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매출 1억미만 업체 70%…주세법 규제가 발전 저해

■  식품대장정 - 한식의 계승과 세계화 Ⅳ
     전통주 ①

<열악한 전통주 제조업체의 현실을 안타까워 하는 조재선 (사)한국전통주진흥협회장.>

 

우리 민족의 음식문화 가운데 주·부식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음청류의 첫째가 술이다. 특히 제례를 끔찍이 숭상해 온 우리 조상들이 온 정성을 다해 빚어 올린 최고의 공물(貢物) 역시 술이었다. 이번호부터는 전통음식에 이어 우리의 전통주는 어떻게 이어져 오고 있는가, 그 계승의 맥을 짚어나가며 세계화 가능성을 탐색해 보기로 한다.

 

 

대소사나 인사치레엔 가양주가 제격
‘우리 땅에서 나는 우리 농산물로 빚고 애초의 제조기법과 그 맛 그대로가 오래 전수돼 온 술’…전통주에 대한 사전적 풀이다.
오랜 세월동안 식생활 패턴이 무한히 변했어도 변함없이 즐겨 대하고 있는 음식은 술이다. 그래서 집집마다 그 나름의 방법으로 술을 빚어 놓고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최고의 인사치레로 가양주를 내었다.
예전에 서울에서는 ‘남주북병(南酒北餠)’이라는 말이 있었다. 즉 사는 형편이 구차스러웠던 남산골에서는 주로 술을 잘 빚어 먹고, 부귀한 양반가들이 많았던 북촌에서는 음식사치가 대단해 주로 떡(편)을 잘 만들어 먹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떡 뿐 아니라 갖가지 가양주를 빚어 먹었던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술을 즐겼다. 그래서 조선조 때에는 술로 인한 폐해가 심해 금주령을 내리기까지 했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일기> 7년(1501) 7월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벼슬아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리석은 백성들도 부질없이 술을 많이 마실 줄만 알아서 술에 취하기 때문에 1년의 곡식이 반이나 술에 소비됩니다. 그것은 이미 양식을 모자라게 하고 그것으로 인해 병이 되며, 1주(周)가 되기도 전인데 벌써 굶주림에 울면서 곡식을 팔아야만 된다고 하니, 지금 백성을 해치고 재물을 해치는 것은 술입니다. 무릇 술은 누룩이 아니면 빚을 수 없고, 누룩은 밀이 아니면 만들 수 없습니다. 바라옵건대, 민간에 조서를 내려 밀을 심는 것을 금지시킨다면 몇 해 후에는 백성들이 술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 금주법을 제정했다.

우리나라의 전통 명주들
예전에도 여러 술 가운데서 소위 명주로 꼽던 전통술들이 있었다. 우리 술(조선술) 가운데서 가장 유명했던 술을 들어 얘기했던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 기록을 보자.
‘가장 널리 퍼진 것은 평양의 감홍로(甘紅露)로 소주에 단맛 나는 재료를 넣고 붉은색의 곡물로 발그레한 빛을 낸 것이다. 그 다음은 이강고(梨薑膏)니 배의 물과 생강즙과 꿀을 섞어 빚은 소주이다. 그 다음은 전라도의 죽력고(竹瀝膏)로 청대(푸른 대나무)를 숯불 위에 얹어 뽑아낸 즙을 섞어서 곤 소주이다. 이 세 가지가 전날에 전국적으로 유명하던 것이다. 이밖에 김천의 두견주, 경성의 과하주(過夏酒)처럼 부분적 또는 시기적으로 좋게 치는 종류도 여기 저기 꽤 많으며 뉘집 무슨 술이라고 비전하는 법도, 서울·시골 퍽 많았으나 근래 시세에 밀려 대개 없어지는 것이 퍽 안타깝다.’
세상살이의 변천과 더불어 전통주가 점차 사라져 가는 것을 아쉬워 하고 있다.
그 외에도 김포 특주, 안동 제비원의 순곡소주, 한산 소곡주, 부산산성의 약주, 경주 법주, 마산·목포의 정종, 개성 소주, 해주 방문주, 동래 동동주를 팔도 명주로 꼽았는데, 이 술들은 지금도 전승돼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팔도 명주 외에도 특이한 주조법을 가진 술로 와송주(臥松酒), 죽통주, 지주(地酒), 송하주(松下酒), 나비술이 있었다. 와송주는 비스듬히 누운 큰 소나무에 구멍을 파고 그 안에 술을 빚어 넣는데, 역시 소나무를 깎아 구멍마개를 하고 진흙으로 그 위를 발라 밀봉시킨 다음 풀로 덮어 빗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여 술을 익히는데 향이 특히 좋다. 죽통주는 대나무 마디마디 사이에 담근 술이고, 지주는 술독을 땅속에 깊이 묻어 숙성시키는 술이다. 송하주는 소나무 밑에 술독을 묻는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나비술은 누에고치에서 성충나비가 되어 나오는 놈들을 소주 항아리에 넣어 한 해를 묵힌 술이다. 이 술은 교배하기 이전의 나비를 잡아넣어야 큰 효과가 있다고 했는데, 만병통치와 보양에 좋은 약술로 전라도 고창 부근의 줄포지방에서 빚어내던 특이한 술이었다.

