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요칼럼

김 재 황
시인/본지 칼럼니스트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는 여성이다. 아무리 꽃이 아름답다고 한들, 어찌 여성만큼이야 하겠는가? 여성들이야말로 한 사람 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논어’에, ‘현현역색’(賢賢易色)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공자의 한 제자인 ‘자하’(子夏)라는 사람이 한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어진 이를 어진 이로서 대하기를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하듯 하라.’라는 뜻이다. 다시 이를 바꾸면, 세상 사람들은 ‘아름다운 여인을 어진 이보다 더 좋아한다.’라는 말이 된다. 참으로 솔직한 말이 아닐 수 없다.

푸른 자연속 여성의 아름다움
 여성은 아름답다. 그리고 농촌에서 만나는 여성은 더욱 아름답다. 혹시 농촌의 어느 여성이 이 글을 읽고,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말하라.’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헛소리가 절대로 아니다. 무엇보다도 여성의 아름다움은 건강에서 비롯된다. 푸른 자연 속에서 땀 흘리고 일하는 농촌 여성의 건강을, 온갖 공해에 시달리며 사는 도시 여성이 따르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게다가 농촌 여성들은 아름다운 모성으로 여러 농작물들을 자식처럼 가꾼다. 그 내면적 아름다움을, 도시 여성들이 따르기는 그리 쉽지가 않다. 사실이지, 여성의 아름다움은 외적인 겉모습보다 내적인 그 마음에 존재한다.
 지난해에 내가 펴낸 ‘숫시인 싯다르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싯다르타가 살았던 당시, 인도 여러 나라 중 코살라(Kosala) 나라의 말리카(Mallika) 왕비는 싯다르타를 섬겼다. 그녀는 싯다르타를 처음으로 만난 자리에서 ‘여자들은 왜 잘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못난 사람이 있는지’를 불쑥 물었다. 그 말을 듣고, 싯다르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사람은 마음이 서로 다르듯 얼굴도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모두가 귀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여자는 잘났고 어떤 여자는 못났다고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여자들은 각각 다르게 아름다울 뿐입니다. 그러나 정말 못난 여자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성을 잘 내거나 욕심이 많거나 남을 시기하는 여자는 천해집니다. 그런 여자가 못난 여자입니다.”
 그렇다. 농촌에서 만나는 여성들은, 성을 잘 내지도 않고 욕심도 적으며 남을 시기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모두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물론, 농촌에 사는 여성들은 도시에 사는 여성보다 많은 일을 한다. 농사를 짓는 일에는, 거친 남성보다 섬세한 여성의 힘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많다.
그 한 예로, 내가 서귀포에서 귤밭을 경영할 때, 귤의 수확은 반드시 여성들의 손을 빌리곤 했다.
그러하니 여성이라고 해서 농촌에서 일 자체를 멀리하기는 어렵다.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일을 하되, 즐겁게 해야 한다.

땀 흘리며 열심히 살아야
공자는,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고 말하였다. 이는,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다면, 그 일을 즐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편하게만 사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다. 뉴질랜드의 국조(國鳥)는, ‘키위’(Kiwi)라는 새이다. 이 새는 엄청나게 큰 자연의 혜택 속에서 맹수나 뱀 등의 천적(天敵)에 대한 걱정 없이 아주 편하게 살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날개가 퇴화됨으로써 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우리는 보다 힘차게 땀 흘리며 열심히 살아야 한다. 어찌 그뿐이겠는가. 몸이 편하게 되면 온갖 잡념이 몰려들게 되고, 따라서 여러 가지 병도 생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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