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호 박사의 날씨이야기-23

'덥지 않은 여름’은 생각만 해도 악몽이다. 왜냐하면 1980년과 1993년 여름 날씨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이 두 해는 이른바 ‘동해형 냉해’가 닥친 흉년이었다. 장마가 끝나야 할 7월 하순 어느 날 새벽, 동쪽 하늘이 투명하고, 먼 산이 산뜻하게 드러나면서, 반소매차림임을 알아차릴 만큼 선선한 기운을 받았다. 그러한 여름 날씨는, 국토 한가운데를 세로로 나누어 놓고 보면, 동쪽이 더욱 심했다. 오호츠크해 고기압의 세력이 때 아니게 크게 확장돼 오래 지속됐기 때문이다.
올해도 동해안은 7월 중하순부터 평년보다 낮은 기온으로 경과됐다. 때 아니게 6월 상순부터 지금까지 티베트 동쪽과 우리나라 동쪽 상공에 기압마루가 특이하게 발달해 그 사이에 놓인 우리나라 부근으로 찬 기류가 남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기상청은 밝혔다. 그런데 우리나라 동쪽 기압마루는 바로 냉습한 성질을 지닌 오호츠크해 고기압이다. 그 때문에 영동은 저온이지만, 영서는 때로 높새바람의 영향을 받는다.

올 여름의 우리나라 바닷물 온도는 평년보다 동해는 2℃ 이상, 서해는 1~1.5℃ 낮고, 남해도 예외는 아니다. 그 때문에 해안은 내륙보다 온도가 한층 낮다. 내륙에도 열대야가 드물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 여느 여름하고는 사뭇 다르다.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이 장마전선을 북쪽으로 밀어 올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오호츠크해의 바닷물 온도가 1980년이나 1993년과는 다르게 평년보다 3~4℃ 높아서 ‘덥지 않은 여름’은 쉽사리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올해는 적도 동태평양의 엘니뇨가 진행 중이긴 하지만 그 공간의 폭이 좁아 북반구 기후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평년에는 적도 서태평양의 바닷물 온도는 적도 동태평양보다 높지만, 엘니뇨 때는 그 반대다. 그렇다면 엘니뇨가 있는 해 여름에는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이 약했는가 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다.

덥지 않은 여름과 춥지 않은 겨울은 계절 자체가 ‘철부지’다. 그런데 이 두 철부지 날씨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일조시간이 평년보다 적다는 점이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볕이 나는 시간이 적으면, 대신 흐리거나 비나 눈이 오는 날이 많다. 다만 일조시간이 적으면 기온이 여름에는 평년보다 낮지만, 겨울에는 높다는 점이 다르다. 일조시간이 줄어들면 여름농사 겨울농사를 가릴 것 없이 풍년날씨는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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