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강사 정덕희

 

그녀의 수다는 유쾌하다
그녀의 수다엔 아픔의 가시가 있다
그녀 얘기는 다 우리 얘기 같다
그녀 얘기는 재밌지만 진지하다
그래서 그녀는 알듯 모를 듯하다
그래서 그녀는 우리네 누이 같다


행복의 주문을 외어보세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면서…

햇살이 밝은 6월의 어느 날, 빨간 장미의 열정을 가슴에 품은 인기강사 정덕희를 만났다. 그녀 특유의 경쾌한 목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카랑카랑 했지만 그냥 무심한 듯 빗어 넘긴 은빛머릿결과 한결 부드러워진 얼굴에선 원숙함이 물씬 묻어나왔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정덕희는 서른다섯 살이라는 나이에 사회에 맨몸으로 뛰어들어 세일즈를 시작했다. 고단했던 시집살이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비장하게 마음먹고 역경을 헤치며 노력했고 결국 우리나라 주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타강사가 반열에 올랐다. 그녀의 이런 입지전적 스토리는 많은 여성들에게 또 다른 희망 메시지였고 꿈이기도 했다.
그래서 재작년 학력파문 논란에 그녀 이름이 회자될 때 그녀에게 때론 실망한 마음을 내비치는 사람도 있었으나 더 많은 사람들은 그녀에게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알려진 바와 같이 그녀는 결코 학력을 속이지도 감추려 하지도 않았지만 고통의 시간은 찾아왔다.
결국 올 곧게 이 모든 시련을 견뎌내고 한층 세련되고 성숙한 모습으로 그녀는 우리 앞에 섰다. 그리고 여전히 유쾌한 수다로 그녀의 사는 이야기를 쏟아내며 우리에게 행복을 한 아름 안겨준다.

‘내안에 너있다’가 아닌
‘내안에 나있다’로 살기

“가슴이 다 시원해져요. 눈물 날 뻔했어요”
“강의에 매료돼 넋을 잃고 앉아 있었어요”
그녀의 강연이 끝나고 난 후, 주부들이 우루루 그녀에게 몰려들며 쏟아내는 말들이다. 이렇듯 때론 눈물을 쏙 뺄 만큼 감동을 이끌면서도  웃음도 터져 나오게 만드는 한편의 모노드라마를 연출하며 분위기를 주도하는 그녀 강의 내용의 주제는 한마디로 ‘여자의 행복찾기’. 행복해서 감사한 게 아니라 감사하니 행복해지는 거라고. 그래서인지 그녀는 “행복하다” “‘감사하다”란 말을 입에 늘 달고 산다. 그녀가 얘기하는 행복의 뒤에는 긍정의 마음이 있다.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려고 하는 요즘의 우리들에게 어쩜 가장 필요한 덕목일 테니까.
“행복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거예요, 오직 자신만이 가꾸고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편이나 자식 땜에 행복해지려는 생각은 버려야 해요. 남편이나 자식을 내안에 가두려하지 말아요, 어차피 인간은 혼자랍니다. 자기를 사랑하세요. 자기를 사랑하고 추켜세우면서 자기와 말하는 법을 배우세요. ‘내안에 너 있다’가 아니라 그보다 더 멋진 말 ‘내안에 나 있다’로 살아가세요.”

