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자 칼럼

홍 종 운
토양학 박사
농촌진흥청 국외농업기술팀 자문위원
본지 객원대기자

 

어려서 시골에서 살던 때는 밤하늘에는 늘 별이 있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꼭 짚을 수는 없지만 이제는 별 없는 밤하늘이 전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게 됐다. 이치로 따지면 하늘에는 별이 늘 있는 법이다. 그런데 왜 낮에는 별을 볼 수 없는 것일까? 낮 하늘에는 별이 없어서일까? 아니다. 낮 하늘에도 별은 무수히 많지만 햇빛이 매우 밝아 별이 무색해진 것뿐이다. 어떻게 그걸 짐작할 수 있는가? 달이 휘영청 밝은 밤에는 별이 훨씬 드문 것으로 미루어 그걸 짐작할 수 있다. 요즘 도시의 하늘에서 별을 볼 수 없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하늘에 먼지가 많아서이고, 다른 하나는 도시의 밤은 별이 잘 보일만큼 어둡지 않아서이다. 우리들의 요즘 도시에는 밤하늘이 없게 됐다. 문명이 우리의 밤하늘에서 별을 무색하게 한 것이다. 이제 내게는 밤하늘의 별은 상상 속에만 있다. 어려서 시골에 살았던 덕에 상상 속에나마 찬란한 별들이 가득한 하늘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다행인가?

밤하늘에 별은 사시사철 있지만 여름밤의 별이 으뜸이다. 여름밤에는 저녁을 마당에서 먹는다. 낮 동안의 불볕더위가 지나간 마당에 물을 뿌리면 서늘한 바람이 인다. 마당 저만치에 모깃불을 피운다. 마른 보릿짚에 불을 붙인 다음 푸른 풀로 덮는다. 하얀 연기가 마당에 쫙 깔리면서 퍼진다. 모기가 맥을 못 추게 된다. 그 연기에는 여러 가지 풀들이 타면서 내는 향이 가득하다. 늘 먹는 것이지만 보리밥과 열무김치, 고추장, 된장찌개는 언제나 꿀맛이다. 밥상을 물리면 찬물에 담가두었던 복숭아, 참외, 수박 같은 걸 먹는다. 이야기꽃이 이어진다. 하늘로 눈이 간다. 은하수, 별들의 강이 하늘 한복판을 흐른다. 수없이 많은 별들이 하늘에 가득하다. 그때 내가 알던 유일한 별자리 북두칠성(北斗七星)이 변함없이 거기에 있다. 밤하늘은 제자리를 지키는 별들만 있는 게 아니다. 때때로 별들의 전쟁이 벌어진다. 여기저기에서 별똥별들이 날아다닌다. 그게 한밤중의 하늘이다. 밤이 깊어지면 별은 더 광체를 낸다. 별의 윤곽(輪廓)이 더 뚜렷해지고, 더 밝아진다. 밤의 어두움이 더 짙어졌음을 뜻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밤하늘이라고 해서 나이를 먹지 않는 게 아니다. 밤이 자정(子正)을 지나 새벽이 되면 별도 빛을 잃게 된다. 어떤 날, 외할머님으로부터 늘 듣던 소금장수 이야기가 그 날은 유난히 길어져 밤이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이어졌다. 동쪽 하늘이 흐릿하게이지만 붉은 색을 띠니 별은 허옇게 빛을 잃어가고 있었고 별똥별의 왕래도 그쳤다. 하늘이 더없이 고요해졌다. 빛이 바랜 별들은 하나 둘 사라지고. 그런 새벽별도 별은 별이었다.  그 희미해지든 별도 내 기억 속에는 생생하게 남아 있다.
별과 관련해서 내 마음에 깊이 새겨진 다른 장면이 하나 더 있다. 대학교 때 참으로 모처럼(사실은 오직 한번) 친구들과 함께 관악산에서 야영을 한 적이 있다. 여름 끝자락의 어떤 날이었다. 바람은 서늘하고 공기는 맑았다. 간소하게 저녁밥을 때운 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너무 이른 시간에 잠이 들었던 탓인지 한밤중에 잠에서 깨었다. 곁에서 자고 있는 친구들에게 방해가 될 것 같아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하늘을 보았다. 손에 닿을 것처럼 가까워진 별들이 온 하늘에 가득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찬란했다. 다이아몬드의 광채가 대단하다고들 하지만 그날 밤 그때 내가 봤던 그 별들의 곱기는 다이아몬드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더구나 그 고은 별들이 하늘에 기득했으니…. 그때 내가 누린 호사(豪奢)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들 가난하다고 스스로 탓하는가? 무엇을 더 갖기를 원하는가? 우리에게  누구의 것도 아닌, 그러나 갖기로 마음만 먹으면 각자의 것이 되는 하늘, 밤이 되면 세상 어떤 것보다 찬란한 별들이 가득한 하늘이 우리에게 있는데…. 분주한 도시를 벗어나 맑은 하늘이 있는 곳에 찾아가기만 하면 아직도 내 것이 될 수 있는 찬란한 별이 있는 밤하늘이 있는데….
 이 여름에는 어딘가 그런 하늘이 있는 데에 한번 가봐야겠다. 그동안 도시에 사느라고 마음이 더 없이 가난해졌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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