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협력에 앞장서는 사회생물학자 최재천 교수

 

최재천 교수처럼 과학자가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도 드물 것이다. 그가 쓴 “개미제국의 발견”은   소설보다 더 재미있게 쓴 과학 책으로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라 개미사회의 인간 뺨치는 조직적 생활방식을 통해 우리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메시지를 준 책으로 유명하다.
 최재천 교수는 세계에서 인정 받는 동물학자이다. 그를 세계적 동물학자로 인정 받게 한 동물은 다름 아닌 까치. 까치 연구에 세계 독보적 학자이다. 무엇보다도  최재천 교수는 여성에게 우호적인 남성 학자로도 첫 손 꼽힌다. 호주제 폐지 논의가 한창이던 2004년 그가 쓴 ‘호주제 존폐에 대한 생물학적 의견서’는 부계 혈통주의의 모순을 지적해 호주제가 생물학적으로 타당하다는 논쟁에 마침표를 찍게 하는데 큰 몫을 해냈다.

연구실은 풀 속에 나비와 벌레가 날아다니고
역시 그의 연구실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예사로와 보이지 않는 최재천 교수 책상 뒤편의 벽장식은 그의 고향 강릉을 떠올리게 하는 신사임당의 초충도와 화조도 이미지를 콜라쥬하여 지인이 꾸며 주었단다. 초충도의 풀과 벌레는 최 교수와 인연이 깊은 것들이라 예술적 분위기에 과학이란 사실적 분위기까지 얹어놓았다.
먼저 좀 생소한 이름의 학과인 그가 맡고 있는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한마디로 인간을 포함한 자연, 인공환경을 연구하는 종합적 의미를 갖고 있는 학문이며, 외국의 이름 있는 대학엔 다 있는 학과입니다. 생물학과란 명칭이 실험실에 국한돼있는 것 같아 최초로 만든 학과이고 녹색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2007년에 에코과학부가 생기고 나서 정부가 ‘저 탄소 녹색성장’을 국가 원동력으로 선포해 더 의미가 있는 학과가 되었다고 최 교수의  예견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최재천 교수의 명함엔 동물 가족들이 조연으로 등장한다. 최재천 이란 이름 석자를 세상에 알린 개미가족과 까치, 그리고 최근 그의 가족으로 영입된 긴팔원숭이가 그의 이름 석자 주위에 빙 둘러싸고 있는게 정겹고 독특하다.

솔제니친의 개미가 동물연구의 계기
워낙 닥치는 대로 책읽기 좋아하던 문학 소년이었던 최 교수는 학생시절 노벨문학상 작가 솔제니친의 수필 중 ‘모닥불과 개미’를 읽었다. 그리고 불속으로 자신의 동료를 구하러 뛰어드는 개미의 행동을 보고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저 불길로 뛰어들게 하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그 책이 동물생태학을 연구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럼 최교수가 양성평등에 앞장서는 남성주자로 계기가 된 것은 무엇일까? 자라온 환경으로 봐선 어림없는 일이다.
“고향 강릉은 고상하게 이론적으로 가부장제가 진행되어 왔던 곳이고 게다가 군인이셨던 아버지는 마음 표현 없으시고 엄격한 분이시라 오로지 남성 세상만을 누리시는 분이셨죠.
아들이 사회의 가부장 제도를 부수는데 앞장서 나서는 게 영 불편하셨을 최 교수의 아버지는 최 교수의 저서들을 모두  서재에 가득 쌓아 두시면서도 그 내용에 대한 언급은 여지껏 한 마디도 없으셨단다.
“아마 내심 편치 않으셨을 거예요. 그야말로 염라대왕 수준의 가부장 권위의 상징이셨죠.”
최 교수가 자라면서 이런 아버지의 절대 권위에 내심 반발했던 그때 사건은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림으로 남아있단다.
“아버지는 아래 덧니가 석 줄이나 돼 유난히 밥의 돌이 이에 잘 걸리셨죠. 첫 밥술에 ‘크웩’하는 소리가 들리고 아버지가 수저를 탁 내려놓고 아무 말씀 없이 돌아앉아 신문을 펼치셨고 빙 둘러 앉아 수저도 채 들지 못했던 아들 4형제는 그냥 그대로 앉아있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밥상을 들고 나가실 때 발그르르 떨리던 그 소리가 아직 귓가에 생생합니다.”
그때 최 교수는 어머니가 온몸을 떠는 진동으로 밥상 그릇들이 부딪치며 내는 소릴 들으며 아버지 눈치에 차마 일어나서 도와드리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마음 먹었단다.
‘만약 네가  결혼해서 돌을 씹게 되면 아내 몰래 그냥 꾹 삼켜 버려야지’하고. 완고한 아버지 밑에서 어머니를 도와드리려 나설 수 없는 답답한 지경에서의 생각이었지만 어떤 계기가 된 사건임은 분명하다고 들려준다.
“남자란 동물은 어쩔 수가 없어요. 그  마음은 먹었는데 실제 변하기는 힘들더라고요.”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부모님이 지방으로 내려가시고 더부살이 하는 이모에게 대학생이던 최 교수가 집안을 돌봐야한다는 책임감과 권위의식으로 기세가 등등해서 장남 노릇을 했단다. 이모부 출근할 때 안나와 본다며 이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나  어찌나 심하고 대단했던지 결국 몇 달 못가서 이모는 ‘네 꼴 보기 싫어 나간다’며 짐을 싸고 말았단다.
그렇게 가부장적 질서의 틀 속에서 권위의식에 사로잡혔던 최 교수를 지금의 양성평등과 양성협력을 부르짖는 선구자로 이끈 것은 바로 아내인 이화여대 음대 채현경 교수. 그리고 또 연구했던 동물들이라고 최 교수는 얘기한다. 최 교수는 아내를 ‘나의 여성학 지도교수’라 칭한다.  한번도 여성이라고 불평등하게 대우하지 않았던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내는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 같았다. 처음엔 갈등과 다툼도 많았다고 한다. ‘왜 여자, 남자냐, 모두 사람이다’란 아내의 지론에 ‘그래도 남자니까’를 주장하며 싸움을 자초했지만 자연의 암수 관계를 연구 하다 보니 ‘아, 이게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고 한다.
“생물학자의 눈에는 뚜렷이 보입니다. 결국 암컷이 내 자식을 낳아주지 않으면 수컷은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일부일처제를 법으로 보장해 준 것을 남성들은 감사하게 여겨야 합니다.”

