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욕망은 식욕, 성욕과 더불어 인간의 3대 본능의 하나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거나 위장, 혹은 은폐시키기 위해 생각해낸 미화수단이 곧 오늘날의 화장이다.
고대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백옥(白玉)같은’ 피부를 가진 사람을 귀인(貴人)으로 여겨 피부, 특히 얼굴을 희게 가꾸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이미 신라 때, 오늘날의 파운데이션과 같은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었다. 이때의 분은 쌀가루 등 곡식의 분말, 분꽃씨 가루, 조개껍질 빻은 가루, 흰흙가루, 활석(滑石, 탈크)가루 등에 부착력을 높이기 위해 납(鉛)을 화학처리해 넣은 연분(鉛粉)은 화장품 발달사상 획기적인 대발명품이었다.
조선조 말의 개항 이후에는 주로 일본이나 중국 청나라에서 크림, 백분, 비누, 향수 등이 수입돼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영국인 여류여행가 버나드 비숍이 경복궁에 들어가 명성황후 민비를 알현했을 때, ‘민비는 전통복식 치레를 하고 있었으며 진주분(眞珠粉)을 바른 때문인지 얼굴이 파리해 보였다’고 자신의 여행기에 기록했다.

아무튼 수입화장품의 인기에 자극돼 국산화장품의 산업화가 촉진되었는데, 이때 처음 나온 백분 상품이 바로 1922년 정식 제조허가를 받은 ‘박가분(朴家粉)’이다. 이 박가분은 원래 포목상점인 박승직상점에서 1916년부터 서울 종로의 연지동에서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어 포목을 사가는 사람에게 덤으로 주던 것인데, 외제보다는 품질이 다소 뒤졌지만 재래 백분보다는 혁신적인 화장품이어서 전국적으로 대단한 인기를 모았다. 이 박가분이 성공하자 서가분, 장가분 등 성씨를 붙인 유사상품 외에도 서울분, 설화분(雪花粉) 등의 미용백분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백분에 납을 가미해 부착력을 높인 연분은 커다란 결점을 지니고 있었다. 즉 장기간 반복 사용하면 땀구멍이 커지고 얼굴색이 변하는 분독 부작용이 생겼다. 그런 까닭에 1930년대에 사용이 금지돼 자취를 감추었다.

요즘 유아용 베이비파우더와 파운데이션, 트윈케이크 등의 여성용 화장품에 ‘죽음의 먼지’로 불리는 1급 발암물질 석면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제기돼 여성 소비자들이 불안에 싸여있다. 식약청 조사 결과 석면이 검출된 베이비파우더는 모두 탈크(talc, 활석)를 원료로 하는 제품인데, 파우더·파운데이션·트윈케이크처럼 피부 잡티를 없애고 피부색을 밝게 하는 화장품의 원료로도 바로 이 가루분말 형태인 탈크가 쓰인다. 식약청의 사후약방문식 늑장대응도 문제지만, 우리 여성들도 아름다움은 몸 건강이 우선이라는 걸 먼저 생각해야 한다. ‘쌩얼’ ‘몸짱’ ‘건강미인’이란 말은 그래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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