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배금자

 

대학 때부터 잠은 5시간만, 요리도 프로급
가족은 힘의 원천…주말엔 남편과 데이트

 

우리나라 인권 발전을 말할 때 꼭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배금자 변호사이다.
군산 윤락가화재 참사 국가배상소송, 김보은사건, 김부남사건 등 심각한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소송으로 결국 사회제도 변화를 이끈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배 변호사는 굳건한 의지와 용기로 소외된 계층의 편에서 공익소송을 이끌며 자신의 신념을 지켜왔다.
법조인으로 스스로에게 처음 다짐했던  ‘사회정의’ 실현의 꿈을 이루고자 쉼없이 달려왔고,  계속 새로운 의미를 찾는 도전을 하고 있는 배변호사를 만나본다.

엄숙하고 웅장한 대법원 건물이 눈 앞에 바로 마주보이는 서초동의 해인법률사무소. 그곳에서 배금자 변호사는 깔끔한 모시 개량 한복 차림새로 의뢰인들과 면담하고 있었다. 법정에서는 날카롭고 매서운 변론으로 소문났다지만 평소 모습은 그저 여성스럽고 단아할 뿐.
배금자변호사는 1994년‘생방송 오변호사 배변호사’를 진행해 인기를 얻은 변호사지만  국내에서 손꼽히는 공익소송 대표변호사로 우리사회에 큰 틀을 바꿔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요즘은 담배소송을 이끄는 대표변호사로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잡고 있는 다국적 기업과 맞서고 있다.

사무장 없이 사건을 처음부터 챙긴다
“우리 사무소엔 사무장이 없어요. 모든 걸 제가 직접 다 꿰차고 합니다. 자료수집부터 변론까지 구슬 꿰듯 혼자 맞춰갑니다. 허투루 하지 않고 일단 맡은 사건엔 최선을 다하므로 의뢰인의 만족도가 높습니다.”
배변호사는 근래 지적재산권과 문화산업 관련 분야의 법률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이 분야 저작권, 상표권,  퍼블리시티권, 스포츠, 연예인 계약분쟁 등 분야를 포괄한다.  이혼문제는 함부로  맡지는 않지만 일단 수임하면 그것 역시 모든 증거 확보와 빈틈 없는 논리로 상대편을 압박해  유리한 합의나 조정을 이끌어 낸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배변호사는 많은 시간을 사회적 약자를 위한 무료 소송에 할애하며 세상을 바로 잡는 일에 열심이다.
배변호사가  돈 안되는 여러 공익소송을 맡은 이유는 무엇일까?
“배운 것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변호사로서의 소명의식에 공익소송을 맡아왔습니다. 군산 윤락가화재 참사 국가배상소송, 김보은 사건, 김부남 사건, 우조교 성희롱 사건 등이 그것이지요. 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보다 전체 여성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에 시스템을 바꾸고 사회적 의미가 있는 사건들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그녀는 많은 무료 변론과 또 수입은 학비로 많이 써서 벌어논 돈은 없단다.
아무래도 배변호사가 요즘 가장 주력하며 근 10년 가까이 그녀 삶의 부분처럼 돼버린 담배소송에 대한 이야기도 물어 볼 수 밖에 없었다.

담배소송은 공익소송의 대표사례
"담배를 피우다 폐암에 걸린 사람에 대한 책임 소재가 담배 피운 사람보다 담배 제조회사에 있다는 책임을 가리는 소송입니다. 담배소송은 흡연에 대한 심각성을 사람들에게 알려 흡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꾸고, 국가의 금연정책이나 청소년담배판매 규제, 공공장소에서의 흡연규제 등을 강화시키는 전형적인 공익소송입니다. 그런데 담배회사가 민영화 된 이후 상상을 초월하는 압박이 계속돼 힘든 상황입니다."
이런 몸과 마음의 고통 속에 있을 때 그녀에게 큰 힘이 되는 것으로 첫 손 꼽는 게  바로 가족이란다. '굴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남편의 짧지만 굵은 한 마디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 보다 힘이 나는 말이었다고 한다.
사실 배 변호사 역시 가정 일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며 산다고 했다. 그녀의 꽉 짜여진 일주일 스케줄은 듣기만 해도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다. 새벽5시 기상은 오래된 습관이며, 아침 밥상 역시 꼭 손수 차리고 저녁 장보기와 상차림도 역시 그녀 손에서 모든 게 완성된다고.

