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호 박사의 날씨이야기-23

처서는 더위에게 ‘이제 그만 물러가라’고 일러주는 절기이다. 처서절기는 8월23일경이다. 예전에 남부평야지에서 벼 이삭이 한창 팰 때가 바로 처서 무렵이었다. 그 때문에 ‘처서에 비가 오면 십리에 천석을 감한다’는 속담이 있다. 벼는 이삭이 패면서 바로 수분이 이루어진다.
이 때 어쩌다가 강한 비를 맞아 쭉정이가 많이 생기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생긴 속담이다. 벼꽃은 대체로 아침 10시부터 오후 2시 사이에 핀다. 아침부터 비가 오면 벼는 왕겨를 열지 않은 채 수분과 수정이 이루어지는, 이른바 폐화수정을 하지만 한창 꽃이 피는 시간에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면 수정에 장해를 받아 쭉정이가 생길 수 있다. 어쨌거나 벼가 이삭이 한창 팰 때 비가 오면 수분과 수정에 이로울 것이 없다. 따라서 비 때문에 쭉정이가 많이 생기는 품종이 따로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더위가 물러가려면 이른바 가을장마를 겪어야 한다. 올해는 장마가 끝나고 나서 북태평양 고기압이 분명하게 우리나라에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에 여느 해와 같은 가을장마를 기대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나마 늦게 불볕더위가 찾아오고, 이어서 무더위가 찾아 왔으니 더위가 물러가는 절차는 밟게 될 것이다. 초가을 날씨로 바뀌는 북서계절풍이 불어오자면 그에 앞서 강우전선이 한 차례 남쪽으로 밀고 내려가게 될 것이다. 그 때가 이삭 팰 때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벼이삭이 팰 때, 비가 내리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건조한 날씨다. 더구나 늦더위에 잦은 높새바람은 고온에 건조한 날씨를 불러온다. 이 또한 드물기는 하지만 처서절기 무렵에 올 수 있는 날씨다. 특히 강원 영서, 경기도, 충북 일부에서는 높새바람에 유의해야 한다. 벼이삭이 팰 때 기온이 34℃ 이상이고, 상대습도가 25% 이하로 건조하면 꽃가루가 제 구실을 할 수 없어 쭉정이가 많아진다.
이 때 벼 알이 굵은 품종은 잔 품종보다 더 큰 피해를 입게 된다. 벼뿐만 아니라 어떤 농작물이건 꽃이 필 때 고온과 건조는 결실을 방해한다. 핀 꽃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에는, 한 번쯤 ‘그 꽃이 필 때 동풍이 불지 않았는가?’ 하고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그런 때 시설에서 환경을 조절할 수 있다면, 오전 중에 습도를 유지해주면 불임피해를 덜 수 있다.     
올해는 여느 해와 다르게 벼가 자라는 동안 기온이 높지 않아서 이삭이 늦게 패고, 일조시간도 넉넉하지 않았다. 이러한 날씨가 지구온난화와 엘니뇨에서 비롯됐다고 하니, 풍년 날씨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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