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만에 대폭락한 쌀값에 농심 폭발

내년도 정부 농림예산안에 희비 교차

낟알이 한창 익어가는 가을 들녘이 풍년가가 아닌 농민들의 한숨으로 어둡게 물들어가고, 농민들은 아스팔트로 몰려나와 생존권 사수를 위한 목청을 높이고 있다. 바닥을 모르게 추락하고 있는 쌀값으로 가을농심이 요동치고 있다. 수천억 원의 예산을 들여 세 차례나 시장격리를 했지만 산지 쌀값은 45년 만에 대폭락해 80㎏ 기준 16만 원대까지 떨어졌다. 이에 농민들은 구곡 추가 격리와 과잉생산이 우려되는 신곡에 대한 선제 격리를 촉구하며 지난달 29일 서울역 앞에서 농민 총궐기대회를 가졌다. 이날 도로를 가득 메운 1만여 농민들은 국제 원자재, 원유가격 상승에 따른 비료·사료·면세유 가격 상승으로 농업 생산비가 증가하며 농가부담이 늘고 있는데다 쌀값 하락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돼 농가경영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야당 국회의원들도 집회에 동참해 정부의 미온적 대처에 맞서 양곡관리법 개정 등으로 쌀값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쌀값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정부는 지난달 30일 국무회의를 통해 2022년산 공공비축미 매입계획을 확정했다. 최근 쌀값 폭락사태를 둘러싼 성난 농심 진화에 나선 듯, 2017년 이후 매년 35만 톤 수준으로 매입하던 것을 올해는 매입물량을 10만 톤 확대해 총 45만 톤을 매입하고, 매입시기도 평년보다 보름 정도 앞당기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쌀값 지지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농민들의 우려를 잠재울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한편, 서울역 농민 총궐기대회 다음 날,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보다 2.4% 증액된 17조2785억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했다. 식량주권 확보, 농업의 미래 성장산업화, 농가 경영안정 강화, 농촌 활성화와 동물복지 강화 등 네 분야와 비료·사료 가격안정 지원, 직불금 확대 등에 주안점을 둔 예산 편성이다. 이에 대해 농업계는 희비가 교차하는 분위기다. 긴축재정 기조 속에서도 농업직불금 사각지대 해소와 청년농업인 영농정착지원금 확대, 농촌공간정비 확대 등 몇몇 예산이 확대된 점은 새 정부의 국정과제 실현 의지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반응이지만, 농촌현장의 실정 반영이 미흡했다는 아쉬움도 나오고 있다. 내년에도 국제 원자재 가격과 원유 가격 상승으로 농자재값 상승이 전망되는 만큼 생산비 보전대책이 포함됐어야 하고, 초등돌봄교실 과일간식 지원, 임산부 친환경농산물 지원 등의 사업예산이 반영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농업인들의 실망감이 크다.

내년도 농림예산은 국회 심의와 의결을 거쳐 연말께 최종 확정되게 된다. 아직 조정가능의 기회가 있다. 새 정부의 국정과제 실현 의지도 중요하지만 현장의 목소리에 더 귀를 열고 농심이 반영된 사업과 예산이 편성되길 농민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에 국회 심의 과정에서 주요 사업 예산이 반영되고 증액돼 코로나19와 기후변화, 시장개방 확대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농업·농촌·농업인에게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여야가 힘을 모아야 한다.

곧 추석이다. 풍요롭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농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농촌들녘에 풍년가는 아닐지라도 곡소리가 들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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