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60년대 술꾼들의 모습과 술집풍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술집 외상장부가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외상장부는 1910년부터 1978년 10월까지 서울 사직동에서 영업을 했던 명월옥(明月屋) 일명 ‘대머리집’의 외상장부로 앞으로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된다고 한다.
이 외상장부 관련 신문기사를 보고 1960년대 중반 첫 직장에 취직해 월급 의 대부분을 하숙비로 내고 궁색하게 살았던 시기가 불현듯 생각난다. 용돈이 모자라 출장비를 아껴 보태 썼건만 그마저도 모자라 외상으로 술 먹기 일쑤였다.

당시는 월급이 요즈음 같이 은행계좌에 입금되는 게 아니었기에 월급날이면 외상술값 받으려고 술집 주모(酒母)와 여종업원들이 예쁘게 단장하고 사무실을 찾아왔다. 대면(對面)을 피하려고 정문 수위의 연락을 받고 뒷문으로 슬쩍 피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또 퇴근길에 단골주점 주모를 만날까 먼 길을 돌았던 기억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
이처럼 몇 차례 술값 외상을 미루다가 추석이나 음력설 등 명절이 닥치면 주모들은 종업원 고향에 보낼 차비를 줘야 한다고 꺾기, 즉 할인해 줘 외상값을 갚았던 온정과 후대(厚待)도 받고는 했다.

지금은 이런 끈끈한 정을 담보로 하는 외상거래가 거의 실종되고 카드거래가 대세다. 금융당국은 카드값을 제때에 갚지 못하면 가차 없이 강제상환 조치하고 신용등급에 따라 금융혜택을 차별대우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신용불량자로 몰려 일체의 금융혜택에서 소외된다. 이런 냉혹 건조한 세태에서 돈 씀씀이를 잘못하면 가계생활이 파탄하고 만다.
옛날에는 전당포에 시계, 만년필, 재봉틀 등을 맡기고 급전을 얻어 숨통을 트기도 했다. 안면(顔面)을 담보로 외상거래에 의지했던 훈훈했던 옛날이 불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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