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 법적지위 보장 과제는...

▲ 국회에서 지난 24일 열린 여성농민 법적지위 보장과 농민기본법 제정을 위한 정책대회에서 사례발표에 나선 여성농업인들.

57만 여성농업인 중 공동경영주 9%에 불과
4대보험 가입 농외소득은 공동경영주 결격사유

# 전북 김제에서 30년을 농업에 종사한 강다복 여성농업인. 본인 앞으로 농지도 없고 농자재 구매와 농산물 판매는 남편 이름 앞이다. 농협에서 복수조합원제가 시행됐지만 여성농업인은 농협 조합원에 가입하기 어렵다. 해마다 조합원실태조사에서 본인 명의 농지가 없는 여성농업인은 1차 정리 대상이다. 경영주가 아니고 거래실적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남편 사후에야 조합원 자격을 승계 받을 수 있다.

농업인구에서 52.5%를 차지하는 여성농업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지난 2016년 공동경영주 제도가 시행되고, 농식품부에 전담부서인 농촌여성정책팀이 신설되며 변화가 찾아왔지만, 농촌에서 공동경영주 인식과 등록 비율은 여전히 미미하며 오롯이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여성농업인이 농업·농촌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에 걸맞은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국회에서 지난 24일 여성농민 법적지위 보장과 농민기본법 제정을 위한 정책대회가 열렸다.

이날 여성농업인 170여 명이 참여한 정책대회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서삼석·윤재갑·신정훈·이원택 의원이 공동주최했다.

주제발표에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오순이 회장은 “농민수당을 지급 받으면서 여성농민의 낮은 지위를 깨달았다”며 “남편 명의로 농지가 있어, 여성농업인은 똑같이 일해도 자신의 명의로 거래 실적이 없어 경영주 외 농업인으로 취급돼 다양한 지원사업에서 1차 정리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오순이 회장은 “농업경영주인 남성은 겸업이 가능하지만 마을사무장과 요양보호사 등 4대 보험에 가입돼 농외소득을 얻은 여성농업인은 공동경영주 등록을 할 수 없다”며 “어렵게 공동경영주가 돼도 별다른 혜택이 없어 2021년 4월 기준 농업경영체에 등록된 경영주 외 농업인(여성배우자) 57만5510명 중 공동경영주 등록 수치는 9.7%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농업경영주는 겸업 가능하지만 공동경영주는 불가
농민기본법 제정으로 성평등 농업정책 펼쳐야

# 경남 고성 김명희 여성농업인은 35년간 마을을 떠난 적이 없다. 전통민요 체험과 녹색농촌 체험마을로 선정돼 마을 방앗간을 설치하고, 주민들의 농산물 가공에 앞장서는 등 본인의 농사도 지으며 마을사무장으로 선정돼 근무하고 있다. 마을사무장으로 4대 보험을 받는다는 이유로 공동경영체 등록조차 할 수 없어 행복바우처와 농민수당 대상에서 제외됐다.

구멍 뚫린 공동경영주제도
오순이 회장은 “여성농업인들이 발의한 농민기본법이 국민청원을 통과했다. 농민에 대한 기준에서 여성농업인도 독립적인 주체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바꾸고 농민기본법을 통해 성인지적 관점으로 농업정책을 수립해 농촌 평등을 실현하는 조항을 추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종합토론에서 충남연구원 강마야 연구위원은 “공동경영주는 다른 직업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은 물가안정을 위해 국가가 농산물 가격을 통제해 농업소득이 연간 평균 1000만 원도 못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오히려 가난해야’ 공동경영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과 같다”고 꼬집했다.

강 연구위원은 “농지대장이 무조건 충족돼야 농업경영체 등록이 가능한 점도 여성, 고령, 청년들이 임대차한 농지를 제외하는 행위”라며 “현재 농지제도를 손보지 않고서는 실제 농사짓는 행위만으로 농업인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상황에 대한 개선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농촌진흥청 농촌환경자원과 최윤지 연구관은 “우리 사회는 성 주류화 법·제도 마련 등 확산돼 왔으나 농업·농촌의 발전은 더디게 진행됐다”며 “그 결과 성평등 정책에 농업인은 없고, 농업정책에 성인지적 관점이 결여돼있다”고 평가했다.

최 연구관은 “여성농업인에 대한 직업적 지위를 명확히 하고, 직업적 복지를 강화하는 것이 후계세대 청년농이 농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농업인이 공동경영주를 등록해도 권한이 동등하게 보장되지 않고, 정책대상에 동등하게 포함되지 않으면 말뿐인 성평등에 그친다.

농업 경영에 공동결정권을 가진 사람으로 여성의 지위와 권한이 보장되도록 공동경영주제도를 보완하고 농민기본법에 성인지적 관점을 추가해야 평등한 농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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