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건국혼 서린 이화동 사저를 찾아

<종로구 이화동 1번지 이화장(梨花莊).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저이자 아들 이인수 박사 부부가 기거하는 곳이다.>

서울 종로구 이화동 1번지, 젊음으로 가득한 동숭동 뒤편으로 꼬불꼬불 올라가면 그곳에 이화장(梨花莊)이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저였고, 지금은 이 대통령의 기념관으로 그의 아들인 이인수 박사, 조혜자씨 부부가 이곳을 지키고 있다.
낙산을 뒤로 졸졸 물이 흐르는 소가 있고 간간히 매미가 울어 자연의 숨소리가 느껴지는 이화장에 들어서면 역사책에서 보았던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이 당당한 모습으로 서있다. 돌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우리나라 초대 내각을 조각했다는 장소인 조각당이 있는데, 사람 몇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의 규모라 우리나라 건국의 어려움을 가늠케 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초대 내각을 조각했다는 조각당.>


1947년부터 이화장에 기거했던 이승만 대통령 내외는 정부수립 후 경무대에 입주했다가 1960년 4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한달 가량 머물렀다가 미국으로 떠나게 되고 그 후 이승만대통령이 고인이 되어 유해가 잠시 머물렀다가 현충원에 안장되는 역사를 지닌 곳이다.
원래 이 대통령이 기거한 장소였던 안채는 ㄷ자형의 아담한 구조인데 그곳에 이 대통령을 기억하게 하는 유물과 사진이 보관돼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대통령이 애용하던 타이프라이터와 책상, 펼쳐져있는 책들은 마치 대통령이 살아있는 듯 숨결을 느끼게 한다. 


■  이화장의 무병장수 건강음식은…

1식3찬 고집한 소박한 밥상

<이승만 대통령의 며느리 조혜자 씨.>

“대통령 할아버지는 90세, 할머니는 92세까지 무병장수하셨는데 아마 이화장의 밥상에 그 비결이 있는 것 같습니다.”
며느리 조혜자 씨는 이 대통령 내외를 대통령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불렀다. 시집을 늦게 와 이 대통령을 직접 모신 적은 없지만 시어머니인 프란체스카 여사를 22년간 가까이 모시며 전해들은 이야기가 한보따리 가득하다.
“할머니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보다 더 한국적으로 사시던 분”이라며 평생 돌아가실 때까지 한복만을 고집했고, 대학의 명예박사학위도 ‘독립운동가의 아내’가 최고의 자랑이라며 사양했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 내외가 평소 즐겨먹던 호밀수제비와 장떡. 아들 내외가 그 밥상을 이어가고 있다.>


“소는 농사짓는 동물이라며 쇠고기를 금하셨지요. 밥상엔 세 가지 넘는 반찬은 못 올리게 하셨구요. 주로 콩과 두부로 된 음식을 즐기셨는데 이화장 두부찌개는 새우젓으로 맛을 내 담백한 게 특징입니다.”
여름엔 도정하지 않은 호밀로 만든 수제비가 대통령이 즐겨 찾던 음식으로 지금처럼 건강을 생각한 게 아니라 껍질까지 불려서 많이 먹으려 한 것인데 알고 보니 건강을 지켜준 비결이었다며 며느리 조혜자씨는 “부모님 두 분은 건강복을 타고 나신 분”이라 말했다.
겨울엔 이화장에서 북어 머리를 삶은 육수에 현미떡국을 끓였고 귀한 손님에게는 닭찜을 주로 냈다. 죽순, 밤, 은행, 표고버섯, 대추를 넣어 호평을 받았고, 콩나물잡채 역시 이화장 음식 주메뉴였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생전에 콩나물을 시루에 손수 길렀으며 깍두기와 김치를 아주 잘 담갔다고 며느리 조혜자씨는 추억한다.


■  이승만 대통령이 첫날밤 아내에게 한 말은…

“여자는 말수 적고, 남편 자랑 말아야”

<이승만 대통령의 아들 이인수 박사. >

 

“첫날밤 아버님께서 우리나라 여자는 꼭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고 어머니께 당부하셨다네요. 그 첫째가, 여자는 말수가 적어야 하는데 어디 가서 남편 자랑을 절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요, 둘째는 남자를 부엌 출입하게 해선 안 된다고 하셨다지요. 어머니는 평생 첫날밤 당부를 지키는 미덕을 보이셨습니다.”
프란체스카 여사 마저 이화장을 떠난 지 어언 17년. 그래도 광복절 무렵이면 많은 손님들이 이화장을 찾아와 이승만 전 대통령 내외를 기억하지만 아들인 이인수 박사의 마음은 편치만은 않다.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신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기념관조차 없다는 게 마음에 걸립니다. 유물 수장고도 없이 유품들이 방치되는 것도 마음 아픈 일이지요. 하루 빨리 아버지의 업적을 바로 세우기 위해 요즘 기념사업회 일에 힘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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