일품요리도 척척, 요리도 잘한다
“요리를 퍽 좋아하고 잘합니다. 특히 일품요리를 후다닥 만들어냅니다. 어제는 전복아스파라거스 굴소스 볶음을 만들었는데 맛이 잘 났어요. 집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래서 저녁 식사 약속이나 운동모임은 할 여력이 없습니다.”
가정의 가치와 가족의 행복을 소중히 하는 배변호사의 참 모습을 가르켜 그녀 스스로도 “그런 점에 있어선 조선시대 여자”라 웃음지며 자신을 평했다.    배변호사는 소위 한창 매스컴을 타며 잘나가던 시절인 1996년에 제2의 도약을 꿈꾸며 국내에서의 모든 활동을 접고, 미국유학길에 올랐다. 인생의 정점에서 모든 걸 털어내고 제2의 도약을 위한 발판이었고, 마침 미국 연수차 떠난 공무원인 남편과 아이와 함께 가족이 함께 하고픈 마음도 있었다. 하버드 로스쿨에서 준비했던 석사논문이 ‘미국 담배소송 이론 한국에의 적용’이었고, 이를 계기로 한국 최초의 담배소송도 맡게 됐다. 3년간 미국에서 고생하며 취득한 뉴욕변호사 자격증도 자신감을 확인하는데 쓰였을 뿐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다시 우리나라에서 들어올 정도로 “남편을 위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그녀에게 가족은 절대적 가치라고 한다.
“제 사회적 삶은 선구자란 소릴 들어요. 연수원 마치고 바로 판사에 임용돼 어린 나이에 대접 받는게 싫어 1년반 만에 변호사로 돌아선 것도 그렇고....  전관 예우 받는 걸 피해 개인사무실보다 로펌에 들어간 것 등등 말이죠. 지금은 오히려 로펌이 더 인기라죠? 그런데 집에선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는 옛 어머니들의 마음 자세로 살고 있습니다…”

마음차원을 높이는 게 또 다른 목표
요즘은  세계로 무대를 넓히려면 영어뿐 아니라 일본어도 필요한 것 같아  주말에 5시간씩 일본어 학원을 다니며 계속 공부를 하고 있고, 그후 시간은 남편과 영화관을 찾아 데이트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한 주를 마무리 한다.
“봉원사에 들러 200배 올리며 수행 겸 운동도 하지요. ‘참나’를 찾는 행복한 순간입니다.”
미국 가기 얼마 전부터  가족이 함께 시작한 ‘마음공부' 역시 배 변호사 가족의 든든한 지짓대란다. 무주상보시란 금강경의 구절은 배 변호사가 특히 마음 속에 되뇌이는 구절. 보시는 무엇이든 나누어 가짐으로써  나와 이웃과 함께 기쁠 수 있다는 것.
“재산과 명예보다 마음 차원을 높이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린 시절, 소 먹일 꼴을 베고 돼지우리도 직접 치우던 한 시골 소녀가 변호사로 성장해 공익을 위해 뛰어 다니며 여성권익에 앞장서 법을 바꿨다.  그리고  이제 마음차원을 높이라며 다음과 같은 금강경의 말을 우리에게 전한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모든 현상세계는 마치 꿈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으며, 또한 이슬과 번개 같아서, 마땅히 이와 같음을 알고 관할지니라.

┃글 = 이명애 기자 love8798a@naver.com                                   
┃사진 = 김정연 기자 moya7a@naver.com


■배금자 변호사는…

경북 영일군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적부터 판사를 꿈꾼 시골소녀였다. 수업 뒤 매일 뒷동산에 올라 나무막대기로 '판사 배금자'라고 땅바닥에 쓰곤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집안 형편 상 여상에 입학했고, 부산대학을 졸업했다. 첫 아이를 낳은 뒤 27회  사법고시에 합격.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를 역임했고, 1989년 이후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1998년 하버드대 로스쿨 졸업, 뉴욕주 변호사자격증을 취득했고, 공익소송 활동을 인정받아 서울 지방변호사회 공익봉사상, 올해의 여성권익 디딤돌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캠퍼스 커플로 만나 행정고시에 배 변호사보다 1년 먼저 합격해 공무원인 남편과의 사이에 군복무를 전방에서 마친 대학생 아들이 한 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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