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만세 - 경북 영양군생활개선회 초대회장 금계영 여사


칠순에도 현역처럼 활동하는 ‘야생화 꽃씨 전도사’
감색치마에 은색저고리, 곱게 빗어 넘겨 쪽진 머리에 온화한 얼굴빛,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어 보이는 조심스러운 걸음걸이…. 영낙 없이 ‘조선의 반가집 여인네’를 연상시키는 단아한 모습이다. 올해로 일흔 둘인 금계영 여사의 첫인상이다. 먼발치에서 보면 쉽사리 범접키 어려워 보이는 분위기를 지녔지만, 이곳 영양군 관내에서는 더없이 자애로운 어머니이자 선각자로, 특히 경상북도 내의 생활개선회 회원들이 존경해마지 않는 ‘꽃씨 할머니’로 통한다.
더더구나 1950년대 말 ‘생활개선구락부’ 때부터 여성활동을 시작해 영양군생활개선회 초대회장을 지내면서 궁벽한 산골 오지의 농촌여성 계도에 앞장서 온 선각자이면서 지금껏 줄곧 야생화 꽃씨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어 주위사람들의 무한한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지금이야 조금 여유 있게 살고 있지만 예전에는 정말 어렵게 살았어요. 너무 가난했지. 그러니 상급학교 진학은 꿈도 못 꿨어요. 설상가상으로 여덟 살 때 화가인 부친이 돌아가셔서 어려움은 더했지요.”
그런 궁핍한 처지에서 고작 소학교 나온 것이 뼈에 사무치는 한이었노라고 했다. 시를 쓰고 있는 것도 그 적의 못 배운 한에서 시작한 일이라고도 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가사일 도우며 역시 비슷한 처지에 있던 지금의 부근 이종명(李鍾鳴·77) 선생을 만나 결혼했다는 것.

“정말 힘든 세월이었지. 아이들 키우고 학교 보내려니 뭐든 돈 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됐어요. 여자 교육생이 달랑 나 하나뿐이었던 도 농업기술원의 영농교육을 받고 돼지 40마리를 키웠는데, 그게 아이들 삼남매의 학비며 가정생활에 큰 보탬이 되었지.”
그때의 근검절약 습관이 지금도 몸에 배어 있어 그나마 오늘의 작은 경제적 여유를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금 여사와 비슷한 처지였던 부군 역시 배움에 대한 한을 삭이며 교육사업에 온 열정을 쏟아 부어 지금의 수비중·고등학교(영양군 수비면 소재)를 설립했다고 했다.
 금여사가 건네준 명함은 여느 명함과 다르다. 무궁화 꽃 원색사진을 얼굴사진자리에 박아넣고 ‘세원 금계영’이름자 밑줄에는 주소와 집전화, 휴대폰번호, 남편의 휴대폰번호를 나란히 적어 넣었고 맨 밑단에는 ‘즐아평 세상, 꽃누리 만들기- 마음을 즐겁게, 세상을 아름답게, 가정을 평화롭게’라는 구절이 가지런하게 적혀 있다. ‘꽃씨 전도사’ 금여사의 마음가짐을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글귀들이다.
금 여사가 집 앞 텃밭과 비닐하우스에 기르고 있는 야생화는 대략 300여종. 이 꽃들의 씨앗을 받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해마다 보내준다.
“전에는 일일이 씨앗을 손으로 싸서 보냈는데,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남편이 약봉지 싸는 기계를 사줘 간편하게 포장해 보내고 있어요. 언젠가는 다른 지방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 길가에 내가 보낸 야생화 꽃이 피어 있더라구요.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런 그녀에게 효(孝)에 대해 물었다.
“다른 게 없어요. 부모마음 편하게 해드리는 게 효도지.”라며 햇살 가득한 야생화 꽃밭으로 나서는 금 여사의 어깨위로 흰 구름이 꽃처럼 환하게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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