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 백일섭씨

 

“행복은 뭐든 욕심 부리지 않고
‘고것’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지요…잉~”

 

주말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이 주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아들 사형제를 둔 대가족의 사랑과 결혼에 이르는 과정들이 아기자기하면서도 때론 정겹게, 또 재미있게 그려지며 공감을 얻고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역의 탤런트 백일섭씨도 ‘엄마가 뿔났다’의 이해심 많고 순박한 아버지의 모습이 더 이상 아니다.
바람잘 날 없는 대가족의 해결사로 선굵은 아버지로 변신했다.
진짜 그는 어떤 아버지일까?
막걸리 한 잔 같이 나누고 싶은 인자하고 구수한 동네아저씨의 드라마 속 배역으로 늘 우리에게 친숙한 탤런트 백일섭씨. 자식들에게 한없는 사랑을 쏟으며 아내의 모든 넋두리에 귀 기울여줄 것 같은 맘 좋은 ‘우리 아버지’의 진솔한 삶의 진짜 모습이 그래서 더욱 궁금해진다..
“실제로는 어떨까?”

초여름의 반가운 비가 뿌린 지난 수요일, 백일섭씨가 사는 조용하고 아늑한 전원마을 어귀에서 그를 만났다.
“동네가 익숙하고 재미도 쏠쏠해서 촬영이 없는 날은 동네 근처에서 맴돌며 지내지요. 어디 멀리 일부러 나다니기가 싫어요. 그래서 굳이 이곳으로 오시라 했어요.”
약속 시간을 조금 넘기기에 차림새에 신경을 쓰려나 잠시 딴 생각도 했지만 그저 수수하고 헐렁한 티셔츠와 점퍼 차림으로 예상을 뛰어 넘지는 않는다. 얼굴 가득한 미소 역시 늘 우리가 보던 모습 그대로다. 얼굴의 주름살로 그가 살아온 세월을 가늠하자면 그가 맡아 온 배역과 별반 다르지 않은 넉넉함이 풍겨나온다.

전화도 직접 받으시던데, 매니저는?
“나는 스스로를 ‘독립군’이라고 불러요. 매니저 없이 혼자 다니는 게 편안해서 좋지요, 간섭 안 받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고, 그게 좋아요. 코디도 없고. 매 작품 들어 갈 때마다  방송국이랑 아예 전체로 코디 계약까지 한꺼번에 하지요.”
 동네 편의점에서 얼음이 가득 든 냉커피를 주문하면서 어젯밤에 과음한 사연을 들려준다. 굳이 미안하다고 대놓고 직접 얘기는 않더라도 상대방에게 그의 마음이 전해지도록 하는 묘한 재주를 가졌다.
“그래도 아까 전화 받고 아차 하면서 금방 정신 차렸잖아요. 말짱해요.  찬 물로 세수하면 또 생생해지니까.”

녹화가 없는 날은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그냥 운동을 좋아해요. 낚시도 가끔 가고요. 며칠 전에는 거문도로 해서 바다낚시를 빙 한바퀴 다녀왔어요. 시간 날 때마다 골프를 이웃들이랑 어울려 치지요. 그냥 그러면서 지내요. 세상사 복잡하게 살 게 뭐 있겠어요. 맘이 맞는 친구들이랑 어울려 즐겁게 지내면 좋은 거지요. 보기 싫은 사람은 안 만나면 되는거고... 삶이란 게 얼키고 복잡해지면 어지러워서 말이에요. 난 그렇게  별 걱정 없이 단순하게 지내요.”

혼기 앞 둔 1남 1녀를 두셨는데 ‘솔약국집 사형제’ 중에서 사위 삼고 싶은 캐릭터가 있는지요?
“솔약국집 아들들은 다 맘에 들어요. 첫째 진풍이는 담담하고 재미는 좀 없지만, 맏이니까 듬직하지요. 둘째 대풍이는 흔히 말하는 ‘엄친아’잖아요? 의사라는 잘 나가는 직업에다 잘생기고... 그러니 좋아요. 선풍이는 외모는 좀 떨어지지만 똑똑하고 인간이 반듯하죠. 막내 미풍이는 아무래도 애교있고 다정다감해서 정이 가겠지요. 그런데 그뿐입니다. 내가 어떻게 누구를 고르겠어요. 우리 딸애가 내가 원한다고 해서 그런 놈을 만나 데리고 올 것도 아니고 또 그러라고 등 떠밀고 싶지도 않아요. 오히려 우리 딸에게 실컷 하고 싶은 거 다해보고 아무 때나 너 원할 때 결혼하라고 얘기하지요. 결혼도 역시 다 자기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드라마에서 자식들 혼사에 감 놔라 대추 놔라 간섭하는 부모들이 좀 과하게 여겨집니다. 스물여덟살 난 우리 딸은 대학원에서 디자인분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데 공부에 욕심이 있어서인지 아직 이렇다 할 만한 애인 한 명  부모에게 구경시켜준 적이 없어요. 그래도 열심히 사는 모습이 기특하고 예뻐요.”
자식들 얘기가 나오자 그는 멋쩍어하면서도 눈빛이 달라진다. 아닌 척해도 그도 역시 대한민국의 여늬 아버지나 진배없다. 자식자랑엔 천하의 연기자 백일섭씨도 속수무책일 뿐.
“우리 아들녀석은 골프를 하다 그만 둔지가 10년 쯤 되었나요… 요즘 와서 다시 시작 하려는 모양입니다. 골프를 그만둘 때도 그렇고 다시 시작 하려는 지금도 일부러 아들에게 충고의 말을 더 아끼지요. 무엇이든 자기 스스로 결정하면 어떤 경우에도 후회가 없고 그 책임도 자신이 질 뿐더러 이뤄낸 성취감 역시 더 크겠지요. 조용히 뒤에서 아버지가 말없이 지켜봐 주는 게 아들녀석에게 힘이 되리라 봅니다. 결혼도 같은 맥락입니다. 저희들끼리 잘 살면 될 것을 뭐 하러 아비라고 상관하겠습니까? 다 자기들의 몫이고 복이겠지요. 걱정 안하렵니다.”

