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영국의 오래된 속담 가운데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만한 것 세 가지는 늙은 마누라, 늙은 개, 그리고 저금통장’이라는 말이 있다. 보수적인 전통과 신뢰, 실용성을 중시하는 ‘젠틀맨의 나라’ 영국의 속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속담이 아닐 수 없다. 그 ‘늙은’ 영국의 법적인 최고통수권자가 엘리자베스2세 여왕(83)인 것은 어쩌면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그녀는 서른 한살이던 1956년 여왕으로 즉위해 53년째 군주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다. 여왕의 부군인 필립 공(公)은 여왕의 한 발짝 뒤 그림자 위치에서 62년째 여왕과 해로하고 있다. 사회적인 지위나 역할에 있어서는 안팎이 바뀌어 있지만, 여왕이 왕궁내 남편 필립공의 방을 찾을 때는 노크를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여보, 당신의 아내예요.”

우리나라 조선조 때의 유학자 우암 송시열은 ‘계녀서(戒女書)’에서 부녀자의 모럴을 이렇게 얘기했다.
‘여자가 백년을 두고 우러러 받들 이는 오직 지아비라.…여자가 지아비 섬기는 중에 투기 아니함이 으뜸 행실이니 일백명의 첩을 두어도 본만 하고 첩을 아무리 사랑하여도 화내지 말고 공경하여라.’
남편이 백명의 첩을 두어도 투기하지 말라는 이 교과서적인 그적의 모럴은 여인네들에게는 가혹하기 그지없는 숙명적인 겁벌이나 다름없었다.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이혼보따리를 싸는 일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상전벽해로 세상이 바뀌었고, 부부의 결혼관도 많이 달라졌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08년 이혼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건수는 11만6천500건으로 이중 특히 결혼생활 20년 이상 된 50대 부부의 이른바 ‘황혼이혼’ 건수가 전체 이혼건수의 23.1%인 1만6천20건으로 작년보다 2000건 가까이 늘었다. 65세 이상 이혼도 해마다 증가추세에 있다.

성격차이와 가정폭력, 배우자의 외도 등을 주된 이혼사유로 들어 여성이 이혼제기를 많이 하지만, 그 반대인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즉 경제불황의 한파 속에서 직장에서 조기 퇴출당한 40~50대 남편들이 ‘무능’을 이유로 돈주머니를 거머쥔 아내들에 의해 사정없이 문밖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20~30년을 한결 같이 새벽부터 밤까지 오직 내 가족의 뒷바라지에 헌신해 온 남편들, 아내에게 돈주머니를 채워 준 개발시대의 그 주역들이 이젠 쓸모없는 잉여인간처럼 공원에, 고수부지 강둑에 어깨 늘어뜨리고 우두커니 앉아 볕바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침밥 얻어먹던 간 큰 남자들’의 ‘왕년에…’얘기는 이제 공원의 비둘기나 귓등으로 들으며 구구댄다. “아버지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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