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손 현 주

 

연기 외길인생 걸어온 ‘천상배우’
편안한 역할로 시청자와 호흡 맞춰
초심 잃지 않고 꾸준히 노력할 터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1996년 주말 드라마를 평정했던 KBS2TV ‘첫사랑’의 무명가수 주정남을 기억하는가? 50%가 넘는 시청률을 자랑하며 거리를 헤매고 있는 이들의 발길을 집으로 유혹했던 드라마.
거짓 없고 순수한 이야기로 우리네 일상을 이야기했던 드라마 속 ‘주정남’은 손현주(45)라는 무명배우를 일약 스타덤에 앉혀 놓았다. 주정남이 부른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 노래는 당시 고속도로 휴게소를 장악했고, 80만장 판매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언제 봐도 편안한 남자, 때로는 옆집 오빠 같고 자상한 아빠 같은 그는 이미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지 오래다. 2005년 KBS2TV 미니시리즈 ‘장밋빛인생’을 통해 또 한번 전국의 아내들을 울린 이 남자는 ‘천상배우’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남자다.
지난 7일 KBS2TV 새 주말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의 제작발표회에서 만난 손현주씨는 이날 역시 새 드라마에 대한 기대와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보였다. 인기 많은 연예인도, 잘나가는 주연도 아닌 어느 하나 단정 짓기 힘든 카멜레온 같은 배우 손현주.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배역 하나도 그대로 소화하지 않고, 그 배역에 존재의 힘을 불어 넣는 그는 이시대의 진짜 ‘배우’임이 틀림없다.

 


손현주가 나온다는 말만으로 시청자의 기대감은 배로 늘어난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남모를 아픔의 시간은 짧지 않았다. 중,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을 한 그는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해 오로지 연극을 위해 달렸다. 졸업할 때까지 연극에만 매달린 그의 주변엔 이미 방송 일을 하고 있는 대학동기들도 많았다. 배우 손창민, 가수 원미연이 그렇다. 그들이 전파를 타고 얼굴이 알려져 유명세를 떨칠 무렵에도 그는 무대에서 먹고 자고를 반복하며 연극인생 만을 고집해 왔다.
“방송을 한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저의 최고 목표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국립극단을 들어가는 거였어요. 시험을 봐서 들어가기만 하면 월급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좋아하는 연극도 할 수 있고 월급까지 준다는 게 얼마나 편할까 싶더라고요. 근데 결국은 여의치 않아 평범한 극단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하지만 극단에 들어갔다고 해서 봄날이 오는 것은 아니었다. 극단의 수업은 하루에도 10시간이 넘었고 그 뒤는 개인연습이 이어졌다. 극단에서 모든 숙식을 해결해야 했던 때다. 힘들고 고된 나날들이 이어지면서 ‘이 길이 내 길이 맞나’하는 의문과 동시에 연극을 잠시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미 주어진 길이었기에 연극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연극과 함께 공연기획에까지 관심을 뻗게 됐고, 공연기획을 계획하던 중 KBS공채 시험에 당당히 합격하게 됐다.
“‘삼국기’라는 사극에 출현한 적이 있어요. 대사가 딱 한마디였는데 NG를 50번이나 냈지 뭐예요. 이때 ‘아,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저희 형이 많이 도와줬습니다. 형이 당시 신문 기자였는데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동생이라며 소개시켜 주더라고요. 형 때문에라도 열심히 했어요. 주는 대로 가리지 않고 성실히 일하니까 일거리를 주더라고요. 연기만 한 게 아니라 그때는 촬영장가서 험한 일도 다 했습니다.(웃음)”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일을 배우고 연기를 배우며 자신만의 내공을 쌓아온 그는 힘든 순간에도 포기하는 법을 몰랐다.


연극은 나의 길, 나의 인생

 

 

