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요칼럼

동 열 모
미국주재 대기자

 

농촌은 본시 대자연과 함께하기 때문에 대자연처럼 항상 너그럽고 여유가 있다. 그래서 농촌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좋은 일, 궂은 일 가리지 않고 흡수하며 도시의 물리적 공해까지도 포용해서 정화한다. 농촌의 이러한 포용력은 현재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도시의 실직자까지도 받아들여 소중한 일군으로 만들 수 있다.
농사란 본시 일군(노동력)에 제한 없이 적으면 적은대로 꾸려나가고, 아무리 많아도 그들을 필요로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농촌에는 언제 어디서나 일자리가 있다. 특히 농촌의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간 현실에서 농촌은 젊은 일군을 더욱 절실히 요구한다. 그래서 농사철에 농촌에 가면 하루에 점심 한 끼에 간식도 오전 오후 한 차례씩 두 번 제공 받고도 최소한 5~6만원을 받는다.

초보자도 일할 수 있는 농촌
일반적으로 농사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단순 노동이기 때문에 농사일에 경험이 없는 초보자라 할지라도 농촌에 가면 언제나 환영 받는다. 농촌은 이렇게 일군을 기다리고 있는데 도시에는 일자리를 얻지 못한 실직자가 넘치고 있으니 그 까닭이 무엇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농사일은 천하고 농촌을 못살 곳으로 여기며 농사짓는 사람을 멸시하는 경향이 있는 듯 싶다. 만일 이러한 고정관념으로 말미암아 도시의 실직자들이 굶으면 굶었지 농촌에는 가지 않겠다면 이들은 재기할 가망이 없는 사람들이다. 특히 서울의 지하도에서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는 노숙자도 농촌으로 가면 대접 받고 돈도 벌어 노숙생활을 면할 수 있을 것인데도 그 어지러운 생활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오늘의 농촌을 아직도 보릿고개 시절의 농촌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진 사람이다. 오늘의 농촌은 먼 시골까지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트이고 전기는 물론 TV나 전화가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변모했다. 그래서 미래를 설계하는 절망한 시민들은 도시의 공해를 피해 공기 좋고 물 맑은 농촌에 사람의 터전을 마련하고 지인과 더불어 살려는 풍조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사실 농촌은 집값이 상대적으로 싸고, 생활비도 적게 들 뿐만 아니라 적은 돈으로 텃밭을 장만해서 무공해 식품을 손수 가꾸어 먹는 즐거움도 맛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도시와 다름없는 문화생활도 누릴 수 있다. 전 세계가 경제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이 기회에 민관(民官)이 합심해서 농촌의 이러한 좋은 조건을 널리 홍보하고 도시의 유휴인력이 농촌에 매력을 느끼고 농촌에 발붙일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면 귀농가족이 늘어날 것으로 확신한다.
차제에 농촌을 경시하면서 도시의 네온불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에게 농촌은 과연 어떤 곳인지 진지하게 음미해 보고자 한다. 오늘날 컴퓨터라는 경이적인 발명품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도와주고 모든 생활기기가 자동화되어 우리의 생활은 점점 더 편리하고 살맛이 날듯한데 그와 반대로 인심은 오히려 메마르고 아무리 먹어도 마음이 허전하며 고달프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그것은 기계문명이 발달할수록 우리 인간은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해서 정서가 메마르고 인간성을 잃어 우리의 일상생활은 피곤하기 때문이다.

농촌은 영혼도 정화시켜 준다
이렇게 산업공해에 시달리고 기계의 소음에 지치면 지칠수록 우리 인간은 편히 쉬면서 조용히 사색할 안식처를 갖게 된다. 그 안식처가 바로 농촌인 것이다.
농촌의 대자연은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질적 정신적 공해를 흡수해서 정화하기 때문에 그곳에는 맑은 공기가 있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녹색산업의 발상지이며 생명의 원천이다. 농촌에는 오염되지 않는 양심이 있고, 이웃을 헤아리는 온정이 있으며, 약자를 돕는 의협심이 있다. 농촌에는 또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스며있는 전통과 문화가 남아있고 우리의 아름다운 옛 추억이 배어있기에 농촌은 우리 모두의 영원한 고향이며 이상향이다. 이렇게 소중한 농촌이 오늘의 불황도 해결해 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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