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80)

행운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일치하는 친구를 만난 건 축복

1942년생 정자와 1961년생 영란은 단짝 친구다. 만난 햇수로도 15년이 됐으니, 그사이 쌓은 곰삭은 정이 서로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다. 다른 점은 이해하고 통하는 점은 한 몸처럼 흡수해 충돌하는 일이 거의 없다. 몇 시간 수다를 떨어도 피곤함을 모르는 힘의 균형이 둘이 너무나 죽이 잘 맞는 친구라는 것을 방증한다.

나이 차이가 모녀지간 정도 되지만 세대차이도 못 느끼고, 다름이 어색했던 시간들도 다 지나고 보니 이제는 서로를 애틋하게 이해하고 배려하는 우정만 남아서 자주 만나도 지루하지 않고, 서로 분신인 듯하다. 이런 단짝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인 것 같다.

‘마중물’이란 닉네임을 가진 정자는 81세 청년이고, ‘반디농장’이라는 사회적 명칭을 가진 영란은 62세 노년인데, 청년 정자를 만날 때마다 노인 영란이 새로 거듭난다. 80세에 알레올레라는 할머니 차방을 창업하고, 81세에 다시 대학에 편입학한 정자는 20대 청년보다도 더 싱싱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60세에 에너지가 방전돼 골골거리던 영란은 샘물의 원천인 정자를 만날 때마다 삶의 이정표가 곁에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둘은 무엇이 그렇게 서로 잘 통할까? 2007년 반디농장이 회원제로 전환해 회원 모집을 하는 블로그를 보고 정자는 이후 쭉 반디농장 회원이 됐고, 이듬해 서귀포로 이주해 제주도 올레바람이 불 때 <알레올레>라는 B&B(Breakfast&Bed) 아침 식사를 주는 여행자 숙소를 열었다. 내가 사는 집에 침구만 새로 장만했지만, 정갈하고 품위 있는 경영으로 올레꾼들에게 자리매김 했다. 최대 인원이 5명 정도였다. 추구하는 바가 넘치지 않으니 늘 족했다.

내가 선 자리에서 내가 가진 것으로 넘치지 않게 경영하는 것. 정자와 영란은 삶의 원칙이 통했고, 둘 다 호기심 천국이라 지루한 것을 못 참아서 늘 새로운 도전을 했다. 
각자의 임무를 다하고(둘 다 가장의 역할을 짊어진) ‘차와 밥값이 1만 원 정도’의 작은 사치를 누리기를 좋아해서 종종 만났고, 꽃 이야기로 밤새 수다를 떨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둘 다 남편이 경제적 책임을 놓은 상태라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야 했지만, 구차하게 사는 것은 참을 수 없어했다. 함께 꽃차를 배웠고, 천연발효빵을 배웠고, 한겨울에 육지로 수제 소시지 만드는 법을 배우러 가기도 했다. 각자 다른 빛깔로 살아내고 있었지만, 삶의 무늬가 비슷한 면이 오랫동안 우정을 더 깊어지게 만들었다.

이번에 고호마을 프리마켓을 영란이 도모하면서 단짝친구 정자를 메인석에 모셨다. 4월부터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에서 오후 2시까지 열기로 했는데, 그사이 비가 한 번도 안와서 17번째의 장터를 열었다. 한 여름 찜통더위라고 멤버들이 한 달간 방학을 하자고 했지만 영란과 정자는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일치했다. 단 한 사람이 와도, 안 와도 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까지도 일치한 두 사람. 다들 방학이라고 쉬는데 두 사람은 자리를 지켰다.

행운의 여신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까지도 일치하는 단짝친구를 만난 것이 큰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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