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249)

퀸(Queen)이 떠났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지난 8일 오후(현지시간) 여왕의 여름 휴양지인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맏아들 찰스 왕세자와 그의 부인 카밀리아 공작부인, 손자인 윌리엄 왕세손, 안나공주 등 직계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향년 96세.

장례식은 왕실 관례에 따라 열흘간의 추모기간을 보낸 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국장으로 치러진 다음, 윈저성 지하 성조지 교회 납골당으로 옮겨져 아버지 조지 6세와 남편 필립공 곁에서 영면에 들었다.

# 1926년 4월21일 태어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본명은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윈저’. 그녀는 아버지 조지 6세가 왕위에 오른 10세 때부터 본격적인 통치자 수업을 받았다.
스무살 되던 1945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화를 염려한 왕실의 캐나다 피신권유를 마다하고, 아버지 조지 6세 왕에게 “조국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얘기한 뒤, 영국 여자국방군에 자원입대했다. 그리고 군번 230873을 가슴에 달고 군용트럭 운전사로 복무했다.

이때 평생의 반려자가 된 ‘필립 왕자’를 만났다.(본래 그리스 태생인 필립 공은, 그가 다트머스 왕립 해군학교에서 복무할 당시 13세인 엘리자베스 공주가 방문해 그녀의 안내를 맡으며 알게 됐고, 엘리자베스는 이때 필립을 자신의 신랑감으로 점찍었었노라고 훗날 토로했다.)

# 엘리자베스 2세는, 1952년 2월6일 아버지 조지 6세가 세상을 뜨자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현재 156개국이 가입돼 있는 영연방의 군주로 왕위에 올랐다.
그 이듬해인 1953년 6월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치러진 대관식에서의 공식명칭은, ‘엘리자베스 2세, 신의 가호 아래 그레이트 브리튼(대영제국), 북아일랜드, 그리고 모든 소유지의 통치자, 영연방 수장이며, 신앙의 옹호자’였다.

이후 재위 기간 동안 과거의 대영제국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통치영역은 줄어들었으나, 세상을 떠날 때까지 호주, 뉴질랜드, 자메이카, 바베이도스, 바하마 등 총 15개국(총 인구 1억2900만 명)의 명목상의 국가원수였다.
뿐만 아니라 윈스턴 처칠부터 역대 영국총리 15명과 정치적 역정을 함께 했다.

# 세상을 뜨던 날까지 70년 127일을 여왕의 자리에 있는 동안, 큰 아들 찰스 왕세자 등 세 자녀의 이혼,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교통사고 사망 등 갖가지 왕실 스캔들과 불운 속에서도, 철저한 자기관리와 몸에 밴 겸손함과 온화함으로 세계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으며, 한결같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23년 전인 1999년 4월에는 우리나라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국빈방문 해안동 하회마을에서 전통 궁중음식으로 차려진 73번째 생일(4월21일)상을 받기도 했다. 또한 여왕은, 왕위에 오른 1952년 이후 100개국 이상의 국가여행, 영연방 국가 150번 이상 방문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왕위는, 여왕의 서거와 동시에 역대 최고령으로 69년간 왕세자 신분을 유지했던 찰스 왕세자(1948년생, 75세)가 이어받아, ‘찰스 3세’ 국왕에 올랐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