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86)

"농부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인증제도는 
누구를 위해 만든 것인가..."

억울하게 유기농 인증을 취소당하고 나서, 나는 온통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골똘하다가 보니 다른 생각을 할 생각공간이 없다. 가을이 와서 맑은 글 하나 생각해 보려고 해도 헝클어진 생각의 실타래가 정돈이 안 돼 글감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억지로 글을 만들어서 쓰느니 나의 현 상황과 생각을 쓰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이 또한 살아가는 이야기이고 농부로서 내가 겪은 일이니, 또 다른 그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상황을 당했다면 동병상련의 위로도 될 것이다.

억울하고, 분통 터지고, 기가 막히고, 하늘이 무너진 것 같고... 그런 격한 감정은 많이 가라앉았다. 일상이 마비된 것은 그만큼 사안이 중대한 사건이서였다. 내 이름 석 자가 무엇이라고... 나는 자존심이 우선이었다. 일개 농부로 살지언정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기에 자부심과 신뢰를 왕창 무너뜨리는 사건과 마주하게 되니, 분노가 치밀어서 진정이 안 됐다.
그 사이 자연재해로 엄청난 태풍이 지나갔지만, 내안에서는 더 큰 태풍이 불고 있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이런 심정이구나~’ ‘탁상행정의 폐해가 이런 거구나~’

자발적인 유기농부는 인증과 상관없이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농사현장 상황이 반영되지 않은 법을 집행해서 인증취소니 뭐니 하며 스스로 잘하고 있는 농부를 고꾸라뜨리는 이 현실!
18년간 유기농으로 감귤을 재배한 나는 이제 유기농교주가 됐다.(^^) 머릿속에 유기농밖에 없어서 누가 뭐라고 하든 이 길을 고집하며 간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종교처럼 신봉하고 무소의 뿔처럼 지난한 세월을 건너왔다.

귤농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유기농으로 시작했기에 관행농의 농약 이름도 모른다. 이번에 인증취소 당하면서 입증하기 위해서 연구하느라고 알게 된 몇 가지 농약이 있으나, 생소한 단어라서 자꾸 잊어버린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인데...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책상에만 앉아서 법집행을 하는 인증기관이 농약이 나왔다면서 인증취소를 일방적으로 했다. 결코 농약을 친 적이 없다고 아무리 항변을 해도 기상청 자료를 들먹이며, 분석실에서 나온 수치로만 내린 행정처분이 정당하다고 한다.

농부가 공장에서 규격품을 생산하는 노동자인가? 온갖 변수의 기상상황에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연물을 생산하는데, 현장 한 번 나와서 살펴보지도 않고, 농부의 의견을 경청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인증 취소를 했는데도 여전히 옳다고 주장한다. 60 평생 한 번 경찰서 가 본적도 없는데, 이제 재판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가 막히는 현실이다.

그동안 입증을 못해서 인증취소당한 억울한 농가들은 더 이상 친환경농사를 짓지 못할 것이다. 이런 황당한 상황에서 어찌 또 그런 심판을 받으면서 친환경농사를 할 엄두가 나겠는가 말이다.

친환경농업정책의 대대적인 혁신 없이는 친환경농사는 감소할 것이다. 18년을 버티고 온 농부도 날개가 꺾여 의욕이 사라지는데, 누가 이런 상황에서 친환경농사를 지속할 수가 있겠는가? 농부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인증제도는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가?
친환경농업의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농부의 의견을 반영한 현실적인 정책을 수립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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