이 그려질 정도로 생생하게 말씀을 전하셨다.

 

 


잔치상에 올라간 갖가지 음식 명을 하나도 빠짐없이 나열하시는가 하면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의 이름과 면면, 사는 곳까지 들으신 모두를 다 전하신다. 그 중에서도 다녀온 댁 며느리의 시어른 공경하는 태도며 말솜씨는 한번도 빠지지 않는 메뉴다. 그 집 식구들 얘기가 끝나면 나가 있는 자손들 얘기가 시작된다. 작은 아들이 서울에서 장사를 하는데 돈을 잘 벌어 부모님 해외여행까지 시켜주었으며 자식 잘 둬서 호강한다는 얘기까지 갈 때쯤이면 슬슬 일어날 준비를 하는 게 상책이다.
만약 이 상황에서 일어날 기회를 못 잡으면 그날은 구구절절 끝날 기미 보이지 않는 어머니 얘기에 발목을 잡히는 날이 되고 만다.
봄이면 항상 쑥개떡이나 쑥버무리를 하시는데 아파트단지의 잔디밭이나 등나무 쉼터 옆의 좁은 공간에서도 봄을 알고 올라오는 쑥은 모두 어머니 차지였다. 그 알량한 쑥을 알뜰하게 싹쓸이하셔서 빚은 어머니의 쑥개떡은 모양은 투박했지만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별미여서 그 맛을 본 사무실 동료들은 지금도 어머니의 쑥개떡 얘기를 하곤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어언 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두툼하면서도 쫄깃했던 어머니의 쑥개떡과 알맞게 보슬보슬하고 간이 딱 맞아 먹기 좋았던 쑥버무리가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그리워진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진정으로 후회되는 일은 음식을 비롯해 어머니 시대의 사람 사는 이야기들을 귀담아 듣지 않았던 일, 그래서 지금에 와서 누구에게도 배울 수 없는 삶의 지혜들을 기록으로 남겨 놓지 못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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