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쌀에 집중하는 만큼
다른 작물에도
정책적 관심을 둬야 한다. 
무슨 농사를 짓든, 
농산물 가격이 얼마가 됐든 
농민이면 기본적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소득보장체계가 필요하다."

▲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쌀값 보장을 위한 농민총궐기대회는 보통 11월에 열렸다. 추수를 마친 농민들은 쌀값을 보장 받기 위해 두 번째 농사인 ‘아스팔트 농사’를 짓기 위해 서울에 모였다. 하지만 올해는 추석도 쇠기 전인 지난 8월29일에 농민들이 서울역광장에 모였다. 농민들의 마음은 그만큼 타들어갔기 때문이다. 

올 8월 기준 산지 쌀값은 20kg당 4만2522원으로 전년 대비 23.6% 하락했다. 45년 만에 최대 하락폭이라고 한다. 창고에는 지난해 수매해 쌓여있는 쌀이 상당해 추수기가 다가올수록 쌀값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쌀시장 격리가 큰 폭으로 이뤄지지 않는 이상 쌀값의 추가 하락은 불 보듯 뻔하다. 

쌀값이 이렇게 하락하는 데에는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정부와 국회는 지난 2020년 양곡관리법을 개정, 쌀의 목표가격제와 변동직불제를 폐지하면서 쌀 생산이 수요량보다 증가할 경우 자동시장격리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쌀 생산이 수요량을 초과해도 자동시장격리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 

사실 쌀은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협상 때부터 농정의 핵심 이슈였다. “대통령직을 걸고서라도 쌀시장 개방만은 막겠다”고 공언했던 김영삼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쌀시장도 도도한 세계화의 물결에 거스를 수 없다”고 하며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 후 쌀은 정부의 완전한 보호도 받지 못했고 그렇다고 완전히 시장에 맡겨지지도 못했다. 쌀은 농산물 시장에서는 하나의 상품이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필수재이기 때문에 시장과 국가 사이를 오갔다.

그렇다면 쌀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실 쌀값 하락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수요에 비해 많은 공급이다. 둘째는 소비량의 급감이다. 셋째는 정부의 쌀 우선 정책이다.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묶는다면 그것은 필요에 비해 과잉 공급 또는 보호다. 물론 우리나라의 현재 곡물자급률이 약 20%에 불과하기 때문에 식량 생산은 여전히 부족하다. 그래서 주식인 쌀만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쌀에 집중 투자를 했다. 그 결과 쌀은 약 93%를 자급하고 있지만 다른 식량작물의 자급률은 1~2%의 불과하다. 거의 자취를 감춘 작물들도 있다. 과연 이게 합리적일까?    

정부는 쌀시장 개방 이후 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규모화, 현대화, 효율화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경지정리를 통해 경작의 편리성을 도모하고 쌀 전업농 육성을 통해 경영의 효율화를 꾀했다. 쌀직불제를 통해 소득의 안정화를 도모했다. 쌀 농업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많은 노력을 했는데도 쌀농가들이 쌀값 하락으로 파탄 직전이라고 한다면 정책에 뭔가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쌀의 기계화율은 98%다. 항공을 통해 집단으로 방제가 실시된다. 이제 농민들은 논에 나가보지 않아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그러한 방식이 효율적이고 첨단으로 보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속가능한지는 의문이다. 농촌에 사람이 필요 없는 농사, 쌀 농업이 대표적이다.

우선 당장 폭락하는 쌀값 회복을 위해서는 자동시장경리도 해야 하고, 쌀 소비도 높여야 하고, 쌀 목표가격제 부활도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쌀에 집중하는 만큼 다른 작물에도 정책적 관심을 두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무슨 농사를 짓든, 농산물 가격이 얼마가 됐든 농민이면 기본적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소득보장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겉으로는 쌀값 폭락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쌀농업의 빅뱅이 시작된 거라 생각한다. 정부와 농민이 함께 쌀농업의 대전환에 나서지 않는다면 뫼비우스 띠처럼 비극은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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