신비감보단 시청자와 호흡 중요
그는 흔히 멀티 활동을 하는 연예인들처럼 토크쇼나 버라이어티쇼에 출현하는 일이 드물다. 너무 신비감을 내세우는 것이 아닐까 싶을 만도 하지만 그의 대답은 오히려 단순했다.
“쇼 프로그램에 안 나가는 건 제가 잘나서도 아니고 하기 싫어서도 아니에요. 별로 잘난 것이 없어서 창피해요. 이제 신비감은 전혀 없죠(웃음). 사실 그런 곳에 나가면 굉장히 조심스러워져요.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신중해야 하고, 제가 의도하고자 하는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될까 걱정도 되고…”
그는 작은 일에도 신중할 줄 알며 조심스러운 배우다. 이것 또한 그가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히트 드라마에는 언제나 배우 손현주가 있다. 웃음을 주며 때론 평범한 이 시대 가장의 아픔을 연기하며 시청자의 눈물샘과 웃음보를 자극하는 연기자.
“저도 남들처럼 멋있고 폼 나는 역 해 보고 싶지 왜 아니겠어요. 근데 저는 당하는 쪽이 편해요. 때리는 사람보단 맞는 사람, 사기 치는 사람보단 당하는 사람 (웃음), 하도 맞는 역할을 자주 하다 보니까 이젠 어떻게 해야 잘 맞을까 하는 고민도 하게 되더라고요.”
비록 연기지만 남에게 해 끼치고 싶지 않다는 그의 착한 심성은 그의 가족사랑에서도 나타났다. 드라마 ‘첫사랑’ 이후 형편이 나아져 여동생 친구의 동생이었던 지금의 아내를 만나 1997년 결혼식을 치렀다. 무뚝뚝한 남자라 어느 누구보다 멋있는 고백은 못하지만 그 마음만은 진심이 느껴지는 그는 “아내가 저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항상 제 위에 있는 사람이에요. 저를 항상 이끌어주고 바른길로 가게 인도해 주거든요. 힘들거나 지칠 때면 언제나 곁에서 큰 위로를 해줘요. 고맙게 생각하고 많이 사랑합니다.”
2006년 4월  SBS 특집극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을 촬영하다 왼쪽 무릎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을 당시도 사랑하는 가족의 위로가 그를 일어설 수 있게 만들었다.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어
연극에서 시작해 드라마는 물론 영화까지 성역을 넓혀가는 배우 손현주는 한때 5개의 드라마를 동시에 한 적도 있다.
“지금은 그러지 못할 것 같아요. 왠지 내용이 헷갈려서 실수 할 것 같아요. 근데 굳이 영화, 연극, 드라마를 따로 생각할 필요가 있나 싶을 때가 있어요.”
사실 그에게 영화, 연극, 드라마라는 건 장르가 다른 무대일 뿐이지 그가 연기할 수 있는 열정과 이유를 불러오는 것엔 차이가 없다. 정제된 모습이 매력적인 영화는 자신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다시 촬영할 수 있어 좋다. 반면 방금 던져준 대본을 10분 안에 외워 촬영해 내일 방송에 내보내는 드라마는 순발력 싸움이다. 힘든 시절이 지나고 편한 연기를 고집할 때가 되었는데도 배우 손현주가 추구하는 또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단막극과 특별극이다.
“단막극은 늙어 죽을 때 까지 할 거에요. 단막극은 나를 다잡는 기회가 되거든요. 이제 방송사에서 단막극이 많이 줄어 선택의 폭이 줄었다는 게 좀 아쉬워요. 지금도 후배들 만나면 단막극 많이 하라고 조언해주기도 해요. 시야도 넓어지고 분석력도 좋아지거든요. 배우로서의 재산을 확실히 쌓을 수 있는 것이 매력이에요.”
이미 많은 후배의 귀감이 되고 있는 배우 손현주는 초심만을 잃지 않으면 그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고 전한다. 이런 그가 장밋빛인생 다음으로 KBS 2TV 새 주말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의 장남으로 돌아온다. 너부대대한 얼굴에 순박한 미소로, 사슴같이 그렁한 눈으로 돌아온 그는 장가 못간 아들 넷의 결혼 분투기를 그려낸 드라마에서 첫째 ‘송진풍’역을 맡았다. 점점 삭막해 져가는 시대에 이웃을 넘어 서로 가족이 되어가는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를 통해 다시 한번 배우 손현주의 진가를 기대해 본다.

 


손현주는…

1965년 6월생으로 1991년 KBS 공채 14기 탤런트로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됐다. 취미는 볼링치기와 수영하기, 특기는 판소리 등.
출연작은 드라마 ‘첫사랑’(1996), ‘모래시계’(1997), ‘해피투게더’(1999), ‘결혼의 법칙’(2001), ‘앞집여자’(2003), ‘장미빛인생’(2005), ‘조강지처클럽’(2007), ‘타짜’(2008), ‘솔약국집아들들’(2009), 영화 ‘피아노맨’(1996), ‘간첩 리철진’(1999), ‘킬러들의 수다’(2001), ‘펀치레이디’(2007)에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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