세제 등 규제장벽 큰 걸림돌
현재 우리나라의 술은 크게 탁주, 약주, 청주, 소주, 과실주 등 다섯 종류로 나뉘고, 전통주로 분류되는 것은 100여종이다. 이중 가장 역사가 오래고 대중적인 술이 막걸리인 탁주와 소주다. 게다가 문화재 지정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명인주와 막걸리(농주)로 대표되는 술이 전통주로 분류돼 그 맥을 이어가고 있는데, 역사로 치면 고작 100년에 불과하다. 특히 최근 일본관광객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는 막걸리는 식생활 양식의 변화와 산뜻하지 못하고 탁한 품질 문제, 탄산보유량 등 질적인 문제가 있어 대표 전통주의 세계화에는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전통주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영세한 생산업체의 공조체제 구축 필요성에서 87개 회원사들이 모여 (사)한국전통주진흥협회를 설립한 것은 불과 2년 전인 2007년 9월이다. 초기 가양주 형태로 민속주와 과실주를 빚어온 개인 개인이 정보교환과 공동마케팅, 비법 전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뜻을 모았던 것.
이 협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조재선(曺哉銑·73) 회장은 각종 세제와 유통문제, 품질 향상과 전승문제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전통주를 만드는 업체의 70% 이상이 연 매출규모가 고작 1억 원 미만일 정도로 아주 열악합니다. 그런데도 주세법이 너무 엄격하고 규제가 많아 어려움이 많습니다. 일부 감세혜택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종량세 적용으로 맛좋고 값싼 술을 만들어 내는 외국과 비교해 우리 제조업체에는 종가세를 적용시켜 제조방법, 원료, 시설기준이 너무 엄격해 맛좋고 값싼 전통주를 만들어 내기가 힘든 형편입니다. 판매면허를 얻는데도 장벽이 너무 많아요. 전통주육성법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긴 하지만 전통주 100년 역사에 말도 안 되는 것이죠. 그러니 고작 명절에만 소량 제조해 판매하는 게 우리 전통주의 현주소 입니다.”
그러나 활성화 대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조 회장은 말한다.
“전통주 제조에 관한 업무를 지자체로 이관시켜 지방세를 자율로 매기게 하면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고 지금보다는 훨씬 활력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남아도는 정부쌀을 보다 싼 값에 주정용 쌀로 공급해 주면 쌀소비 촉진과 수급조절에도 기여하게 돼 일거양득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협회 차원에서 내년에 공동판매장을 개설해 홍보·전시에 온 역량을 집중시킬 계획입니다. 함량 미달인 전통주 맛 수준도 향상시켜야 하고… 아직 갈 길은 멉니다.”
일부 기업규모의 제조업체가 소량 해외수출을 꾀하고는 있지만 조회장의 지적과 같은 제도적 규제가 발전적으로 완화하지 않는 한 대중화는 물론 세계화는 더더욱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박광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