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지록위마’란 말은 뜻 그대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본뜻은 위압적으로 남에게 잘못을 밀어붙여 끝까지 속이려 하는 간교한 술책을 비유한 데서 나온 고사성어다.

진시황이 기원37년 7월 지방순시 중에 사구라는 곳에서 돌연사 하자 늙은 너구리같은 환관 조고(趙高)가 태자 부소와 자신의 정적인 승상 이사와 구신들을 죽이고 어린 호해를 허수아비 황제로 추대한 다음 조정의 실권을 장악했다. 그런 다음 황제등극의 흑심을 품고 조정 중신들 가운데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폐하, 말(馬)을 바치오니 거두어 주십시오.”
“아니, 승상은 농담도 참 잘하시오. 사슴을 가지고 말이라니…그래 다른 대신들은 어떻소? 그대들 눈엔 이게 말로 보이시오?”
그러면서 좌우 신하들을 둘러보자, ‘그렇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더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난감한 얼굴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조고는 이들을 눈여겨 봐두었다가 기어코는 누명을 씌워 죽여버렸다. 그런 위세에 눌려 이후로 조정에서는 어느 누구도 조고의 말에 이의를 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오래지 않아 항우 유방의 공격에 몰려 끝내 조고 자신은 부소의 아들이자 자신이 진나라 3세 황제로 추대한 자영에게 주살당하는 비극적 종말을 맞았다.

자유당 정권 시절에 이승만 대통령에게 과잉충성한 나머지 무슨 일이건 잘잘못을 가리지 않고 이대통령이 하는 말끝마다 “지당하십니다”를 연발하며 지문이 닳도록 손바닥 비벼가며 머리 조아리던 이모 농림부장관이 있었는데, 그래서 붙은 별명이 ‘지당장관’이었다. 심지어는 이승만 대통령이 뚝섬유원지 시찰 중에 방귀를 꾸었는데, 옆에 있던 그가 황송하다는 표정으로 “시원하시겠습니다” 했다 하여 한동안 세간의 웃음거리가 됐었다.

최근 뇌물수수죄로 소환이 임박한 전직 대통령이 자신의 인터넷 홈피에 ‘감옥에 갇혀 있네~’ 운운 하며 특유의 비아냥투로 언론을 힐난한 것은, 격을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너무도 뻔뻔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한 수 더 떠 그 수하에 있던 브레인 중의 한 사람이 1억원짜리 외제 회갑선물시계 받은 것을 까발린 것을 놓고 ‘창피주려고 한 졸렬한 수법’이라고 일말의 가책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것을 보면서, 집권시절에 그대로 자행됐을 ‘지록위마’ 고사를 떠올리는 게 억측일까. 하늘이 무섭지도 않은가, 민심(民心)이 곧 천심(天心)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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