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포커스-정부, 쌀값문제 해결 의지 있나…

▲ 야당의원 중심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정부가 추가 시장격리를 포함해 적극적인 개입도 거듭 요구했다. 사진은 지난 16일 국회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서삼석 의원(사진 가운데)

신곡 수매까지 악영향…올해 1조4700억원 소득감소 예상
대통령 업무보고서 쌀값 대책 빠져…식량자급률 반등 헛구호 공산
정황근 장관, 정부가 개입해 가격안정 시도하면 과잉공급 고착 우려

최대 쌀값 하락에도 단기처방 전무
18일은 올해로 8회째를 맞은 쌀의 날이었지만 쌀농가는 전혀 웃을 수 없는 지경이다. 45년 만에 쌀값 하락폭이 최대치를 경신한 탓이다. 5일 기준으로 80kg 산지 쌀값은 17만2000원으로 지난해 22만3000원에 비해 무려 23%나 주저앉았다. 더 심각한 건 조생종 수매가 이번달 시작되며 올해 수확쌀 가격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단 점이다.

더불어민주당 서삼석 의원실에 의하면 쌀을 수매하는 농협 중 7월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재고 보유량이 50% 이상 증가한 농협은 29%에 달하면서 신곡을 보관할 창고가 없어 수매 차질이 벌써 우려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쌀 생산량이 380만 톤이라고 가정하면 지금의 쌀값으론 농가소득 감소는 무려 1조4700억 원으로 추산된다. 현재 식량자급률 45%를 떠받치는 가장 큰 기둥인 쌀산업이 붕괴되면 가뜩이나 열악한 식량안보는 더 주저앉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쌀농가들은 하루하루 애간장을 끓고 있지만 정부는 그야말로 수수방관이다. 지난 10일 정황근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서 어느 정부도 하지 못한 식량자급률을 반등시키겠다며 쌀·밀·콩 공공비축을 올해 49만2000톤까지 늘리고, 2027년까지 분질미 활성화로 수입 밀가루 10%를 대체하겠다는 게 주내용이었다. 하지만 쌀값 대책은 전혀 언급되질 않았다. 17일 윤 대통령이 가진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정부의 농업홀대론을 주창하며 농업을 제대로 대우하겠다는 공약은 아직까진 헛약속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2일과 17일 쌀값 대책마련을 열었다. 5일 간격을 두고 똑같은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한 건 이례적으로 그만큼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심지어 두 토론회에 참여한 패널 중 6명이 동일했다. 전국쌀생산자협회 엄청나 정책위원장,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서용석 사무총장, 한국들녘경영체중앙연합회 장수용 회장, 농협중앙회 이천일 품목지원본부장,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종인 연구위원이 두 토론회에 모두 참여했고, 농식품부를 대표해 전한영 식량정책국장이 배석했다. 같은 주제에 중복된 패널은 결국 거의 동일한 해결책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핵심은 추가 시장격리와 양곡관리법 개정이었다.

농업계, 재고 전량 시장격리 요구
엄청나 위원장은 재고미를 전량 시장격리해 쌀 대란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엄 위원장은 “2020년 53일간 재해로 쌀생산량은 350만 톤까지 줄며 정부가 37만 톤을 시장에 방출하며 지금의 재고과잉 문제를 야기했다”며 “정부 양곡창고가 충분히 시장격리를 할 여유가 있음에도 수수방관하면서 쌀값 폭락으로 이어지게 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재고미 전량 시장격리와 양곡관리법에 10월15일까지 명시된 2022년산 시장격리 계획을 발표하라고 촉구했다.