솔직함이 무기…내숭은 없다
때론 그녀의 내숭떨지 않음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고상한 외모와는 다른 과장된 몸짓과 거침없는 그녀의 말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이다, 그녀는 그조차 그닥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전 엄숙하게 가르치려 하지 않아요. 그저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내죠. 진솔한 제 삶의 이야기가 보통 여자들의 속을 시원하게 하고 따뜻하게 감싸주기도 하나 봐요. 공감대가 형성되는 거지요. 전 내숭 떨지 않아요.
오십 줄을 넘으니 그동안에 낸 세금만큼이나 인생에 여유가 생겼어요. 모든 것에 안달 하지 않아요. 전 솔직한 여자라서 보통의 눈높이에서 함께 손잡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할 뿐입니다. 꾸밈이 없는 거죠. 제 흰머리도 염색이라도 하지 왜 그냥 두냐는 말씀들을 하시는데…늙음에도 앙탈부리고 싶지 않아요. 올해로 쉰여섯 살인 거 맞는데 뭐 하러 가리고 살겠어요?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맞서며 살고 싶어요.”
그녀는 자신의 가장 큰 무기가 솔직함, 그리고 자기  자신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데서 나오는 당당함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녀를 실제로 보면 생각보다 키가 크고 말랐지만 근육질의 다부진 체격에 놀라게 된다.
“저 생각보다 궂은일 가리지 않고 힘든 일을 많이 해요. 농사일로 호미질하며 단련된 근육이 장난 아니죠? 경기도 안성에 500여평 남짓 땅이 있어요. 그걸 제가 다 가꾸며 돌봐요. 새벽같이 일어나서 이슬 보석 밟으며 물주고 둘러보며 일합니다. 자연은 거짓말을 안 해요. 주인이 돌보는 만큼 열매로 보답하잖아요. 자연 속에서의 공부는 느끼는 자만의 몫입니다.”
생각이 어지러울 때면 그녀는 농사일을 더 열심히 한다. 잡초도 뽑아내고 비료도 주다가 하늘 한번 쳐다보면 자연은 어느새 편안함을 선사해준다고. 그래서 일부러 찾아서 웰빙을 즐겨야만하는 도시의 사람들보다 항상 자연을 그 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농촌의 삶이 더 풍족하고, 요즘 추구하는 진정한 삶의 모습이란 생각도 해본단다.
한주 보통 20시간씩의 강연으로 몸과 마음이 지칠 때 ,그녀는 안성 집을 찾아 휴식을 취한다. 그곳에 마련해 둔 생각의 방에서 정신을 충전하고, 이웃에서 얻어다가 말려놓은 우거지로 반찬을 해 먹는다고.
“우리 동네에선 제가 우거지아줌마로 불려요, 버리는 무청 주워다 말리는 거 동네 소문 다 났어요. 우거지 잘 불려서 껍질까지 싹 벗겨내 멸치국물 자작하게 붓고, 된장 넣고 들기름에 볶다가 송이버섯 가루로 마무리하는 우거지 나물은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네요. 남편은 고추장 넣어 쭈~욱 찢어 먹는 거 더 좋아하지만요…”

남편은 더없이 신중한 사람
서로 안맞아도 부부란 그런 것

자연스럽게 그녀 가족들로 화제가 옮겨졌다. 워낙 시집살이 힘들어서 뛰쳐나와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는 사실은 세상에 많이 알려져 있기에 남편과 시댁과의 관계가 염려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녀는 명쾌하게 답해준다.
“과거를 가슴에 안고 사는 여자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봐도 통이 작은 여자는 아니죠. 서로 변명도 해결도 하려 하지 않았지만 시댁식구들과 별 탈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딸은 할머니를 그지없이 섬기고 모셔요. 저 역시 우리 어머니가 아무 보잘 거 없었던 저를 며느리로 선택해 주셨던 그 고마움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제가 외모와는 다르게 보수적인 부분이 있어요. 남편도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게 낫다는 생각이죠. 썩은 울타리라도 있는 게 낫잖아요?
알듯 모를 듯 남편에 대한 불평 같기도 한 얘기 보따리가 풀리더니 여느 엄마들처럼 자식들에 대한 화제로 옮겨진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 하나 꼽으라면 아이들 낳은 거죠. 도리를 아는 사람으로 자라준 게 무엇보다 기쁜 일입니다. 가장 소중한 제 자신을 제외하고 역시 가족이 두 번째로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힘들 때 든든히 제 곁을 지켜준 가족들이 제 힘의 원천입니다.  바르게 자라서 대기업의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큰아들과. 역시 예쁘게 커서 대기업 비서실에 근무하는 딸아이가 제 큰 보물입니다.”

“내 얘기에 행복해하면 나도 행복”
어린 소녀 정덕희의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다. 십수년 전 시집에서 제주도에 고기집을 차려 줄테니 장사해 보라고 했을 때 쥐뿔도 없으면서 거역할 수 있었던 건 그래도 어릴 적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고 지금 그녀의 속내를 몽땅 풀어놓고, 주부들과 웃고 떠들며 공감을 만들어가는 스타강사 된 것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맘 속에 품고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리라.
“모든 이에게 받은 사랑이 너무 크고 과분해 어떻게 보답할 지를 차분히 계획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지켜봐 주세요. 제 얘기에 여러분이 행복하다면 저도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그녀의 유쾌한 수다…하지만 그녀 삶의 희로애락이 버무려진 진지한 수다는 오늘도 계속된다.


정덕희는…
1954년 충남예산에서 태어나 예산여고를 졸업했다. 만학으로 동국대 교육대학원 교육경영연구자과정을 2년 수료했으며, 명지대사회교육원 교수로 12년간 재임했다. 전 경인여대 겸임교수 역임했고 시인이기도 하다. 저서는 1997년 ‘여자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를 낸 이후 2008년 ‘그럼에도 행복하소서’까지 모두 11권. 요즘은 전국을 누비며 한 달 평균 80시간 주부 마음을 치료하는 강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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