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 경 자

 

‘학대 받는 딸’이었던 어머니 존경
교과서같은 어머니 역할…딸들에 큰 영향
남자들의 우월감은 사회가 만든 것

 

20년 전 페미니즘 소설 <절반의 실패>와 <사랑과 상처>(1998), <그 매듭은 누가 풀까>(2003) 등의 작품을 통해 이 땅에서 여성이 겪는 고부간의 갈등, 가정폭력, 외도와 매춘, 빈곤 등의 여러 고통을 드러내 보이며 여자·아내·엄마로서의 자기정체성을 깊이 들여다 보고 살아온 소설가 이경자. 그가 예순 둘의 나이에 이제는 사람살이의 인연과 소통에 대한 깊은 깨달음 속에서 부드러운 시선으로 ‘자신의 유전자 속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수난과 모욕의 삶, 그리고 두 딸의 어머니가 된 자신의 결혼과 이혼,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얘기했다.

여성문제에 깊게 천착해 왔는데,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궁금합니다.
- 우리 어머니는 학대받은 딸이었어요. 아들을 간절히 바라는 외가에서 네 번째로 또 딸이 태어나자 외할아버지가 죽으라고 갓난아이를 방 윗목에 엎어놓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저녁에 되어서 들춰보니 아직 숨을 쉬고 있어 할 수 없이 키운 딸이 저의 어머니예요. 그래서 말할 수 없이 학대받으며 성장했죠. 그러니까 자기 존엄성을 갖지 못한 어머니였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다시 보기 시작한 건 나이가 들어서겠죠?
- 물론이죠. 아버지가 폭력 아버지에다 바람피우고 경제적으로 무책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힘으로 우리가 다 이렇게 살았거든요. 그런데 제가 결혼을 하고 나서 여자공부를 시작하면서 그 어머니가 얼마나 대단하신가, 그렇게 주눅 들어도 자식을 낳고 억척으로 자식을 기르려는 것을 보고 제가 감동 받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런 어머니가 존경스럽고, 내 딸들에게도 외할머니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 합니다.

남편은 어떤 분이셨나요?
- 남편은 맏아들이라서 가부장적 의식이 강한 사람이었어요. 그야말로 FM인 사람인데 결국은 살면서 많이 부딪쳐 이혼을 한 거죠. 그때 제 나이가 쉰 여섯살이었어요. 6년 됐습니다.

자신이 여느 여성과 달리 별나기 때문에 이혼에 이른 건 아닌가요?
- 별나다기보다는 죽지 않고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거죠. 헌신하고 순종하는 아내여야 하는데 저는 순종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저는 팥으로 메주를 쑨다는 식의 편법적 사고를 가진 사람과는 정공법으로 싸워요. 적어도 그런 문제는 제 세대에서 끝나야 해요. 특히 딸들을 위해서는….

그 딸들은 어머니의 뜻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 그래요. 책임감 강하고 자신의 생활은 자신이 책임진다는 경제력도 그렇습니다. 그건 제가 어머니로서의 교과서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봐요. 두 아이 다 엄마를 존경한다고 하니까….

자녀들의 결혼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부모로서의 기대치가 있지 않습니까?
- 때가 되면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할 거라고 얘기들 해요. 저는 절대 강요하지 않아요. 정말 제 기대에 맞추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원하는, 또 자기가 책임지는 삶을 살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 사회의 남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전투적으로 여성얘기의 날을 세우던 전과는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 우리 사회의 남자들이 우월감을 갖는 건 그 남자 탓이 아니고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 아닌가요. 남자들에게 과분한 책임과 짐을 지운 것 말이에요. 그게 이제는 미안하고 안쓰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남자도 좀 가볍게 살 수 있어야지요. 아내에게 의지할 수 있어야 되고…. 남자의 슬픔을 많이 이해하게 돼 이제 앞으로는 남자를 좀 더 따뜻하게 잘 그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남자로 태어났다면…’ 하고 생각하신 적은 없나요?
- 전혀, 상상해 본 적 없어요. 저는 여자인 게 너무 좋아요. 왜냐하면 아이를 낳을 수 있어서죠. 아마 남자였다면 많이 외로웠을 것 같아요.

혹 앞으로 새로운 이성을 사귀시게 된다면 어떤 유형의 남자를 만나고 싶으신가요?
- 상상은 잘 안되지만 부드럽고, 잘 웃기고, 편안한 남자가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요즘 일상을 소개해 주시죠.
- 이혼하고 나니까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편안하고 한가로워요. 쉰 여섯살까지 28년간 결혼생활 해 봤으면 충분히 한 거고, 지금은 온전히 글 쓰는 데만 열정을 쏟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 그는 딸들에게 주는 편지글 형식의 산문집 <딸아, 너는 절반의 실패도 하지마라>의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딸은 우리 모두의 추억이며 희망이다.

 


이경자는…

1948년 강원도 양양 출생으로 서라벌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확인>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대표작품으로 <절반의 실패> <사랑과 상처> <혼자 눈뜨는 아침> <그 매듭은 누가 풀까> <빨래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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