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김치·장류사업 선도하는 김재경·신은수 부부

■  해외특별취재

 

“맛있다” 입소문에 이웃 주(州)서도 주문
4-H부부, “지덕노체 정신이 성공 밑거름” 
경제불황 속 동포사회에 용기·희망 줘

 

<젊은 시절 4-H 활동을 계기로 부부의 연을 맺은 김재경 신은수 씨는 2001년 미국으로 건너와 워싱턴주 퓨얼럽에 농장을 마련하고 이곳에서 생산된 신선한 무·배추로 ‘우리김치’를 생산, 공급해 미국에 한국의 전통음식을 알리는 선도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은 농장에서 손주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모습.>

 

젊은 시절 함께 4-H 활동을 함께 하며 부부의 연을 맺은 노부부가 미국사회에서 김치, 된장, 고추장 등을 인기리에 생산·판매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2001년 자녀의 초청으로 미국에 정착, 워싱턴 주 퓨얼럽(Puyallup)에서 5에이커(약 6,500평)의 채소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김재경(金在經 68)씨와 부인 신은수(66)씨가 이야기의 주인공.
김재경 신은수 부부는 미국에 세운 농장을 ‘우리농장’이라 명명하고 여기서 생산하는 품질좋은 농산물을 원료로 김치와 장류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김씨 부부가 생산하는 김치와 장류는 이들이 정착한 워싱턴 주는 물론 인근 오레곤 주의 대형마켓에도 납품되면서 미국 사회에 우리 전통음식을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본지 동열모 미국주재 대기자가 김씨 부부의 성공적인 미국 정착기를 현지 취재했다.


한국서 배운 농사기술로…
김재경씨가 2001년 자녀의 초청으로 미국땅을 밟고 무언가 새로운 출발을 모색했을 때 두  사람은 흙과 더불어 살아갈 터전부터 물색했다. 김씨 자신이 농지개량조합(현 농어촌공사)에서 30년 넘게 일했고, 부인 신씨 또한 4-H, 생활개선회 활동을 통해 농심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다음해 8월 그곳 농업의 중심지로 알려진 퓨얼럽(Puyallup)에 위치한 5에이커(약6,500평) 짜리 채소농장이 눈에 들어왔다. 비옥한 땅임을 알아본 김씨 부부는 이 농장을 구입하고 이름을 ‘우리농장’으로 정했다. 김재경 씨는 지난날에 축적한 농사기술을 발휘해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김씨는 무·배추·고추·토마토와 같은 채소류뿐만 아니라 고향의 향수를 자극하는 신선한 참나물, 취나물도 생산했는데 이 때문인지 많은 교포들이 농장에 찾아들었다고….
이렇게 되자 김씨 부부는 생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고자 김치를 만들어 공급하기로 하고 농장의 부속건물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김치를 만들어 팔기로 해 본 것. 부인 신 씨의 김치 솜씨가 뛰어나 주문 물량이 높아지자 본격적인 김치 공장이 필요했다. 하지만 부딪치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다. “공장부지 물색, 건축허가, 식품가공면허 등등 준비하고 해결해야 할 것들이 산적했지요” 김씨 부부는 당시 각종 면허 수속이 벽에 부딪쳐 좌절할 위기까지 이른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행히 주변의 따뜻한 도움으로 정상적인 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2007년 마침내 김씨 부부는 농장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지역에 공장을 세우고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김재경씨와 신은수씨의 ‘우리김치’는 현재 ‘한아름 마트’ 3곳, 일본 마켓인 ‘우와지마야’ 3곳, ‘팔도마트’ 3곳 및
소규모 한국과 중국 소규모 마켓 수십 곳에 납품되고 있다.>

 