장수용 회장 역시 4차 쌀 시장격리를 조속히 시행하라고 요구했다. 장 회장은 “이번 쌀값 폭락은 정부의 쌀산업정책 실패로 인한 결과 정확한 과잉물량을 조사해 4차 시장격리를 지체없이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양곡관리법에 초과생산량이 생산량의 3% 이상이거나 수확기 가격이 평년 대비 5% 이상 하락할 경우 시장격리 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을 요건충족 시 자동으로 발동되도록 법 개정도 필요하단 입장이다. 또한 쌀값 하락을 유도하는 최저가 입찰이 아닌 공공비축미 매입으로 시장격리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책임져야 할 쌀 수급을 떠맡게 된 농협의 RPC는 구조적 공급과잉으로 누적적자만 2000억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올해 가장 심각한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천일 본부장은 2005년부터 9차례 시장격리가 있었지만 실제 조치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돼 효과가 반감됐다고 분석했다. 이 본부장은 “격리를 하기로 한 시점부터 최종격리까지 약 7개월이 소요됐는데 양곡관리법에 의무규정이 아니다보니 개정 전과 차이가 없다”며 “전체 유통량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전대책인 쌀 생산조정제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장기대책을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공익법률센터 농본 하승수 대표는 정부가 입법취지와 개정된 법조항의 내용을 철저히 무시했다며 국회차원에서 진상조사에 나서고 원인과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국정조사도 불사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하 대표는 “양곡관리법을 무시하는 반민주적, 반법치적 의사결정이 이뤄졌는지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며 “자의적인 시장격리는 국가가 농민들을 속이고 변동직불제를 폐지한 것으로 보완 입법으로 진짜 자동 시장격리가 보장되도록 양곡관리법 뿐만 아니라 시행령과 하위규정까지 검토해 자의적인 법집행을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 국민의힘 홍문표 의원 주최로 12일 국회에서는 쌀값 대책마련 토론회가 열렸다.

민주당, 정부의 자의적 시장격리 대응할 양곡관리법 개정안 잇따라 발의
전략작물직불제·분질미 생산 등 농식품부는 장기대책만 줄줄이

농식품부, 추가 시장격리 계획 없어
반면 농식품부는 일단 시장격리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3차에 걸쳐 조치를 했고, 추가 예산배정에 기재부를 설득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12일 토론회에서 농식품부 김인중 차관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조기에 대응계획을 세우고 있고, 민간 재고 파악 조사와 재배면적까지 파악하면 빠른 시일 내 대응계획을 내놓겠다”면서 “내년엔 적정수준의 재배면적을 가져가기 위해 겨울철에 밀과 조사료, 여름에 콩과 분질미를 심으면 직불금을 지급하는 전략작물직불제를 기재부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전략작물직불제는 논에 밀을 심으면 지금은 50만 원을 지급하는데 최소한 250만 원까지 지급하는 방안이 현재 유력하다. 하지만 추가 시장격리와 같은 단기대책 언급은 없었다. 1일 국회 농해수위에서도 정황근 장관 역시 추가 시장격리에 확답을 피했다. 또한 “소비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일정 수준 가격을 유지하는 것처럼 정부가 시그널을 주게 되면 계속 과잉 구조가 악화된다”며 쌀값 안정에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다만 8월26일까지 10만 톤 시장격리를 끝내 신곡 수매에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대책만 내놨다.

해법에 여야 온도차 있어
쌀값문제를 두고 여당과 야당은 약간의 온도차가 있다. 국민의힘 홍문표 의원은 “소비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생산장려 정책만이 능사가 아니다. 소비패턴에 맞는 현실적 정책 마련과 대안 식량작물 재배 유도 등 쌀산업의 근간을 유지하되 농민들이 신뢰할 소득보장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춘식 의원은 “정부의 쌀 수매 비중을 늘려 농협이 과중하게 떠안은 부담을 줄여주고 노후화된 양곡창고 개보수와 창고신설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정부입장과 마찬가지로 단기대책보다는 농협의 부담을 줄여주거나 대안작물 재배와 같은 장기대책이 필요하단 의견이다. 하지만 여당으로서 추가 시장격리는 재정부담 때문에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야당은 단기대책이 시급하단 입장이다. 양곡관리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며 과잉물량 격리시기를 놓친 게 쌀값 하락의 근본원인으로 보고 이를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부터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농식품부 장관의 시장격리 의무화를 내용으로 하는 5건의 양곡관리법 개정안 모두 대표발의자는 야당의원들이다.

김승남 의원은 “변동직불제가 폐지되며 농가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자동 시장격리를 약속하며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농식품부가 이를 지키지 않아 자의적인 시장격리를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며 “정부가 요건이 충족되면 의무격리로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마련하고 매입단가를 결정하는 양곡심의위원회에 생산자단체 위원 5명 이상이 참여하도록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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