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인 칼럼

채 희 걸
본지 발행인

 

건국 61주년을 앞둔 지난 12일 이화장(梨花莊.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저이자 대한민국 초대 내각이 조직된 곳)을 찾아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의 며느리 조혜자(67) 여사를 만났다.
건국 대통령의 영부인이었던 프란체스카 도너 리(1992년 작고) 여사를 시어머니로 22년간 모신 조 여사는 시어머니의 요청에 따라 가계부를 썼다고 한다. 기록한 가계부는 보름마다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검사를 받았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가계부를 꼼꼼히 검열한 뒤에 지출이 많은 부문에서는 반드시 빨간 줄을 그어 아껴 써야 한다는 말을 했다.
당시 조 여사의 남편인 이인수(78·이승만 대통령의 양자. 전 명지대 교수) 박사는 미국 유학 중이었다. 조 여사는 가정살림 돌보랴, 외국인 등 이화장을 찾는 손님 맞으랴, 외부 초청행사 참석하랴 가계부를 꼬박꼬박 쓰지 못했다고 한다. 이를 눈치 챈 프란체스카 여사는 다른 일보다 가계부를 쓰는 일에 정성을 다하라고 독려했다고 한다.

가계부 꼼꼼히 챙긴 프란체스카
이 가계부에는 연탄집게, 냄비꼭지 등 생활필수품 구입비부터 조선호텔 도어맨에게 준 팁 등 당시 생활모습이 세세히 기록돼 애착을 갖고 있다고 조 여사는 말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서거하고 난 뒤 국가로부터 대통령의 미망인으로서 70%의 연금을 받았다. 이인수 박사가 외국에서 유학 중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수입이 없었던 조 여사는 시어머니가 내준 연금으로 이화장의 생활비로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인수 박사가 8년간의 미국 유학을 마치고 명지대학 교수가 되어 월급을 타는 것을 계기로 조 여사는 남편을 통해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가계부를 그만 쓰게 해달라고 간청드렸단다. 조 여사의 간청을 전해 들은 프란체스카 여사는 “이화장 생활비 중 전기세, 수도세, 휘발유값은 반드시 남편의 봉급으로 써라. 그리고 그 사용내역을 가계부에 기록하고 계속 검열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 하에 가계부 기록의 고삐를 다소 늦춰줬다고 한다. 이 세 가지 지출내용을 기록하라고 한 것은 당시 어려운 나라를 걱정하며 아껴 쓸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한 프란체스카 여사의 당부였던 것이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조 여사에게 “그간 가계부를 쓰라고 종용한 것은 우리 식구가 잠잘 때 잠도 못자며 고생스럽게 일해서 돈 버는 국민으로부터 거둔 세금을 받아쓰는데 아껴 낭비하지 말라는 뜻으로 가계부를 쓰라고 한 것이다.”고 거듭 말씀했다고 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평생 검소한 삶을 사셨다고 한다. 그 징표로 이승만 전 대통령 부부가 남긴 유물 중에는 프란체스카 여사가 두 손자들에게 깎아주던 몽당연필, 그리고 하와이 망명시절 종이포장상자로 만든 옷장이 보인다. 프란체스카 여사가 손수 기워 입던 내의와 헝겊을 덧씌워 기운 담요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이 미국 대학 재학시절 돈을 쓴 기록도 볼 수 있었다. 이런 유물을 보며 숙연한 생각이 들었다.

굶는 국민 없기를 매일 기도해
조 여사는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먼저 시어머니 프란체스카 여사의 방을 찾아 인사를 드렸다고 한다. 그때 프란체스카 여사는 극동방송을 들은 다음 고부가 함께 기도를 올렸다.
기도의 주요내용은 당시 이화장이 살림이 곤궁해 4가구에게 세를 내주고 함께 살았는데, 이들이 하루빨리 집을 장만해서 나가게 해달라는 기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국민들이 굶지 말고 음식을 모두 다 함께 먹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취직 못한 실업자들을 위해서는 일자리를 갖게 해달라고 간구했다고 한다.
끝으로 조혜자 여사는 “시어머니께서는 늘 국민 먼저, 국민 걱정을 앞세우며 생활을 했다”고 회고했다.
조 여사는 이화장 살림이 아직도 어렵다며 정부는 대한민국의 종가, 종부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가져줄 것을 내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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