생활개선회서 익힌 음식솜씨
본격적인 김치 생산이 시작되면서 소비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결국 김치 사업의 성패는 ‘품질’에 달렸는데 ‘우리농장’에서 남편이 생산한 신선한 재료를 바탕으로 부인 신 씨가 집에서 담그는 그대로 ‘손맛’이 살아있는 김치가 시장에 나오자 소비자들의 호응이 매우 높았다고 한다. “이곳 저곳에서 맛이 좋다고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하는데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죠” 현재 ‘우리농장’이 현재 생산하는 김치는 14종에 이르고 있는데 김치뿐만 아니라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 쌈장에 참기름도 생산하고 있다.
“제 솜씨는 생활개선회 활동에 늘 참여하면서 얻어진 것이예요.” 신씨는 한국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평택시생활개선회 활동을 하면서 농업기술센터에서 주관하는 각종 교육엔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신 씨는 “개량메주 만들기와 우리음식 만들기에 관한 농촌지도소 교육에 꾸준히 참여해 온 것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농장 김치’ ‘우리농장 된장’ 등은 워싱턴 주는 물론 이웃 오레곤 주의 대형마켓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게 됐다. 

“4-H 정신으로 살지요”
미국에 온지 7년 만에 착실히 뿌리를 내리게 된 요인은 무엇일까? 두 사람은 입을 모아 ‘4-H정신’을 이야기한다. 꾸준히 쉼없이 노력하는 성실성과 남을 속이지 않는 도덕성이 그것. “정직한 땀과 노력은 항상 보상받는다는 믿음으로 40여년 전 4-H 활동 때처럼 열심히 일했지요” 김씨는 젊은시절 선배가 전해준 ‘4-H 구락부 지도전서’를 읽고 농촌운동의 사명감에 가슴이 불타올랐다고 회고했다.
이같은 4-H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일까. 이들 부부에겐 당장 천만금이 생긴다 해도 속임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의 소망은 매우 소박하다.
그 소망은 ‘한국의 전통 맛’을 미국사회에 널리 알리고자 미국의 유명한 대형 마트에서 숙성 정도가 다양한 여러 가지 김치를 한데 전시하면서 시식회를 개최하는 이벤트다.
즐겁고 활기에 넘치는 코리언 4-H 부부의 힘찬 다짐은 현재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북미 동포사회에 새로운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  미니인터뷰 - 김재경·신은수 부부

 

“좋은 것을 더욱 좋게…”


김재경 신은수 부부는 현재 미국 사회에서 제2의 인생을 살지만 젊은 시절 가슴에 새겨둔 ‘지덕노체’ 4-H 정신은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다고 말한다.
김재경 씨는 젊은 시절 평택군(당시) 청북면에서 4-H 면회장을 지냈다. 두 사람 모두 같은 지역의 젊은 4-H 일꾼들로서 마을 생활환경 개선과 과학적 영농기술 활용에도 앞장섰다. 김 씨는 특히 ‘비닐못자리 보급’, ‘메탄가스 이용’ 등에 대해 깊은 추억을 갖고 있다.
신 씨는 생활개선구락부 회장도 맡아 농촌여성들의 능력향상과 마을 개선에 앞장선 공로로 당시 청와대 초청을 받아 육영수 여사를 만나기도 했는데 그 때가 육여사가 서거하기 한달 전쯤 된다고….

 

<부인 신은수 씨는 미국에 가기 전까지 꾸준히 생활개선회 활동과 교육에 참여했다. 사진은 신은수 씨가 회장으로 있던 생활개선구락부 회의 장면>

 

<김재경 씨는 평택시 청북면 4-H회장을 맡아 당시 메탄가스 활용보급에도 앞장섰다. 사진은 메탄가스 이용 점화식 장면. >

 


두 사람은 “‘좋은 것을 더욱 좋게’라는 4-H 모토처럼 우리의 좋은 김치와 된장 고추장을 미국사회에서 더 좋게 더 널리 보급하면 좋겠다”고 의욕을 보인다. 이 때문에 자신의 솜씨를 대물림하기 위한 준비도 철저히 하고 있다. 김씨와 신씨는 1남 2녀를 두었는데 큰 딸은 한국에서 내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고, 아들과 막내딸은 함께 지내고 있다. 
“우리 고유의 김치와 된장이 교포사회 뿐만 아니라 미국인의 입맛도 길들여 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고 말하는 노부부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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