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75)

"아이가 스스로 자신을 일으켜
힘이 돋기를 기다려줘야 한다.
60세가 넘은 나도 꿈속에서 
엄마 손을 잡고 힘을 낸다..."

밤새 잠을 뒤척이다가 새벽녘에야 까무룩 잠이 들었다. 대개 초저녁이면 잠이 쏟아져서 잠들었다가 한밤중에 한두 번 눈을 뜨지만 다시 잠을 청해 아침이 밝아 오기를 기다리는 게 나의 잠 습관이다. 그런데 어젯밤은 도무지 잠이 들지를 못했다.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에야 잠이 들었다가 매주 보내야 하는 농촌여성신문 원고를 써야 해서 일어났다. 원고를 보내고, 오늘도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하는데 수면부족으로 괜찮을지 걱정된다.

며칠 전부터 신체 리듬이 깨지면서 열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한림에서 직장에 다니는 둘째아이가 몸에 큰 염증이 생겨서 병원을 드나들면서, 서귀포-한림-제주시, 다시 한림, 다시 서귀포를 4~5시간 운전하면서 다닌 것이 내 기를 넘게 한 것 같다. 아픈 아이를 태우고 병원을 드나들면서 내 마음이 노심초사해 더욱 몸살을 초래한 것 같다.

둘째는 어릴 때부터 자기주장이 강해 엄마랑 자주 부딪혔다. 엄마의 관점에서는 아이를 바로 훈육하기 위함이었었는데, 사춘기 이후부터는 마음에 빗장을 치고 소통을 거부했었다. 밤새도록 게임을 해서 엄마 분통을 터지게 했고,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것을 어르고 달래서 한국농수산대학을 보냈다. 학교생활이 재미없다는 걸 낙오만 하지 말라고 달래서 겨우 졸업시켰다.

둘째는 집으로 돌아와서 바로 농사를 짓고 싶어 하지 않았고, 나도 세상 구경을 실컷 하고 돌아오라고 했다. 이것저것 다 해보고 가업을 이어받아서 농사를 짓겠다는 때가 오기를 기다린 것이다. 내 생각에는 농업분야가 미래비전이 있고, 앞으로는 더욱 먹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둘째가 그런 마음이 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우리가 자랄 때와는 많이 달라서 부모의 고정관념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런저런 알바를 하며 세상 경험을 하다가 몇 개월 집에 와서 함께 하는 동안 나는 다 큰 자식과는 함께 살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밤새 게임을 하며 생활이 불규칙한 자식을 보는 눈이 도끼눈이 되고, 잔소리가 절로 나가니 관계만 악화됐다.

그러다가 국비로 청년창업혁신센터가 생겼는데, 그곳에 지원해 합격했다. 평소 게임을 즐겨 해서 걱정했는데, 컴퓨터에 능하니 전공도 하지 않은 웹디자인 분야로 일자리를 얻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게 돼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그런데 게임도 같이 하고, 종종 만나서 밥도 함께 먹던 과 동기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받은 충격과 파장이 어떨지 내심 걱정돼 둘째를 살폈다. 둘째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우울증에 시달리며, 불규칙한 식습관과 생활태도가 건강을 무너지게 하고 있었다. 아이의 병이 깊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울증으로 몸과 마음이 스스로 제어되지 않는 상태가 된 것 같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둘째에게 엄마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엄마가 있어서 다행이다’고 아이가 느끼고, 스스로 자신을 일으켜 세울 힘이 돋기를 기다려줘야 한다. 아이와 함께 하는 차 안에서의 4~5시간에 사랑을 전하려고 노력한다. 60세가 넘은 나도 꿈속에서 엄마 손을 잡고 힘을 낸다.
나는 꽃으로 달래야겠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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