설거지를 빨리 끝내려다 문득 깨닫다
햇살 비추는 창가에서 몸 아파 누운 아내 대신 설거지를 후딱 빨리 끝내고 서재에서 일을 하려다 문득 스스로 떠오른 생각 때문에 지금은 집안일을  즐겁게 하게 되었다고 최 교수는 들려준다.
‘설거지를 왜 ‘내일’이 아니라 생각했을까? 우리의 일, 바로 ‘내일’인 것을..’
그 이후 ‘내일’이라 생각한 설거지는 더 잘하고 싶어졌고,  부엌일도 즐기면서 하게 되었다고. 그때부터인가 자연계에서 보고 터득한 암수간의 질서가 권위적이던 마음을 녹였고 아내가 세상을 모르는 것에 대해 답답했던 마음도 비로소 풀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남자란 동물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또 실수를 하게 됩니다. 달라져 봐야 한계가 있지요. 저도 별 수없겠지요. 연구 밖에 모르는 일 중독자고, 휴가 계획도 미리 짜 본적이 없어 아내는 불만일 겁니다.”
워낙 연구가 바쁘고 오지로 여행을 하는 게 연구의 한 부분이라 가족과의 단출한 여행을 꿈꾸는 아내는 불만이 있을 수 밖에 없단다.

사촌 긴팔원숭이에 대한 최초의 논문
3년째 매달려 연구해 온 긴팔원숭이가 요즘 최 교수를 흐뭇하게 만드는 동물이다.
인도네시아 구능할리문 국립공원에 살고 있는 멸종위기종인 자바 긴팔원숭이 가족들은 개미와 까치에 이은 최 교수의 귀중한 부동산들.(학자들은 이런 것을 부동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팔지는 못해도 귀중한 자산이므로)
“우리나라는 영장류 연구의 후발주자이지만 자바 긴팔원숭이라는 틈새시장을 잘 잡은 것이지요. 긴팔원숭이에 대한 첫 논문은 내년 쯤 선보일 것입니다. 배달민족 역사상 단군 이래 우리 사촌에 대한 첫 논문이라 그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데이터를 열심히 보고 있는 중인데 빨리 쓰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 합니다.”
과학자로서 연구 계획을 들려줄 때는 눈빛이 더욱 빛을 발하는 최 교수는 ‘21세기는 여성의시대’라는 예견을 이미  했듯이 다음의 진보과정을  이런 메시지로 남겨 주었다.
“안사람은 여성시대가 왔다고 너무 떠들지 말라고 하죠.  그 말이 아마 맞는 말일 것입니다. 표면적인 교육부분 등에 있어선 여성시대가 온 것 같지만 속을 파고들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반드시 옵니다. 속도의 문제지요. 그 변화가 아름답게 변화하려면 남성이 변해야 합니다.  양성협력시대가 되면 궁극적으로 편해지는 것은 바로 남성들이니까요.”


■사회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1953년 강릉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동물학과를 졸업했고,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생태학 석사와 생물학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하버드대학원 시절인 1984년부터 10여년을 열대림에서 보내며 동물행동학을 연구했다. 1989년 미국곤충학회의 젊은 과학자상을 수상. 하버드대 전임강사를 거쳐 미시간대 조교수를 역임했다. 1994년 귀국 이후 우리나라의 개미, 까치, 조랑말 등을 연구 하여 세계 학계에 보고하여 주목을 받았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 ‘개미제국의 발견’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알이 닭을 낳는다 ’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 등 다수. 2000년 제1회 대한민국과학문화상을 수상했고, 2004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수여하는 ‘올해의 여성 운동상’을 남자로서는 처음 수상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에코학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화여자대학교 자연사 박물관 관장이며 기후변화센터 공동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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