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쌀값 하락에 재고는 산더미...위기의 쌀산업

▲ 이번달 수매를 시작해야 하지만 2000톤이 재고로 쌓이며 결국 시장격리로 방출하기로 했다.

재고에 허덕이는 농협, 치솟는 경영비에 울상인 쌀농가

2020년 공익직불제 시행과 함께 쌀의 수급안정을 위해 양곡관리법에 시장격리가 명문화됐다. 가파른 쌀값 하락이 지난해 말부터 급격히 나타나며 농식품부는 2월 1차 시장격리 14만4000톤, 5월에 2차로 12만6000톤을 시장에서 격리했다.
하지만 쌀값 하락세가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자 7월 말 10만 톤을 시장격리하기로 하고, 주로 전국의 농협에서 보관 중인 쌀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시장격리 조치 이후에도 아직 가시적인 정책효과는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쌀 수급안정의 책임은 정부에 있음에도 그 재고를 농협이 떠안고 있다. 7월 말 기준으로 농협이 쌓아두고 있는 쌀은 약 41만 톤으로 전년 대비 73%나 늘어난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시장격리가 진행되고 있지만 신곡을 수매하는 시기까지도 약 20만 톤의 쌀은 재고로 남아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 심각한 건 농협 조합원 대부분이 농업인으로 그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농협이 재고로 보유한 쌀, 전년 대비 73% 폭증
조생종 수매 이번달 시작, 올해 쌀값에도 여파 미칠 듯
시장격리 조치 이후에도 계속된 하락세로 수매량 제한키로

조생종 수매 20일부터 시작되는데…
2011년 경기도 이천의 남부지역 농협인 장호원·설성·율면농협이 공동으로 출범한 이천남부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이하 남부RPC)은 2만3074㎡ 부지에 최신식의 가공시설, 건조저장시설과 저온저장고를 갖췄다. 최근 3년간 약 342억 원의 매출에 15억 원의 순익을 거둔 알짜 RPC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었지만 남아도는 재고 쌀에 몸살을 앓고 있다.

남부RPC 이용재 차장은 “남부지역은 이천의 경지면적 중 36.8%, 벼수확량은 37.7%를 차지하고 있는데 지난해 풍년이 들면서 수매량은 늘었지만 수요는 그에 훨씬 못 미쳐 약 2000톤을 창고에 보관하고 있습니다”고 토로했다. 특히 2020년 연이은 재해로 쌀 수매량이 크게 줄어 지난해 양을 크게 늘린 터라 재고로 인한 경영부담은 평년보다 더 큰 상황이다.

예년 같았으면 6월이면 모든 재고를 털어내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수매가 20일 예정인 남부RPC는 아직까지 재고를 여전히 떠안고 있다. 8월까지 재고를 떠안은 건 올해가 처음으로, 재고량도 남부RPC 운영을 시작한 이후로 최대량이다. 결국 이번 3차 시장격리 때 1100톤의 쌀을 방출하기로 결정했다. 손해를 볼 수밖에 없게 되겠지만 수매가 시작되면 창고공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 차장은 “쌀밥이 마치 건강을 해치는 먹거리라는 잘못된 인식이 커지면서 소비가 줄고 있어 쌀값 하락이 계속될 수밖에 없어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다른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쌀값만 떨어져 농업인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상당합니다. 농협 직원들도 마찬가지고요. 정부가 이런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발 빠른 해답을 내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 조생종 수매를 앞두고 수매통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국산품종 대체 동력상실 우려도
쌀값 하락은 단순히 농가의 소득감소와 농협의 손실에만 그치질 않는다. 이천은 일본산 불매운동에 동참하고자 지역에서 주품종이었던 추청과 고시히까리 대신 중생종인 알찬미와 조생종 해들로 대체하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 남부RPC도 알찬미와 해들을 수매하기로 하면서 국산화에 동참해 왔다.

올해 알찬미와 해들로 일본산 품종을 완전 대체하는 데 성공한 이천은 밥맛과 영양적으로 우수한데다 도복과 병해충에도 강한 장점을 부각해 전국적으로 소비를 늘려가기로 박차를 가할 참이었지만 쌀값 하락이라는 복병을 맞닥뜨리게 됐다. 하지만 쌀값 하락세가 1~2년의 단기적 문제가 아니라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 국산품종 대체와 식량자급 측면에서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있다.

남부RPC를 포함해 이천의 농협들은 올해 논 200평당 480kg까지만 수매량을 제한하기로 했다. 나머지 수매량은 가격을 차등해 지급하기로 했는데 농협도 마냥 손해를 볼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국산품종을 농협이 수매하면서 일본품종을 대체하는 데 일조했지만 전량 수매를 못 하게 되면 동력이 상실될 우려도 있다. 거기다 9월 둘째 주면 추석이 시작된다.

이 차장은 “올해는 이른 추석으로 조생종 물량을 일찍 확보해야 하지만 또다시 막대한 재고를 떠안아 처리할 판로가 없으면 보관하는 데 비용은 비용대로 들고, 만생종을 수매하는 10월에 쌀값이 더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고 예측했다.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추석 이후에 전무후무한 쌀값 폭락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올해도 풍년이 예상되지만 김종숙씨는 쌀값 하락세가 계속 되자 마냥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자식에게 빚 넘겨주는 것 같아
이천에서 약 8만 평의 쌀농사를 짓고 있는 김종숙씨도 걱정이 태산이다.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짓다 농수산대학교를 졸업한 아들이 10년 전에 합류하며 규모를 순차적으로 늘려왔지만 요즘에는 잘못된 선택이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든다.

“작은아들이 농사를 같이 지으면서 규모가 2배 이상 늘었어요. 이천 곳곳에 임대한 논도 늘면서 트랙터와 콤바인, 트럭, 지게차, 굴삭기도 마련했어요. 면적이 워낙 넓으니 약 치는 것도 감당이 안 돼 드론까지 마련했어요. 근데 가진 돈으로 해결이 안 되니 은행에서 빚을 졌죠. 금리가 몇 달 사이에 두 배 오르면서 이자부담도 너무 커졌어요.”

땅값도 크게 올라 몇 년 전이었으면 평당 10만 원 하던 논을 17만 원까지 주면서 마련했지만 지금은 살짝 후회가 된다고. 대를 이어 빚을 넘겨주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뿐이다. 더 큰 걱정은 대형 농기계를 직접 구매해 쓰다 보니 기름값에 인건비 부담도 무시 못 할 수준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농어촌공사의 제안으로 휴경 논에 콩을 심으며 위험부담을 조금 줄인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하지만 애써 수확한 콩도 판로가 마땅치 않아 지인을 통해 하나하나 뚫어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한 회사에 납품하기로 했지만 제때 돈을 받지 못해 한동안 마음을 졸여야 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논에 타작물을 심도록 독려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판로까지 책임져야 농업인이 생산에만 몰두할 수 있는 것이다.

“아들이 이천에서 4-H연합회장을 맡아 젊은 사람이 정착해 농사를 제대로 지어보자고 하는 모습에 흐뭇했어요. 정부가 젊은 청년들이 마음 편히 농사를 짓도록 쌀값만은 제대로 책임져졌으면 하는 바람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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