전원생활 재미에 푹 빠져 사신다고 들었는데요?
“아무래도 아파트생활은 숨이 막힐 듯 답답해서 내 집 같지가 않았어요. 한 이삼년 살면 몸이 근질거리고 들썩 거려서 이사만 여러 차례 다니다가  공기 좋고 물 맑은 이 곳에 내가 우겨서 터를 잡았지요. 10년 전 처음 이곳에 터 잡을 때는 분당 신도시가 생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산골짜기나 진배없었어요. 학교 가기 힘들다고 아이들이 투정하고 아내도 설득 하느라 꽤 애를 먹었지만 지금은 아내가 더 만족해하지요. 
우리 마을 진입로도 내 출연료 일부가 들어가 생긴 길인 걸요. 첫 경기도 도자기축제 때 출연료를 마다하고 그 대신 마을 진입로를 아스팔트로 포장해 달라고 부탁해서 마을에 번듯한 길이 뚫린거지요. 드문드문 열 채 남짓하던 집들도 어느새 지금은 백여 세대도 넘는 꽤 번듯한 동네가 됐어요. 마을 이름을 멋들어지게 써논 조경석도 역시 내 출연료 값이죠.  잡지 광고 출연료 대신 커다란 돌을 받아와서 마을에 세워 놓았지요. 아마 조경석 뒤편 한 구석에  ‘백일섭 증’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을 걸요. 덕분에 때깔 좋은 동네가 됐다고 마을에선 이장님 대접해 줍니다.”

애주가로 알려졌는데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술은 오로지 탁 쏘는 끝 맛이 느껴지는 소주가 최고예요. 막걸리는 배가 불러서 자주 즐기지 않습니다. 아껴주시는 팬들이 술과 담배 땜에 걱정들을 해주시는데 건강은 병원에서 주기적으로 체크 하니까 별 문제 없습니다. 의사도 술 먹지 말라는 소리는 안하더라고요. 다만 조금 줄여보라는 충고는 하지만… 꾸준히 관리 하니까 별 탈 없습니다. 얼마전 타계한 여운계씨 때문에 주위에서 더 우려의 말씀을 건네주시는데 정기적인 검진이 저만의 건강관리법입니다. 너무 쉽나요?‥”

건강을 위한 특별한 보양식이나  평소에 즐겨드시는 음식은?
“매일 먹는 밥인데 번거롭게 이것저것 차리게 하고 싶지 않아요. 아내도 아이들 뒤치다꺼리도 그렇고 이것저것 신경 쓸게 많은데…부러 간단히 밥상 차리라고 하지요. 정말 밥이랑 김치만 있으면 됩니다. 사실 그게 아내에 대한 배려예요. 맛난 것이야 지천에 널려있으니 나가서 사먹으면 되죠.  고향은 여수지만 아버지가 경상도 분이라 그 피가 내 몸에서 돌고 있어 그런지 몰라도 아내에게 속닥속닥 얘기 걸며 살갑게 해주지는 못해요.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성격 탓이지요. 미안한 노릇이죠. 허나  매사에 아내를 편안하게 해주고픈 속이야 아내도 눈치채지 않나 싶어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그 마음도 고맙지요.”

농촌 생활을 담아냈던 ‘대추나무 사랑걸렸네’란 드라마에도 7년간 출연하셨고, 농업홍보대사 경험도 있어 농촌주부들에게 각별한 관심이 있을텐데요?
“몸이야 여러모로 힘든 부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농촌여성들이 도시여성들보다 더 행복하다고 봐요. 아무래도 농촌은 도시보다는 덜 복잡한 생활조건이라 치열한 경쟁에서 한 발짝 물러 설 수 있어서 마음의 평온을 누리기에는 더 나은 환경이니까요. 물론 물질의 풍요로움이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없다는 생각도 합니다. 아무쪼록 자기계발에 힘쓸 여유로움을 농촌여성들도 한껏 누리게 되시길 바랍니다.”
드라마 속의 맘씨 좋은 넉넉한 모습만큼이나 많은 바람 없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딱 요것이면 족하다”는 소박함으로 살아가는 백일섭씨. 그는 앞으로도 우리아버지의 애환과 정을 담은 좋은 연기로 여성들을 응원하겠다며 멋쩍은 웃음을 날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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